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용 삼성전자 회장./뉴스1

부당합병·회계부정 등의 혐의를 받고 있는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의 대법원 선고가 하루 앞으로 다가왔다. 이 회장이 10년째 묶여 있던 사법 족쇄를 풀고 실적 악화로 위기에 처한 삼성전자에 새 동력을 불어넣을 수 있을지 이목이 집중된다.

재계에서는 오너 사법 리스크가 해소된 후 삼성전자가 적극적인 인수합병(M&A)과 신사업 투자 등 경영 행보에 전념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긍정적 전망이 나온다. 하지만 삼성전자 위기의 진원지나 다름 없는 반도체(DS)부문의 경우 이 회장 취임 이후 M&A나 신사업 투자가 부진했다는 점을 감안할 때 특별한 변화는 없을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16일 재계에 따르면 대법원은 오는 17일 오전 11시 15분 이 회장 사건의 상고심을 열 예정이다. 사건 재판 개시 4년 10개월 만이자 2심 선고 5개월여 만이다. 이 회장은 2015년 제일모직·삼성물산 합병 과정에서 최소 비용으로 경영권을 승계하고, 지배력을 강화할 목적으로 사내 미래전략실이 추진한 부정거래와 시세조종, 회계부정 등에 관여한 혐의로 기소된 바 있다.

지난해 2월 1심에서 19개 혐의 전부에 대해 무죄가 선고된 데 이어, 올해 2월 항소심을 맡은 서울고법도 모두 무죄를 선고했지만 같은 달 검찰은 상고심의위원회를 거쳐 상고했다. 이 회장은 2016년 국정농단 사태부터 시작해 햇수로 10년째 재판장을 오가며 사법 리스크에 시달려 왔다.

삼성에 정통한 재계 관계자는 “이 회장이 회장 자리에 오른 뒤 제대로 된 경영 행보를 보일 기간도 없이 법정 공방에 정상적인 경영자로서의 활동이 어려웠다”며 “선진국 어느 사례를 봐도 대기업의 총수가 한 해에 수십번씩 법정에 출석한 사례를 보기 어렵다. 물리적으로도, 심리적으로도 제대로 기능을 하기 어려운 상태였다”라고 했다.

이 회장은 지난 2월 2심 무죄 선고 직후부터 적극적인 대외행보를 보이며 삼성의 총수라는 이미지를 각인하려 노력해왔다. 무죄 선고 다음 날 샘 올트먼 오픈AI 최고경영자(CEO)와 손정의 소프트뱅크그룹 회장 등을 만나 인공지능(AI) 사업을 논의했고, 최근에는 억만장자 사교클럽 ‘선 밸리 콘퍼런스’에 참석해 미래 사업을 모색했다.

다만 이 회장이 풀어야 할 과제도 산적해 있다. 삼성의 중심인 반도체 부문의 경우 다른 사업부와 달리 20년째 거의 변함 없는 구조로 운영되고 있으며, 중장기적인 전략 구상이 필요한 상황이다. 기존 삼성전자의 전략은 R&D에 집중해 압도적인 기술력의 차이로 수익을 많이 내는 사업 구조였다면, AI 반도체 시대에는 반도체 공정이 복잡화하고 타사와의 합종연횡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인텔, 퀄컴 등 글로벌 반도체 기업들이 적극적인 M&A로 사업 영역을 꾸준히 확장하고 R&D 역량을 강화하는 것과 달리 삼성전자 반도체 부문은 M&A에 소극적인 모습을 보여왔다. 최근 삼성전자는 독일 낸낭방공조 기업 플랙트 인수를 발표했고, MX사업부가 디지털 헬스케어 기업 젤스를 사들였다. 하지만 반도체 분야에서는 여전히 M&A 소식이 없다.

이 회장이 사법 리스크에서 완전히 해방될 경우 대대적 조직 쇄신과 함께 중장기 로드맵을 내놓으며 과거 이건희 선대회장처럼 ‘새로운 삼성’을 표방할 가능성도 있다. 이 경우 지난해 정기인사에서 ‘올드보이의 귀환’ ‘돌려막기식 인사’라는 비판을 받았던 리더십 쇄신과 글로벌 시장에 정통한 외부 인사 영입 등을 통해 급변하는 AI 트렌드에 적극 대응할 것이라는 기대감도 나온다.

삼성전자 고위 관계자는 “아직 판결이 나온 것이 아니기 때문에 뭐가 어떻게 달라질 것이라고 단언하기는 어려운 상황이지만, 사법 리스크 해소가 리더십 문제에 긍정적인 것은 사실”이라며 “삼성 안팎에서 기대하는 대대적 쇄신과 적극적인 M&A 등도 시장 상황과 필요성 등을 감안해서 경영진이 판단하게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