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까지 고대역폭메모리(HBM) 시장 점유율 5%로 ‘꼴찌’에 머물렀던 세계 3위 메모리 반도체 기업 미국 마이크론이 시장 판도를 뒤흔들고 있다. 마이크론은 25일(현지시각) 실적 발표에서 AI 칩 큰손 엔비디아와 AMD를 포함, 4곳의 주요 고객사에 AI 칩 핵심 부품 HBM을 대량 공급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올 하반기 HBM 시장 점유율을 전체 D램 시장 점유율과 비슷한 25% 수준까지 끌어올릴 것이라고 단언했다. SK하이닉스와 삼성전자 뒤를 따르던 마이크론이 양강 체제에 균열을 내고 HBM 시장의 핵심 공급사로 자리매김하겠다는 의지를 명확히 한 것이다.
마이크론은 이날 2025 회계연도 3분기(3~5월) 실적 콘퍼런스콜에서 HBM 경쟁력이 호실적을 견인했다고 강조하며 시종일관 자신감을 보였다. 3분기 매출은 전년 동기 대비 37% 증가한 93억달러(약 12조6600억원), 영업이익은 165% 급증한 24억9000만달러(약 3조3900억원)를 기록하며 시장 예상치를 웃돌았다. HBM 매출이 전 분기 대비 약 50% 급증하며 실적을 견인했고, 이에 힘입어 D램 부문 매출도 70억7000만달러(약 9조6200억원)로 사상 최고치를 경신했다.
산제이 메흐로트라 마이크론 최고경영자(CEO)는 “AI가 고성능 메모리와 스토리지에 전례 없는 수요를 창출하는 변혁의 시대에, 마이크론은 이를 기회로 삼을 수 있는 특출나게 유리한 위치에 있다”며 “현장에서 검증된 HBM3E(5세대 HBM)의 성공을 바탕으로, 주요 HBM 고객들의 신뢰를 얻었고 업계 최저 전력과 최고 성능의 HBM을 제공하고 있다”고 말했다. 특정 고객사에 의존했던 구조에서 벗어나, 그래픽처리장치(GPU)와 주문형 반도체(ASIC) 플랫폼을 모두 공략해 AI 칩 시장의 주요 고객사들을 확보했다는 자신감을 드러낸 것이다.
마이크론은 올해 시장 주력 제품으로 떠오른 HBM3E에서 기술력을 입증하며 AI 가속기 시장의 80%를 점유한 엔비디아 핵심 공급사로 자리 잡았다. SK하이닉스에 이어 업계 두번째로, 삼성전자보다 한발 앞섰다. 삼성전자는 아직 HBM3E를 엔비디아에 공급하지 못하고 있다. 올 3분기 역대 최고치를 달성한 마이크론의 HBM 매출은 15억달러(약 2조원) 안팎일 것으로 증권가는 추정했다. 이는 SK하이닉스의 올 2분기(3~6월) HBM 매출 추정치인 6조원대 중후반의 약 3분의 1 수준이다. 마이크론은 “HBM3E 12단 제품의 수율과 생산량 증대가 매우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으며, 4분기에는 출하량 비중이 8단 제품을 넘어설 것”이라고 전했다.
차세대 제품에 대한 기대감도 나타냈다. 마이크론은 “현재 여러 고객사에 샘플을 공급한 HBM4(6세대 HBM)는 검증된 1베타(1β) D램 기술을 기반으로 초당 2.0TB(테라바이트)를 초과하는 대역폭을 제공하며, 이전 세대보다 60% 이상 더 높은 성능을 보인다”고 했다. 그러면서 “HBM4는 이미 업계 최고 수준인 HBM3E 12단 제품보다도 전력 소비를 20% 더 낮췄으며, 고객사 계획에 맞춰 내년 양산을 시작할 것”이라고 밝혔다.
마이크론이 제시한 2025 회계연도 4분기(6~8월) 가이던스(자체 전망치)도 시장의 예상을 넘어섰다. 마이크론은 오는 4분기 매출 107억달러(약 14조5600억원), 주당순이익 2.5달러, 총 마진 42%를 기록할 것으로 내다봤다. 마이크론은 D램 및 낸드 시장 전반에 대해서도 긍정적인 전망을 내놨다. 올해 D램 비트(bit) 수요 성장률은 10% 후반대, 낸드는 10% 초반대가 될 것으로 예측했다. 메흐로트라 CEO는 “2025 회계연도 전체로도 사상 최대 매출과 견고한 수익성, 강력한 잉여현금흐름을 달성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