“공정거래위원회가 칼을 다시 들겠죠. 이번에는 다르게 휘두를 수 있을까요.”

이재명 정부가 출범한 직후, 한 전직 공정위 간부는 기자와의 통화에서 이같이 말했다. 기대 섞인 농담인가 싶었지만, 곧이어 “솔직히 걱정이 크다”고 속내를 털어놨다.

‘공정 경제’를 주창하는 민주당 정권이 출범할 때마다 공정위에 힘이 실렸다. 실리는 힘만큼 논란도 일었다. 공정위의 힘이 세질수록, 기업 활동이 위축될 것이라는 우려 때문이다.

대선 공약 때부터 ‘공정경제’ 슬로건을 제시한 이재명 정부는 출범 직후 공정위 인력 보강을 언급했다. 이전 정부와 대조되는 분위기다. 윤석열 정부 출범 초기에는 공정위 조직 축소론이 나왔다. 경제정책에서 존재감도 미미했다.

‘재벌 저격수’로 불리던 김상조 한성대 교수를 공정위원장으로 기용했던 문재인 정부와 궤가 달랐다. 김상조 당시 위원장은 금융위나 보건복지부 정책에도 관여하며, 사실상 ‘경제 컨트롤타워’처럼 활동했다.

대기업에 대한 집중 점검도 진행됐다. 일감 몰아주기와 편법 승계 여부를 파악하겠다며 기업집단 내부거래를 전방위적으로 점검했다. 기업인들 사이에선 ‘공정위가 심판이 아니라 플레이어가 됐다’는 목소리가 나왔다. 시장의 역동성을 해칠 수 있다는 우려도 쏟아졌다.

최근 공정위 안팎에서는 ‘플랫폼국’ 신설 가능성이 제기된다. 만약 이게 실현된다면 김상조 위원장 시절 출범한 기업집단국 이후 8년 만의 국 단위 조직 개편이다. 공정위의 정책적 외연을 확장하겠다는 신호로 읽힌다.

이재명 대통령은 지방자치단체장을 할 때부터 공정 이슈에 관심을 보여왔다. 경기지사 재임 당시 전국 최초로 도청 내 ‘공정국’을 신설했다. 배달앱 수수료와 카카오모빌리티 논란도 직접 대응했다. 배달의민족 인수합병 심사 당시에는 공정위에 기업결합 불허 의견서를 전달하기도 했다.

이 대통령의 공정경제에 대한 관심 때문일까. 현재 공정위 테이블에 온라인플랫폼공정화법 제정, 배달앱 수수료 상한제와 같은 지난 정부 때 화두가 다시 올라오고 있다.

하지만 난마처럼 얽힌 문제를 ‘규제 프레임’만으로 푸는 건 불가능하다. 과도한 규제는 기업의 자율성은 물론 소비자 선택권을 해친다. 특히 플랫폼 산업처럼 기술 기반 혁신이 중요한 산업은 ‘을 보호’가 ‘시장 위축’으로 이어지지 않도록 섬세한 설계가 필요하다. 한 공정거래 전문가는 “을의 눈물을 닦아주려는 선의는 의미 있지만, 그걸 제도로 담는 건 전혀 다른 문제”라고 말했다.

공정위는 경쟁을 촉진하는 기관이다. 담합 적발이나 불공정행위 제재는 목적이 아니라 수단이다. 공정위의 역할은 경쟁이 활발해지도록 판을 짜는 것이다. 약자를 보호하려다, 시장 내 경쟁 자체를 막는 방식으로 흘러가면 안 된다.

칼을 드는 것보다 중요한 건 그 칼을 어디에 또 어떻게 쓸지 판단하는 일이다. 취임사에서 ‘성장’을 가장 많이 언급한 이 대통령의 경제 철학을 실현하기 위한 정교하고 일관된 정책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