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에 딱히 할 일이 없을 때 ‘최동원 다큐멘터리’를 틀어놓곤 한다. 지금 보면 혹사 그 자체이지만, 그래도 가슴 뜨거워지는 순간순간들을 다시 보고 싶을 때가 있어서다.
최동원에 대한 인간적 매력이 치솟는 또 다른 순간이 선수협회 설립 때다. 어느 날 자기 공을 받아준 2군 포수에게 삼겹살을 사줬는데, 당시 연봉이 300만원에 불과했던 2군 포수가 “얼마 만에 먹어보는 고기인지 모르겠다”는 말에 미안함을 느껴 선수협을 만들었다는 일화.
글러브, 배트 등 야구 용품을 개인 돈으로 마련해야 해 집으로 생활비를 가져가지 못한다는 2군 포수의 얘기는 영화 <퍼펙트 게임>의 박만수(마동석 분) 스토리로 활용된다. 탄탄대로가 분명했을 최동원의 앞길은 2군 포수의 얘기에 귀 기울인 그 순간부터 꼬이기 시작했다.
최동원이 처음 힘겹게 불을 지핀 최저연봉이지만 지금도 그렇게 많이 오른 것은 아니다. 현재 프로야구 1군 선수 최저 연봉은 5000만원이고 2군의 경우 3000만원이다. 2005년 1군 최저연봉이 5000만원으로 오른 이후 20년째 동결 상태다.
그런데 프로야구 선수 최저연봉이 오르면, 무조건 선수들에게 긍정적일까.
꼭 그렇지는 않다. 최저연봉이 정해져 있는 지금, 나이 많은 선수는 물론이고 이십대 초반 앳된 선수들도 매해 방출 리스트에 오른다. 20년째 동결인 최저연봉이지만 구단 입장에서는 그래도 부담스러운가 보다. 만약 최저임금이 없었다면 혹시 몰라 데리고 있겠다는 결론이 날 선수들이라도, 연봉이 아깝다는 판단이 들면 그냥 내보낸다. 이들이 꼭 선수로서 실패한 것도 아니다. 지금도 무수히 많은 ‘방출생 신화’가 쓰이고 있는 것을 보면 구단의 눈이 꼭 정확한 것은 아니다. 그런데도 구단은 매해 수십명을 방출한다.
고등학생 시절 선발투수와 4번 타자를 맡았으나 프로에서는 빛을 보지 못하고 20대 초반 나이에 방출된 선수의 아버지가 지인 중 있다. 그는 소주잔을 기울이면서 말했다. “방출, 그거 있잖아요. (성인이지만) 아직 어린 20대 청년이 감당하기엔 너무 큰 시련입니다.”
혹시나 싶어 강조하자면 최저임금이 잘못된 제도라는 것이 아니다. 좋은 제도조차 부작용이 있다는 얘기를 하고 싶을 뿐이다. 아무리 아름다운 최동원 정신이 스며 있는 제도라도, 부작용이라는 것은 있게 마련인 것이다.
하지만 최근 정치권을 보면 부작용이라는 것은 전혀 존재하지 않는다는 듯이 법안을 만들고 있다. 대선을 앞두고 있는 만큼 어느 정도는 이해하지만 그래도 분명 과하다.
더불어민주당이 만든 ‘주가자산비율(PBR) 0.8배’법 역시 취지는 좋다. 최대주주가 기업 주가를 고의로 억눌러 상속·증여세를 줄이는 케이스가 많아, 상속·증여 자산을 계산할 때 주가가 아니라 PBR 0.8배에 맞춰 상속·증여세를 물리겠다는 법이다. PBR은 주가와 회사 자산을 비교하는 수치다. 주가가 얼마든, 회사 자산가치의 80%를 기준으로 상속·증여세를 내게 한다는 것이 이 법의 취지다.
하지만 이 법은 자칫 잘못하면 물려받는 자산보다 세금이 많이 나오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 내가 물려받을 주식 자산이 300억원인데, 이 기업이 비인기 업종이라 PBR이 0.4배에 그친다면 상속 재산이 시세보다 2배(PBR 0.8배 적용)인 600억원으로 잡히고 이로 인해 상속 재산보다 많은 세금을 내게 되는 것이다.
비인기 기업의 PBR이 낮은 것은 우리나라만의 문제가 아니다. 세계 최대 철강사인 아르셀로미탈도 PBR이 0.4배 안팎에 머물고 있고 미국 제너럴모터스(GM) PBR도 0.8배에 못 미친다. 이런 사례에 해당하는 기업들은, 어쩔 수 없이 또 다른 꼼수를 발굴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자사주 의무 소각도 마찬가지다. 지금 투자자들은 자사주 의무 소각은 당연히 필요한 증권 정책인 것처럼 생각하는데, 이 또한 강제했을 경우 부작용이 불가피하다. 자사주를 취득했을 때 소각하는 것을 의무화하면 기업들은 아예 자사주를 매입하지 않으려 할 것이다.
최근 자본시장 참여자들이 주목하는 또 다른 법안이 사모펀드, 그리고 프랜차이즈 규제다. 국회에서 추진하는 프랜차이즈 규제 법안 토론회에 다녀왔다는 한 관계자는 “프랜차이즈를 무조건 악마화하는 태도에 놀랐다”며 걱정했다.
한국 증시를 끌어올리겠다는 부양책도 거친 것이 수두룩하다. 부디 여러 부작용을 꼼꼼히 살피면서 법을 만들었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