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말 서울 성동구 아파트 입주를 앞둔 최모(35)씨는 요즘 밤잠을 설치고 있다. 오락가락하는 은행의 대출 정책 때문에 수시로 은행에 들러 대출 기준이 바뀌지 않았는지 확인한다. 최씨는 “하루아침에 대출 금리가 낮아졌다가 일주일도 안 돼 다시 대출을 막는다고 했다가, 언제 알아보느냐에 따라 계속 상황이 달라져 언제 대출을 받아야 하는지 혼란스럽다”고 했다.
금융 당국의 일관성 없는 대출 정책에 금융 소비자들의 불만이 폭주하고 있다. 정부는 가계대출을 잡는다는 명목하에 은행을 끊임없이 압박했다. 지난해 하반기 은행은 일제히 대출을 ‘셧다운’하고 가산금리를 높여 가계대출을 억제했다. 당시에는 대출 ‘실수요자’를 어디까지 정의하느냐를 두고 당국의 가이드라인이 명확하지 않자 은행들은 1주택자에 대해서도 대출 문턱을 높이면서 실수요자들이 피해를 입었다.
올해 초에는 “대출 금리도 내릴 때가 됐다”는 당국의 입김에 은행들은 일제히 가산금리를 내리고 대출 빗장을 열기 시작했다. 그러다 지난달 토지거래허가제 해제 등의 여파로 가계대출이 급증하면서 금융 당국은 다시 대출 조이기를 주문했다. 다급해진 금융 당국은 스스로도 민망했는지 은행권에 “운용의 묘를 살리라”며 표면적으로는 자율적인 대응을 주문했다. 은행들은 눈치 보기로 대출 빗장을 걸어 잠그다가, 최근에는 일부 은행이 토허제 구역을 제외한 지역에서 유주택자 주택구입자금 대출을 내주는 등 대출 방침을 또다시 바꾸기 시작했다. 몇 번째 오락가락하고 있는지 셀 수 없다.
당연히 피해는 실수요자에게 돌아가고 있다. 예를 들어 미성년자 자녀가 2명 있는 최씨가 올해 초 주택담보대출을 받으려고 했을 땐 하나은행에서 0.2%포인트의 우대금리를 받을 수 있었다. 하지만 이달부턴 우대금리가 0.1%포인트로 줄었다. 또 최씨는 지방에 아파트 한 채를 갖고 있는 1주택 보유 가구인데, 대부분의 시중은행에서 이번 달부터 1주택자의 대출 제한을 두고 있어 적용 지역별로 대출이 제한되지 않는지도 일일이 따져봐야 한다.
소비자 불신, 가계대출 폭증 우려까지 낳게 된 오락가락 은행 대출정책의 원인은 금융 당국의 명확하지 않은 가이드라인에 있다. 이 와중에도 당국은 ‘가계대출 규제가 일관성 없다’는 지적에 대해 “정책 목표 달성을 위해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 비판을 감내하고 있다”며 원론적인 이야기만 반복 중이다.
4월 가계대출 급증 추이로 봤을 때, 결국 당국이 당부한 은행의 ‘운용의 묘’는 살리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은행의 탓만이라고 볼 순 없다. 정확한 가이드라인이 없다 보니 은행은 당국의 눈치만 보며 오락가락, 땜질식 규제를 반복하고 있다. 그 과정에서 불안해진 소비자들은 오히려 가계대출 증가에 더 힘을 보탰다. 실수요자들은 예측이 불가능한 상황에 발품을 파는 데 여념이 없다.
당국의 혼란은 은행의 혼란으로 이어진다. 이런 혼란은 눈덩이처럼 불어나 소비자 혼란으로까지 이어진다. 4월 가계대출이 얼마나 증가했는지 결과가 나온 이후, 금융 당국이 어떤 태도를 보일지 궁금하다. “가계대출 규제의 첫걸음은 정책의 일관성”이라고 주장한 시중은행 관계자들의 이야기를 당국은 곱씹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