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일 오후 2시쯤(현지시각) 중국 베이징 순이구 중국국제전시센터 디지털기술관. 전시장 안으로 들어서자, 엔비디아(NVIDIA) 전시관 앞을 수십 명의 관람객이 스마트폰과 카메라를 든 채 둘러싸고 있었다. 카메라 플래시 소리와 영상 촬영 버튼 소리가 연이어 울렸다.
이들이 촬영하고 있는 건 흰 털옷을 입은 ‘로봇 개’였다. 네 다리에 말 발굽 같은 작은 발을 단 이 로봇은 제자리에서 자연스럽게 걷다가, 별다른 준비 동작 없이 방향을 바꾸며 깡충 뛰어오르기도 했다. 발을 구르거나 엉덩이를 흔드는 움직임도 실제 동물과 비슷하게 자연스러웠다.
하지만 완벽하진 않았다. 로봇의 움직임은 제자리 움직임에 불과했고, 한 차례 뛰는 동작을 하다 옆으로 쓰러졌을 때 자력으로 일어나지 못해, 직원이 급히 달려와 다리를 펴 일으키는 해프닝도 발생했다.
로봇 개 뒤엔 어린이 키부터 성인 키까지 다양한 크기의 휴머노이드(인간형 로봇)가 나란히 전시돼 있었다. 갤봇(GALBOT·银河通用)의 ‘G1’, 베이징휴머노이드로봇혁신센터의 ‘톈궁(天工) 2.0’, 부스터로보틱스(加速进化)의 ‘지아쑤 T1’, 즈핑팡(智平方)의 ‘알파봇 2’ 등 각기 다른 업체의 최신 모델들이 방문객의 눈길을 끌었다. 이는 모두 엔비디아의 로봇 훈련 생태계인 ‘옴니버스’를 통해 학습된 로봇이다.
엔비디아 전시관엔 이 밖에도 그래픽처리장치(GPU)인 지포스 RTX가 적용돼 구동되고 있는 대형 모니터와 컴퓨터들이 전시됐고, 생성형 AI용으로 구축된 세계 최초의 이더넷 패프릭 ‘스펙트럼-4 SN5000’ 등 주요 제품이 전시됐다. 제품 설명을 듣기 위해 전시 부스 앞에 줄이 길게 늘어섰고, 박람회 참가사 관계자와 취재진 등 관람객들의 발걸음이 이어졌다.
이날 베이징에서 개막한 제3회 중국국제공급망촉진박람회(CISCE)는 오는 20일까지 닷새 간 열린다. 총 75개 국가 및 지역에서 650여 개 업체가 참여한다. 함께 참여한 협력사까지 포함하면 실제 참여 기업은 1200개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박람회는 공급망 서비스, 친환경 농업, 첨단 제조, 디지털 기술, 건강, 스마트 자동차, 친환경 에너지 등 총 7개 전시관으로 꾸려졌다. 가장 인파가 붐볐던 디지털 기술 전시관에는 엔비디아 외에도 세계 3위 서버 제조사인 중국의 인스퍼(Inspur)와 중국 가전업체 TCL, 통신업체 ZTE 등이 관람객의 주목을 받았다.
엔비디아는 올해 처음으로 박람회에 참가했다. 젠슨 황 엔비디아 최고경영자(CEO)는 이날 오전 개막식에서 연사로 등장하기도 했다. 대만계 미국인인 그는 자신의 트레이드마크와 같았던 가죽 점퍼를 벗고 중국 전통의상인 탕좡(唐裝)을 입었다.
엔비디아는 그간 미국 정부로부터 AI 칩 중국 판매를 통제받았다. 이를 공개적으로 비판해 온 황 CEO는 올해 세 번째로 중국을 찾았고, 전날엔 AI 칩 ‘H20’의 중국 수출 재개 소식을 알리기도 했다.
황 CEO는 연설에서 중국의 AI 기술과 공급망을 치켜세우며 “150만명 이상의 중국 개발자가 혁신을 현실로 만들기 위해 오늘의 엔비디아를 만들었다”고 말했다.
황 CEO는 딥시크, 알리바바, 텐센트, 미니맥스, 바이두 등 중국의 AI 기업들을 언급하며 “중국의 AI 모델들은 세계적인 수준이고, 세계적인 AI 발전의 원동력이 됐다. 중국의 오픈소스 AI는 세계 진보의 촉매로, 모든 국가와 산업이 AI 혁명에 동참할 기회를 줬고, 오픈소스는 AI 안전에 관한 국제 협력을 가능케 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AI의 다음 물결은 물리 세계를 이해하고 추론하며 과업을 수행하는 로봇 시스템”이라며 “10년 안에 공장들은 소프트웨어와 AI로 구동될 것이고, 로봇들로 이뤄진 팀들이 조직돼 사람들과 함께 일하면서 AI 스마트 제품들을 만들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연설을 마치며 중국어로 “엔비디아는 계속해서 (중국에서) 운영할 것”이라며 “친구들과 손잡고 AI 시대에 함께 번영과 미래를 열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