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가 엔비디아의 인공지능(AI) 칩에 대한 대중 수출 규제를 3개월 만에 철회한 가운데, 젠슨 황 엔비디아 최고경영자(CEO)는 트럼프 마음을 돌려놓기 위해 백악관 핵심 참모들을 끈질기게 설득하는 등 총력전을 펼친 것으로 전해졌다.
뉴욕타임스(NYT)는 황 CEO가 트럼프를 설득하기 위해 세계를 누비며 협상가로 변모했고, 중국과의 무역에 강경한 트럼프 행정부 내에서 조용히 글로벌 비즈니스 이익을 지지하는 백악관 인사들과 관계를 다져왔다고 17일(현지시각) 보도했다.
이런 노력은 결실을 보기 시작해 황 CEO는 지난주 백악관에서 트럼프와 만나 자사 칩의 중국 판매 재개 필요성을 강조했다고 소식통은 전했다. 황 CEO는 이 자리에서 미국산 칩이 세계 표준이 돼야 한다며 중국 시장을 중국 현지 경쟁사들에 내주는 것은 중대한 실수라고 주장했다.
그는 원래 로비에는 관심이 없던 전기공학자로, 과거에는 정부 업무를 별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고 두 명의 전 직원은 말했다. 그러나 엔비디아의 AI 칩이 국제 안보 문제와 얽히면서 그는 워싱턴 정가에 뛰어들 수밖에 없었다고 NYT는 진단했다.
초기 설득 과정은 순탄치 않았다. 트럼프 행정부 출범 직후 황 CEO는 트럼프와 만나 AI 정책을 논의했으나 별다른 성과를 얻지 못했다. 이후 상무장관 주선으로 플로리다 마러라고에서 트럼프와 다시 대면한 자리에서 황 CEO는 중국 수출용 AI 칩(H20)이 다른 제품보다 성능이 현저히 낮아 미국의 안보에 위협이 되지 않으며, 수출 제한은 오히려 미국 기업에 손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행정부 관료들은 황 CEO가 칩 성능을 의도적으로 축소 설명했다고 판단했고, 결국 2주 뒤 엔비디아에 H20 칩의 중국 판매를 중단하라는 공식 서한을 발송했다.
상황이 반전된 계기는 황 CEO가 백악관 내부의 핵심 인사들과 관계를 구축하면서부터다. 황 CEO의 주장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인 것은 실리콘밸리 출신이자 백악관 AI 및 가상화폐 정책을 총괄하는 데이비드 색스였다. 그는 바이든 행정부가 시행한 AI 칩의 판매 제한 조치에 대해 회의적이었고, 미국의 칩 판매를 막지 않고 오히려 미국 기술을 세계에 전파하는 편이 낫다고 봤다.
황 CEO는 그런 색스 및 백악관 과학기술정책실의 AI 수석 정책 고문인 스리람 크리슈난과 자주 의견을 나눴다. 중국 화웨이가 지난 4월 발표한 AI 칩(CloudMatrix 384)이 미국 제품과 대등한 성능을 보이면서 색스도 경각심을 느끼기 시작했다. 황 CEO는 공개적으로 “수출 규제는 오히려 중국 기업만 더 강하게 만들었다”며 정책의 전환을 촉구했다.
이후 황 CEO는 트럼프 행정부의 정책 기조에 발을 맞추는 행보를 보였다. 트럼프와 함께 백악관에서 5000억달러(약 700조원) 규모의 미국 내 제조 투자 계획을 발표했다. 그러면서 “트럼프 대통령의 리더십 덕분에 미국 제조업이 성장할 수 있었다”고 트럼프를 치켜세웠다. 다음 날에는 미 하원 외교위원회에 출석해 중국 판매 금지가 미국에 더 큰 해가 된다고 증언하며 여론전을 이어갔다.
결정적인 전환점은 중동에서 마련됐다. 황 CEO는 지난 5월 트럼프 대통령의 중동 순방에 동행했다. 이 자리에서 엔비디아는 UAE와 세계 최대 규모의 데이터센터 허브를 건설하는 대형 계약을 체결했고, 트럼프는 황 CEO를 “내 친구”라고 칭하며 신뢰를 보인 것으로 알려졌다. 엔비디아 내부에서는 이를 ‘중대한 돌파구’로 여겼다고 한다.
황 CEO는 이에 만족하지 않고, 중국 시장 복귀를 추진했다. 중동 계약 직후 그는 대만에서 기자들에게 “수출 규제는 오히려 중국 기업만 더 강하게 만들었다”며 “결국 실패한 정책”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지난주 황 CEO는 워싱턴을 다시 방문해 트럼프 대통령과 최종 담판을 벌였다. 그는 “미국 기술이 달러처럼 글로벌 표준이 되어야 한다”는 논리를 다시 한번 강조했고, 동석한 색스도 이를 지지했다. 한 시간에 걸친 회의 끝에 트럼프는 마침내 엔비디아의 중국 내 칩 판매를 허용하기로 결정했고, 며칠 후 엔비디아는 행정부가 기존 입장을 번복했다고 발표했다.
NYT는 “엔비디아의 AI 칩 중국 수출 재개는 황 CEO가 기술 산업 내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로 자리 잡았음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며, 엔비디아가 실리콘밸리의 반도체 기업을 넘어 세계에서 가장 가치 있는 상장 기업이자 AI 붐의 핵심 기업으로 도약했음을 상징한다”고 평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