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대선은 그보다 6개월 전에 선포된 비상계엄을 계기로 조기 실시된 것이다. 계엄을 선포했던 전임 대통령은 탄핵으로 파면당했다. 이후 두 달 만에 새 대통령이 당선돼 취임했다.
이 과정에서 우리는 헌법에 대해 많은 것을, 깊이 있게 생각하게 됐다. 계엄 선포 권한을 헌법이 대통령에게 준 취지는 그 권한을 마음껏 휘둘러도 좋다는 뜻은 아닐 것이다. 오히려 계엄을 선포해야 할 일이 없도록 평소에 국정을 잘 관리해야 한다는 의미로 이해하는 게 마땅할 것이다.
특히 비상계엄은 ‘전시·사변 또는 이에 준하는 국가 비상사태’가 있는 경우에만 선포할 수 있도록 돼 있다. 작년 12월 초에 이런 상황이 있었다고 볼 만한 근거는 보이지 않았다. 굳이 비상계엄을 선포하고 병력을 동원해 헌법이 보장한 국민의 기본권을 제약하려 하거나 정부·법원의 권한을 축소하려고 할 필요는 없었던 것이다.
결국 전임 대통령은 헌법재판소의 탄핵 결정으로 파면당했다. 대통령으로서 ‘헌법을 수호할 책무’를 어겼다는 사법적 판단을 최종적으로 받은 것이다. 국무총리와 중앙 부처 장관들도 비상계엄 선포 과정에서 헌법을 수호하는 방향으로 대통령을 돌려놓지 못했다.
헌법을 수호할 책무가 대통령에게만 있는 것은 아니다. 국회도 국민의 대표로서 당연히 헌법 수호자 역할을 해야 한다.
그런데 국회 과반 의석을 차지하고 있는 더불어민주당은 ‘대통령은 재임 중에 형사재판을 받지 않는다’는 내용의 형사소송법 개정안을 추진했다. 민주당 출신인 대통령이 이미 12개 혐의로 5건의 재판을 받고 있으니 이런 ‘사법 리스크’를 털어내려고 한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또 민주당은 현재 대법원장을 포함해 총 14명인 대법관 숫자를 30명 이상으로 늘리려는 법원조직법 개정안도 시도했다. 민주당 출신인 대통령이 선거법 위반 사건에서 대법관 10대 2 의견으로 유죄 취지의 파기 환송 결정을 받은 상황에서 벌어진 일이다. 대법관 구성 자체를 바꾸면 앞으로 재판에서 다른 판단이 나올 수 있을 것이다.
특정인을 위한 법률은 헌법 위배가 될 가능성이 크다. 평등 원칙에 어긋나기 때문이다. 이런 법을 만드는 국회는 헌법을 수호할 책무에서 멀어진다고 볼 수 있다.
법원도 헌법을 수호할 책무가 있다. 누군가 법을 어기거나 다른 이의 권리를 침해한다면 법원이 심판해야 한다. 이때 헌법과 법률을 엄격하게 적용해야 한다. 정치적 고려가 작용해서는 안 된다.
법원은 민주당 출신 대통령에 대한 형사재판을 잇따라 중단하면서 ‘헌법 84조에 따른 조치’라는 말만 되풀이했다. 이렇게 법원이 재판을 멈추자 민주당은 이른바 ‘대통령 재판 중지법’을 슬며시 내려놓았다.
헌법 84조는 ‘대통령은 내란 또는 외환의 죄를 범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재직 중 형사상 소추를 받지 않는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 조항에 대한 해석은 극명하게 갈린다. 대통령 당선 전에 이미 진행된 재판은 대통령 재임 중에도 진행된다는 입장도 강하다.
법원이 이 조항을 근거로 대통령에 대한 재판을 중단하려면 국민이 납득할 수 있도록 충분한 설명을 하는 게 옳았다. 대통령 임기를 마친 뒤에 재판을 다시 하게 되는지도 명백하게 밝혔어야 한다.
헌법의 수호자 역할을 해야 할 대통령, 정부, 국회와 법원이 모두 국민의 기대에 미치지 못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현행 헌법은 우리 국민이 1987년 군부 통치를 종식시키면서 쟁취한 것이다. 상당한 희생도 겪었다. 앞으로 누구라도 헌법을 무너뜨리려고 한다면 결국 국민이 나설 수밖에 없다. 헌법의 최종 수호자는 국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