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상목 대통령 권한대행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지난 4일 마은혁 헌법재판관 후보자 임명을 또 한번 보류했다. 지난달 27일 헌법재판소가 마 후보자 임명 보류는 ‘국회 권한을 침해한 것’이라고 판단했지만, 윤석열 대통령 탄핵 심판에 미칠 영향을 고려해 결론을 내리지 못한 것이다.

최 대행은 보류 입장을 내기 전 약 1시간 동안 국무위원들과 따로 만났다. 마 후보자 임명 여부에 대한 의견을 듣는 간담회였다. 이 자리에선 “헌재 결정을 반드시 따를 필요는 없다”는 말이 나왔다고 한다. 헌재 판결이 법적 구속력을 갖지만, 어겨도 처벌할 수 있는 규정은 없으니 괜찮다는 논리다. 정부의 법령 해석 수장인 법제처장이 참석한 자리에서 오간 대화다. 국무위원 다수가 여기에 동의했다고 한다.

정부의 이런 결론은 예견됐던 일이다. 헌재가 졸속 심리와 편파성 의혹, 헌재소장 권한대행의 여러 논란으로 불신을 자초한 탓이 크다. 국회의장이 국회 본회의 의결 없이 권한쟁의를 청구한 것도 절차적 적법성을 훼손했다. 재판관 8명 중 3명이 “의장 단독으로 행동하는 위법적 상황이 반복될 수 있다”고 했다.

그러나 행정부가 사법부의 한 축인 헌재 결정을 무시할 수 있던 더 큰 배경은 따로 있다. 입법부가 보낸 ‘신호’가 결정적이었다. 집권당이 헌재를 절대악(惡)으로 상정하고, 불복의 뒷배를 봐줘서다. 여당은 공식 석상에서 헌재 판결을 따르지 않아도 된다는 메시지를 계속 주고 있다.

국민의힘은 “헌재를 때려 부수자”는 자당 국회의원에 침묵 중이다. 헌법기관이 다른 헌법기관을 쳐부숴야 한다고 했다. 그런데도 당 지도부는 “스스로 불신을 쌓은 탓” “비판적 표현일 뿐”이라고만 했다. 지난 1월 서부지법 폭동이 일자 “그럴만한 이유가 있을 것”이라고 했다. 전한길 씨를 국회로 불러 “헌재를 가루로 만들겠다”고도 했다. 여당 의원 누구도 문제 삼지 않았다. 법 위에 군림하는 광장의 분노를 집권당이 부추겼다.

향후 탄핵 심판 선고를 수용하기도 궁색해졌다. 권성동 원내대표는 ‘헌재의 심판 결과를 받아들이겠느냐’라는 기자 질문에 “당 공식 입장이 안 정해졌다. 절차의 공정성이 확보되지 않았다”고 했다. 불공정하다고 믿으면 판결에 불복해도 된다는 논리다. 헌재 결정 불복을 요구하는 단식 농성장엔 지도부가 달려갔다. 헌재는 최 대행이 마 후보자를 임명하는 게 적법하다고 판결했는데, 이를 따르지 말라는 것이다.

민주주의 기본은 ‘선거’와 ‘판결’ 결과를 받아들이는 것이다. 그게 민주주의와 군주제·독재정의 차이다. 가치와 이익이 충돌해도 공동체가 유지되는 건 이런 시스템이 있어서다. 그 합의를 어기는 건 위법이다. 그런데도 여당이 위법을 권하는 건 지지층 표심 때문이다. 당 지도부 핵심 인사는 사석에서 “광장이 두렵다”고 했다. 강성 지지층을 대변하지 않으면 거리의 분노가 당으로 쏟아질 거라고도 했다.

분노는 원래 광장의 몫이다. 그 분노를 적법하게 반영하는 게 제도권 정당의 역할이다. 그 어떤 선거도 위법을 두둔하면서까지 민심을 수용할 권한을 입법부에 주지 않았다. 대중은 “사회가 권했다”고 탓할 수 있지만, 권력을 위임 받은 정당이 “광장이 권해 그랬다”고 할 건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