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가 엔비디아의 인공지능(AI) 반도체 ‘H20’ 칩의 중국 수출을 다시 허용한 것은 지난달 미·중 간 무역 협상에서 중국이 희토류 수출통제를 해제하기로 한 데 따른 조치라는 입장이 나왔다.

젠슨 황 엔비디아 최고경영자(CEO). /AFP=연합뉴스

하워드 러트닉 미 상무부 장관은 15일(현지 시각) CNBC 인터뷰에서 “우리는 중국과 희토류 자석 수출 재개를 합의했고, 그 대가로 중국에 칩을 다시 팔겠다고 했다”며 이같이 밝혔다. 지난 6월 런던에서 열린 2차 미·중 무역 협상에서 양국은 상호 수출 통제를 일부 해제하기로 했으며, 이번 결정은 그 일환이라는 설명이다.

러트닉 장관은 H20 칩에 대해 “이건 오래된 칩”이라며 “우리는 중국에 최고의 제품을 팔지 않는다. 두 번째, 세 번째도 아니고 네 번째 수준의 칩만 판매할 뿐”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엔비디아는 이미 더 성능이 높은 블랙웰, H200, H100 칩을 보유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러트닉 장관은 트럼프 대통령의 전략에 대해 “중국이 자체 개발할 수 있는 수준보다 한 단계 앞선 기술을 계속 개발하고, 그보다 낮은 수준은 중국이 계속 구매하도록 유도하려는 것”이라며 “중국 개발자들이 미국 기술에 중독되도록 하는 것이 목표”라고 말했다.

앞서 엔비디아는 바이든 행정부 시절 고사양 AI 반도체의 대중 수출이 제한되자 이를 회피하기 위해 성능을 낮춘 H20 칩을 별도 제작해 중국에 수출해왔다. 그러나 트럼프 행정부는 지난 4월 중순부터 H20 칩 역시 수출 허가제를 적용하며 통제에 나섰다.

이후 H20 칩 수출통제는 5월 제네바, 6월 런던에서 열린 미·중 무역 협상에서 미국 측 협상 카드로 활용됐다. 스콧 베선트 미 재무부 장관은 블룸버그TV 인터뷰에서 “중국은 우리가 원하는 것을 갖고 있었고, 우리는 중국이 원하는 것을 갖고 있었다”며 “H20 수출통제는 협상에 활용된 카드였다”고 밝혔다.

트럼프 행정부는 자국 기업의 세계시장 점유율 유지를 위한 현실적인 전략이라는 입장이다. 데이비드 색스 AI·가상화폐 정책 총괄은 블룸버그TV 인터뷰에서 “화웨이가 중국과 세계의 AI 반도체 시장을 장악하고, 그 수익으로 경쟁력을 강화하는 것을 막으려면 미국 기업이 일정 수준의 반도체를 판매할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색스는 “다른 나라들이 미국 기술을 사용하지 못하게 하면 오히려 중국 품으로 밀어넣는 결과가 된다”며 “시장 점유율은 미국 기업 아니면 화웨이 같은 중국 기업이 차지하게 되는 제로섬 게임”이라고 경고했다.

그는 또 “우리는 단지 반도체만이 아니라, AI 모델이 구동되는 운영체계와 데이터센터까지 미국 기술이 세계 표준이 되길 바란다”며 “이건 마치 달러화처럼, 기술 패권도 기축통화처럼 굳혀야 한다”고 덧붙였다.

한편 러트닉 장관은 이날 인터뷰에서 미국의 철강 관세 부과와 관련해 한국 등 일부 국가가 전기요금을 통해 자국 철강기업을 사실상 보조하고 있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그는 “중국, 일본, 한국은 전력을 거의 무료로 제공한 뒤 미국에 철강을 덤핑한다”며 “이로 인해 미국 철강산업이 타격을 입고 있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한국 정부와 철강업계는 사실과 다르다는 입장을 유지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