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억만장자들의 여름캠프’로 불리는 선밸리 콘퍼런스가 올해도 지난 9일(현지시각) 미국 아이다호주(州) 휴양지 선밸리에서 막을 올렸다.
올해도 팀 쿡 애플 최고경영자(CEO), 마크 저커버그 메타 CEO, 샘 알트먼 오픈AI CEO, 순다르 피차이 구글 CEO 등 빅테크 거물들이 총출동했다. 이재용 삼성전자(005930) 회장도 사실상 유일한 한국인 초청자로 참석해 글로벌 행보에 나섰다.
이 행사는 미국 투자은행 앨런앤드컴퍼니가 1983년부터 연 비공개 행사다. 정식 명칭은 앨런&코 콘퍼런스지만, 열리는 장소를 딴 선밸리 콘퍼런스로 더 유명하다.
매년 7월 초 IT(정보기술), 미디어, 금융 분야에서 주최 측이 엄선해 초대한 극소수 유력 인사만이 모여 보통 5일 동안 친목을 다지고, 첨단 기술 동향을 토론한다.
올해 콘퍼런스를 관통한 최대 화두는 단연 ‘인공지능(AI)’이었다. 외신들은 참석자들이 생성 AI가 가져올 산업 지형의 변화와 미래에 대해 깊이 있는 대화를 나눴다고 전했다.
특히 챗GPT 개발사 오픈AI 샘 알트먼 CEO를 비롯해 구글, 메타, 마이크로소프트(MS) 등 AI 기술 경쟁 최전선에 있는 기업 수장들이 한자리에 모이는 보기 드문 자리였다고 전문가들은 평가했다.
이들 만남은 단순한 기술 교류를 넘어, 앞으로 AI 시장 패권을 둘러싼 합종연횡과 치열한 물밑 경쟁을 예고했다.
베니티 페어는 행사 관계자를 인용해 “선밸리에서 만남은 종종 거대한 기술 동맹이나 예상치 못한 투자로 이어진다”며 “참가자들이 이 자리에서 AI 분야 새로운 파트너십을 발표하더라도 전혀 놀라운 일이 아닐 것”이라고 전했다.
AI와 함께 미디어 산업 재편 문제도 올해 선밸리 콘퍼런스에서 주로 다뤄졌다.
블룸버그에 따르면 현재 매각 절차를 밟고 있는 거대 미디어 기업 파라마운트 글로벌은 이번 콘퍼런스 주요 관심사 중 하나였다. 유력한 인수 후보로 거론되는 워너브러더스 디스커버리 데이비드 재슬러브 CEO와 미디어 거물 배리 딜러 IAC 회장 등이 모두 콘퍼런스에 참석해 인수 전 탐색전을 벌였다.
선밸리 콘퍼런스는 역사적으로 굵직한 인수·합병(M&A)이 성사되는 밀담의 장(場)으로 명성이 높다.
1996년 디즈니의 ABC 인수, 2011년 컴캐스트의 NBC유니버설 인수, 2012년 제프 베이조스 아마존 창업자의 워싱턴포스트(WP) 인수 등이 모두 이곳에서 논의를 거친 후 탄생한 대형 계약으로 알려졌다.
매년 1월 스위스에서 열려 전 세계에 생중계되는 다보스포럼과 달리, 선밸리는 투자은행 앨런앤컴퍼니가 초청한 극소수의 엘리트에게만 문을 연다.
참석자들은 언론 노출을 최소화한 채, 편안한 복장으로 골프나 테니스를 즐기며 미래 사업을 구상하고 인맥을 다진다. 취재나 인터뷰는 금지된다.
이처럼 베일에 싸인 ‘엘리트들의 비밀 회동’은 선밸리 외에도 존재한다. ‘빌더버그 회의’는 1954년부터 북미와 유럽 정·재계, 언론계 유력 인사 120~150명이 모여 국제 현안을 논의하는 비공개 자리다. 구글 공동 창업자 래리 페이지와 세르게이 브린은 매년 여름 이탈리아 시칠리아에서 비공개 ‘구글 캠프’를 연다.
이런 ‘그들만의 리그’는 모두 철저한 비공개 원칙 아래 세계 경제 흐름을 좌우할 중대 사안을 논의한다는 공통점을 지닌다.
국내에서는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올해 선밸리에서 글로벌 빅테크 CEO들과 교류했다. 이 회장은 2002년부터 꾸준히 이곳을 찾았다.
2014년에는 당시 스마트폰 특허를 두고 애플과 ‘세기의 소송’을 벌이던 중, 팀 쿡 애플 CEO를 이곳에서 만나 돌파구를 찾았다.
전문가들은 올해 선밸리 콘퍼런스가 AI 기술 표준과 미디어 시장 재편 향방을 가늠할 중요한 분수령이 될 것이라고 입을 모았다.
억만장자들이 나눈 비공개 밀담이 수개월 안에 글로벌 산업 지형을 바꾸는 나비효과로 이어질 수 있다는 평가도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