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4월 10일, 서울 중구 한복판에서 조용하지만 중대한 기술 혁명이 시작됐다. 대한민국의 대표 AI(인공지능) 과학자들과 로봇 기업, 부품 기업, 수요기업, 자산운용사 등 총 40여 개 기관, 350여 명의 관계자들이 한자리에 모여 ‘K-휴머노이드(인간형 로봇) 연합’의 출범을 공식 선언했다. 민관 합동으로 진행된 이 행사는 단순한 기술 협약을 넘어, 대한민국이 ‘휴머노이드 AI 로봇’을 국가적 문샷(Moonshot·달 탐사와 같은 야심적 연구) 프로젝트로 삼겠다는 역사적인 선언의 장이었다.

오늘날 인공지능은 더 이상 화면 속 언어모델에 머물지 않는다. AI는 신체를 갖추고 현실 세계와 상호작용하는 ‘물리적 AI’로 진화하고 있다. 그 최전선에 있는 것이 바로 인간과 유사한 형태와 행동, 실시간 판단 능력을 갖춘 휴머노이드 로봇이다. 이들은 단순한 기술 장치를 넘어 사람을 보조하거나 대체할 수 있는 차세대 범용 디바이스, 다시 말해 다음 세대의 PC이자 스마트폰으로 떠오르고 있다.

글로벌 기술 패권 경쟁은 이미 시작됐다. 테슬라, 아마존, 마이크로소프트, 엔비디아, 피규어 AI와 같은 글로벌 빅테크 기업들은 수조 원에 달하는 막대한 자금을 관련 분야에 투입하고 있으며, 중국 역시 유비테크, 유니트리 등 신흥 강자들이 정부의 전폭적인 지원 아래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이에 비하면 대한민국은 아직 출발선에 서 있는 것에 가깝다. 기술적 잠재력은 충분하지만, 투자 규모와 인력, 산업 생태계 측면에서는 글로벌 경쟁자들과 큰 격차가 존재한다. 그렇기에 이번 K-휴머노이드 연합의 출범은 단순한 이벤트가 아니라, 2030년 세계 최강국 도약이라는 문샷을 향한 첫 점화인 셈이다.

정부는 휴머노이드 로봇 개발을 위해 R&D(연구개발), 펀드 조성, 인프라 구축, 인재 양성 등 1조 원 이상의 민관 공동 투자계획을 마련했다. 연합은 이 계획을 바탕으로 다섯 가지 핵심 분야에 집중한다. 먼저 로봇의 두뇌에 해당하는 AI 파운데이션 모델을 공동으로 개발하고, 여기에 탑재될 고성능 하드웨어를 경량화·고자유도로 고도화할 계획이다. 동시에 AI 반도체와 고밀도 배터리 기술도 병행 개발하며, 이를 위한 기업 간 공동 R&D 체계도 마련된다.

아울러 휴머노이드 산업을 이끌 스타트업과 전문 인재를 양성하고, 산업현장에서 로봇을 실제로 도입하고 활용할 수 있도록 공급기업과 수요기업 간 협력 체계도 강화할 방침이다. 서울대, KAIST, 연세대 등 국내 최고 수준의 AI 연구진과 레인보우로보틱스, LG전자, 두산로보틱스 등 대표 기업들이 이 프로젝트에 참여하고 있다.

특히 눈여겨볼 점은 K-휴머노이드 연합이 단순히 기술만을 다루는 조직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이들은 한국형 로봇 시뮬레이터, 공용 테스트베드, 고속 연산을 위한 AI 반도체 등 산업 생태계 전반을 아우른다. 산업을 통합하고 생태계를 설계하는 전략 플랫폼으로 진화할 잠재력을 품고 있다. 이는 단지 로봇 기술을 뛰어넘어, 대한민국 산업 패러다임 자체를 한 차원 끌어올리는 계기가 될 수 있다.

이 프로젝트는 과학기술 정책의 차원도 넘는다. 휴머노이드는 AI, 반도체, 배터리, 통신, 콘텐츠, 제조업을 통합하는 범용 기술이며, 동시에 고령화, 노동력 부족, 안전 문제, 산업 현장의 디지털 전환 등 우리 사회가 직면한 구조적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혁신 플랫폼이기도 하다.

문샷은 인간의 달 착륙처럼 상상력을 현실로 전환시키는 실행의 의지다. 과거 미국은 “우리는 달에 간다”고 선언했고, 실제로 달에 도달했다. 이제 대한민국도 마땅히 선언해야 한다. “우리는 사람처럼 보고 듣고 말하고 일하고 배우는 로봇을 만든다.”

이것은 단순한 기술 선언이 아니다. 대한민국이 미래에 도달하는 방식에 대한 새로운 선언이다. 그리고 휴머노이드 AI 로봇은 그 미래를 향한 가장 실질적인 첫걸음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