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랙핑크 로제의 히트곡 ‘아파트’가 큰 인기를 끌면서, 한국의 술과 문화에 대한 관심이 해외에서 주목을 받았다. 로제는 여러 인터뷰에서 자신의 곡을 설명하면서 직접 ‘아파트 게임’을 소개했다. 구독자가 1560만명에 달하는 패션 매거진 보그(Vogue)의 유튜브 계정에서는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술이 ‘소맥’이라며 직접 소맥을 만드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다. 수많은 글로벌 팬에게 자연스럽게 ‘케이(K)주류’를 알린 셈이다.

한국 술은 해외에서 어느 정도의 성적을 내고 있을까. 관세청 수출입무역통계에 따르면 소주 수출액은 2022년 9333만달러, 2023년 1억141달러, 2024년 1억451달러로 증가했다. 상대적으로 한국 술의 차별성이 도드라지는 소주가 국산 주류 수출을 견인하고 있다.

반면 맥주 수출액은 같은 기간 6947만달러, 7659만달러, 7904만달러 수준에 머물렀다. 수출국은 홍콩, 몽골, 일본 등 3개국의 비중이 70%에 달한다. 미국과 독일 등 맥주 강대국으로의 수출은 미미하다. 최근 라면과 떡 등 K푸드가 세계 최대 시장인 미국에서 흥행을 이어가는 것과 비교하면 다소 아쉽게 느껴진다.

국내 대기업 맥주는 라거 중심의 연하고 깔끔한 스타일이 주류다. 한국의 무더운 여름, 맵고 짠 음식과 잘 어울리는 장점이 있으나, 글로벌 시장에서 맛으로 차별화하기는 어렵다. 브랜드 스토리의 부재도 약점으로 지적된다. 예컨대 기네스는 흑맥주, 버드와이저는 미국식 라거로 상징성을 갖고 있지만 한국 맥주는 떠오르는 이미지가 명확하지 않다.

로제는 보그 유튜브에서 소맥을 만들 때 하이트진로의 참이슬과 벨기에 맥주 스텔라 아르투아를 섞는다. 제품 선택에 이유가 없었을 수도 있지만, 카스나 테라 등 한국 맥주가 글로벌 시청자들에게는 여전히 낯선 브랜드여서는 아닐까. 글로벌 시장에서 K맥주의 존재감에 대해 곱씹게 되는 부분이다.

삼양식품의 불닭볶음면이 한국식 매운맛으로 해외에서 승부를 봤듯, 맥주에도 우리만의 ‘킥’이 필요하다. 최근 대기업들은 논알코올 맥주, 프리미엄 맥주 등 다양한 신제품을 내놓고는 있지만 중소형 양조장을 기반으로 하는 크래프트 맥주가 차별화를 위해 더욱 애를 쓰는 모습이다.

예컨대 안동맥주의 ‘석복’은 독일 전통 맥주인 고제 스타일을 기반으로 하되 간장독에서 묻어나온 소금 결정과 경상도 특산물인 방아잎을 넣어 만들었다. 전통적이면서 트렌디하고, 세계적이면서 한국적인 맛을 표방한다. 안동맥주 외에도 유자, 홍시, 인삼 등 지역 특산물을 활용해 한국적인 맛과 스토리를 담은 맥주가 여럿 있다. 이 같은 시도를 보면 한국 맥주가 해외에서도 통할 수 있는 잠재력은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월드비어컵 등 세계적인 대회에서 수상하는 맥주도 생기면서 품질 경쟁력도 점차 높아지고 있다.

K맥주가 무난함에 머물지 않고 독창적인 콘텐츠로 거듭난다면 세계 시장에서 더 큰 존재감과 매력을 발휘할 수 있다. 우리 맥주가 해외 소비자들의 일상에 자연스럽게 스며들어 단순한 술이 아닌 문화적 자산으로 발전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