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정 갈등으로 야기된 의대 집단 휴학 사태가 의대생 복귀로 1년 만에 일단락될 것으로 보인다. 정부는 의대생이 복귀하고 정상적으로 수업을 하면 내년도 의대 모집 인원을 증원 이전으로 되돌려주기로 했다. 지난해 ‘과학적 추계’를 내세워 의대 정원을 늘려야 한다고 했으나, 결국 의대 정원은 의대생들과의 협상 카드로 전락했다.
의대생 집단 휴학 사태는 정부가 지난해 2월 필수의료 정책 패키지를 발표하면서 시작됐다. 당시 정부는 필수의료지원 정책을 추진하겠다면서, 보고서 3편을 인용해 5년간 의대 정원을 2000명 증원해 의사 1만명을 추가 배출해야 한다고 했다. 과학적인 계산을 통해 의사 수를 늘려야 한다는 결론이 나왔으니, 의대 증원은 필수 불가결한 정책이라고 주장했다.
의료계는 정부가 과학적 근거가 부족한 보고서를 기반으로 의대 정원을 급하게 늘린다고 반발했다. 사실 보고서도 의대 증원의 필요성을 인정했으나, 증원 속도는 천천히 조절해야 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었다. 저자들도 정부가 일부 내용만 발췌했고, 2000명이라는 증원 규모는 적절하지 않다며 확대 해석을 경계했다.
그럼에도 정부는 과학적 추계 결과로 증원이 필요하다는 결론이 나왔으니, 증원은 계획대로 추진하겠다고 했다. 의대가 있는 대학 40곳의 총장이 모인 ‘의과대학 선진화를 위한 총장협의회(의총협)’가 의대생 복귀를 위해 내년 의대 모집 인원 동결을 요청했을 때도 정부는 “과학적 근거가 있어야 의대 증원 방침을 바꿀 수 있다”는 입장을 고수했다.
하지만 의대생들의 단체 휴학 사태가 장기화하면서 과학적 추계에 대한 논의는 완전히 사라졌다. 심지어 정부는 의대생들이 복귀하는 조건으로 의대 정원을 활용했다. 과학적인 방법으로 의사 인력을 추계했을 때 증원이 필요하다던 1년 전의 입장은 온데간데없다.
이런 상황은 ‘의료인력 수급 추계위원회(추계위)’에서도 재현될 가능성도 있다. 추계위는 정부와 의료계가 함께 참여해 2027년 이후 적절한 의대 정원을 논의하는 기구다. 국회는 2일 오후 본회의를 열고 추계위 설치법안을 통과시켰다. 하지만 추계위가 설치되더라도 과학적 추계에 대한 기대감은 크지 않다.
정부와 의료계는 추계위 구성과 지위를 두고 여전히 의견을 모으지 못하고 있다. 어떻게 의료 인력을 추계할 것인지 논의는 없고, 누구 목소리가 더 크게 반영되는지 따지기만 한다. 이를 두고 추계위가 의대 정원을 두고 정부와 의료계의 협상 테이블 중 하나로 전락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과학적인 추계가 불가능하다면, 현실적으로 시작부터 정부와 의료계가 협의를 통해 의대 정원을 정한다고 해야 한다. 대신 협의 절차를 투명하게 공개하면 된다. 그래야 국민이 납득하든 안 하든 결과에 대해 양자가 책임을 질 것이다. 장기화하는 의정 갈등을 해결하고 국내 의료 시스템을 정상화하려면 과학적 추계라는 허울 좋은 껍데기는 포기하고 현실적인 합의가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