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금요? 100만원까지는 (수수료) 1만원입니다”

지난달 31일 서울 영등포구 대림동의 한 중국인 전용 환전소. 한국말로 “송금 좀 하려는데요”라고 묻자 환전소 직원은 망설임 없이 책상 서랍에서 노트를 꺼내며 얼마를 송금할 것이냐고 되물었다. 한 계좌 번호를 보여주자 그는 “중국 은행 계좌면 송금할 수 있다”며 친절하게 설명을 이어갔다.

현행법상 은행 등 등록된 금융기관이 아닌 사설 환전소의 송금 업무는 불법이다. 하지만 대림동, 명동, 자양동 등 중국인 밀집 지역의 사설 환전소 10곳을 돌아본 결과, 단 한 곳도 송금 요청을 거부한 곳은 없었다. 누구나 1만~2만원의 수수료를 내면 하루에 최소 50만원에서 최대 300만원까지 송금이 가능했다.

수사당국은 국내 보이스피싱 조직이 해외로 돈을 빼돌릴 때 사설 환전소의 ‘불법 환치기’를 이용하고 있다고 보고 있다. 이에 따라 연초부터 대대적인 단속에 나섰지만 크게 달라진 게 없다. 보이스피싱 조직원의 ‘돈줄’을 틀어막기 위해선 사설 환전소의 관리·감독을 강화해야 한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고 있는 이유다. 현행 규정상 환전업 등록증은 한국은행에 주민등록등본 등 간단한 서류만 제출하면 누구나 받을 수 있다. 범죄 이력이나 과거 금융 거래 내역을 살펴보는 기본적인 절차도 없다.

한국은행은 환전소 등록 허가를 내주는 업무 외에는 별 다른 조치 없이 수년째 이런 상태를 방치하고 있다. 알고는 있지만 수사권도 없고 인력도 부족하다는 이유에서다.

한국은행은 권한이 부족하다면 다른 기관들과 공조해 실태 파악에 나서고, 불법 송금이 이뤄진 인근 지역의 신규 환전업 등록 심사를 더 철저하게 해야하지만 그런 노력은 보이지 않는다. 몇달전 공문을 보내 자율 점검 수준의 지침만 내렸을 뿐이다. 외국환거래법을 방패 삼아 환전소 범죄 현황도 공개하지 않고 있다.

감시망이 느슨한 틈을 타고 사설 환전소는 우후죽순처럼 늘고 있다. 지난 7월 말 기준 한국은행의 허가를 받은 사설 환전영업점은 총 1464곳이다. 역대 최대 수준으로 1년 전보다 141곳(10%)이 늘어났다.

물론 환전소 내 환치기를 막는 것만으로 보이스피싱 범죄를 완벽하게 예방할 수는 없다. 하지만 지금처럼 관리·감독이 소홀한 환경에선 보이스피싱 조직원들이 전국 어디서든 범죄로 챙긴 돈을 손쉽게 중국으로 보낼 수 있다.

올 들어 보이스피싱 범죄 예방을 위해 많은 사람들이 좋든 싫든 불편함을 겪고 있다. 통장 개설 요건이 까다로워져 대다수 고객들은 은행 창구에서 ‘잠재적 범죄자’ 취급을 받고 있다. 지난 1일부터는 현금입출금기(ATM)에서 100만원 이상을 인출하려면 최소 30분을 기다려야 한다. 이렇게 다수가 희생을 감수하는데 한국은행만 ‘불편한 책임’을 회피하려 한다면 차라리 관련 업무를 금융감독원 등 다른 기관에 넘기는 편이 낫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