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 중앙대 연구진이 서울 대학생 362명을 대상으로 신뢰와 불신에 대해 물었다. 신뢰하는 사람을 떠올리고 그 사람을 왜 신뢰하는지, 불신하는 사람은 왜 못 믿는지였다. 신뢰하는 이유로는 상대의 성품(일관성·언행일치·정직함·진실됨·성품)이란 대답이 38.3%로 가장 많았다. 못 믿는 이유는 언행 불일치가 33.7%로 가장 많았고, 거짓됨이 16.8%를 차지했다.

이 조사는 대상자가 대학생으로 국한됐다는 한계가 있지만, 조사 범위를 넓혔어도 말과 행동이 다른 사람은 믿기 어렵다는 응답이 높은 비율로 나왔을 것이다.

정부 정책이 제대로 작동하려면 신뢰가 중요하다. 신뢰는 일관성에서 나온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알래스카 액화천연가스(LNG·Liquefied Natural Gas) 개발 사업에 참여하라고 요청해도 한국 기업이 주저하는 이유는 나중에 말이 바뀔 수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전임 조 바이든 정부는 인플레이션 감축법(IRA·Inflation Reduction Act)을 통해 미국에 투자한 전기차 및 배터리 기업에 세제 혜택을 주겠다고 약속했고 한국 기업은 수십조원을 투자했다. 그러나 트럼프 대통령은 이를 뒤집고 혜택을 없애겠다고 밝혔다. 한국 기업 입장에서는 뒤통수를 맞게 된 것이다.

6월 3일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국민의힘과 더불어민주당 예비 대선 후보들이 공약을 하나씩 공개하고 있다. 인공지능(AI·Artificial Intelligence) 강국을 만들고 투자를 확대해 국민 소득을 늘리겠다는 내용 등이다.

AI 강국을 만들고 투자를 확대하는 것은 결국 기업이 할 일이다. 기업이 투자를 늘리려면 정부 정책에 대한 신뢰가 있어야 한다. 국민의힘은 예비 대선 후보가 여러 명이라 공약 내용을 판단하기 이르지만, 민주당은 이변이 없는 한 이재명 전 대표로 대선 후보가 굳어지는 모습이다. 이 전 대표와 민주당을 보는 산업계의 시선에는 우려가 섞여 있다. 그간 말과 행동이 불일치한 사례가 적지 않기 때문이다.

이 전 대표는 지난 14일 AI 칩을 만드는 퓨리오사AI를 찾아 “기업이 불필요한 규제에 시달리지 않고 온전히 기술 개발에 몰두할 수 있도록 AI 규제를 합리화하겠다”고 했다. 지난달 14일에는 “(한국에) 엔비디아 같은 회사가 하나 생겼다면 (지분의) 70%는 민간이 갖고 30%는 국민 모두가 나누면 굳이 세금에 의존하지 않아도 되는 사회가 오지 않을까”란 이른바 ‘K엔비디아’ 발언을 하기도 했다.

반도체 업계는 주 52시간 예외를 요청하고 있다. 고객 주문에 따라 신기술·신제품을 집중적으로 개발해야 할 때가 있는데, 주 52시간 근무로는 대응이 어렵기 때문이다. 이 전 대표는 기술 개발에 몰두할 수 있게 해준다고 하는데, 민주당은 주 52시간 예외에 반대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말과 행동이 다른 것이다.

‘K엔비디아’ 발언이 나오자 이재웅 타다 창업주는 “민주당은 혁신 기업을 저주하고 발목을 잡았던 과거부터 반성해야 한다”고 비판했다. 타다는 승차 거부 없는 이동 서비스를 선보이며 큰 호응을 얻었으나 민주당은 택시 기사들이 반발하자 일명 ‘타다 금지법’을 만들어 사업을 막았다.

이 전 대표는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을 만나 “기업이 잘 돼야 나라가 잘 된다”고 했으나 민주당은 기업들이 우려하는 상법 개정안을 밀어붙이고 있다. 상법 개정안은 기업의 이사가 주주의 이익에 반하는 결정을 내리면 처벌받는 내용인데, 기업은 모든 주주를 만족시키기 어렵기 때문에 기업의 경영 활동을 위축시킬 수 있다고 우려한다. 민주당은 노동조합이 불법파업을 해도 기업이 손해배상 소송을 사실상 못하게 막는 ‘노란 봉투법’도 통과시켰다.

통상 말과 행동이 다르면 말보다는 행동을 믿는다. 말의 내용과 태도가 불일치하면 언어적 요소보다 비언어적 요소가 더 중요하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곧 대통령 선거운동이 시작되면 달콤한 공약이 쏟아질 것이다. 대선 후보가 진실을 말하는 지는 그의 과거 행동을 보면 알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