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보건당국이 수십 년간 건강 악화의 주범으로 지목해 온 포화지방에 대한 기존 입장을 재고하고 있다. 이로써 향후 연방 정부의 식이요법 지침에 중대한 변화가 생길 가능성이 제기된다.
14일(현지 시각) 블룸버그통신에 따르면 로버트 케네디 주니어 보건복지부 장관은 미국 농무부(USDA) 주최 행사에서 “단백질과 지방 섭취의 중요성을 뒷받침하는 과학적 증거가 급증하고 있다”며 “우유, 치즈, 요구르트 섭취에 대한 공격을 멈춰야 할 때”라고 밝혔다. 이어 “향후 수개월 내 발표될 신규 연방 식단지침에서 이러한 방향성이 반영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블룸버그에 따르면 육류와 전지유(whole milk) 등 동물성 식품에 다량 함유된 포화지방은 그간 심혈관 질환 등 만성질환의 위험 요인으로 지목돼 왔다. 미국심장협회(AHA), 미국소아과학회(AAP) 등 주요 보건기관은 포화지방 섭취를 줄일 것을 권고해 왔으며 현행 연방 식단지침은 2세 이상 미국인의 포화지방 섭취를 하루 열량의 10% 미만으로 제한하도록 하고 있다.
다만 케네디 장관은 포화지방이 심장병을 유발한다는 단순한 인과관계에 의문을 제기하며 기존 접근법을 정면으로 반박하고 있다. 이날 행사에 참석한 마티 마카리 식품의약국(FDA) 국장 역시 “의료계가 집단적 사고에 빠져 포화지방을 과도하게 악마화한 반면 정제 탄수화물 등 다른 위험 요소에 대한 경계는 소홀했다”며 “이러한 고정관념은 현재의 식단지침 곳곳에 남아 있다”고 비판했다.
이러한 발언은 미국 정부가 수립 중인 차기 식단지침이 기존의 ‘저지방·고탄수화물’ 중심에서 ‘고단백·고지방’ 기조로 전환될 가능성을 시사한다. 연방 식단지침은 학교 급식과 병원 식단, 저소득층 식품보조 프로그램 등 각종 정책의 기준으로 작용하는 만큼 파급력이 적지 않을 전망이다. 만일 신규 지침이 고지방 유제품에 우호적인 방향으로 바뀔 경우 학교 급식에서 전지유와 치즈 제공이 다시 허용될 수 있다는 것이다. 케네디 장관과 브룩 롤린스 농무장관은 “아이들에게 더 영양가 있는 선택지를 제공해야 한다”며 변화 필요성에 공감했다.
다만 일각에선 정부 방향성 변화에 대한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식품과학공익센터(CSPI), 미국소아과학회(AAP) 등 전문가 단체는 앞서 지난 6월 공개 서한을 통해 “과학적 합의는 여전히 포화지방이 심혈관 질환 위험을 높인다는 데 있다”며 현행 기준 유지를 요구했다.
포화지방을 둘러싼 논쟁은 최근 수년간 학계에서 활발히 이어져 왔다. 최근 들어 일부 연구는 포화지방 자체보다 전체 식단 구성과 함께 섭취되는 정제 탄수화물, 지방의 종류와 가공 방식 등이 질병 발병에 더 중요한 영향을 미친다고 보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과학적 논의가 공식 정책에 반영될 가능성이 실제로 제기된 것은 처음이라는 점에서 귀추가 주목되고 있다.
최종 식단지침은 연방 보건복지부와 농무부가 공동으로 주도하는 전문가 자문단의 권고를 바탕으로 결정된다. 미국 정부는 1980년부터 5년 주기로 식단지침을 발표해 왔으며 다음 지침은 하반기 중 공식 발표될 예정이다.
한편 케네디 장관은 인공색소 및 정제 탄수화물에 대해서는 “퇴출이 필요하다”며 강경한 태도를 견지하며 글로벌 식품업계의 긴장 수위를 높이고 있다. 그는 특히 식품에 포함된 인공색소가 주의력결핍 과잉행동장애(ADHD)와 암 발병률을 높이고 있다고 주장, 유제품 업체 40곳과 인공색소 퇴출 계획을 발표한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