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재점화한 관세 폭탄에 미국과 긴밀한 관계를 맺어온 동맹국들이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일본과 캐나다는 물론, 브라질까지 ‘결사항전’을 외치고 나섰다. 베트남은 미국과 관세율 잠정 합의까지 마쳤다가, 트럼프 대통령 말 한마디에 합의가 뒤집혔다고 주장하며 격앙된 반응을 보이고 있다. 글로벌 무역 질서가 또다시 트럼프 리스크에 흔들리는 모양새다.
미국 정치전문매체 폴리티코는 10일(현지시각) 이번 관세 협상이 얼마나 난항을 겪었는지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로 베트남을 조명했다. 보도에 따르면 베트남은 미국과 관세율을 11%로 대폭 낮추는 데 잠정 합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이 막판에 직접 개입해 이를 무효로 만들었다. 폴리티코는 이 사안에 정통한 익명의 관계자 4명을 인용해 “양국 실무 협상단이 11% 관세율에 의견 접근을 이뤘지만, 트럼프 대통령이 응우옌 푸 쫑 베트남 공산당 서기장과 전화 통화에서 이 수치를 무시하고 일방적으로 ’20%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선언했다고 전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초기 혹은 실무 관세 협상에 관여하지 않은 상태였다. 별안간 예상보다 2배 가까이 높은 관세를 부담해야 하는 베트남 측은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알려진 바와 달리 미국과 베트남 사이 새 관세 협정은 최종 서명을 마치지 못하고 현재 교착 상태에 빠졌다고 폴리티코는 이들 관계자를 인용해 보도했다.
다른 동맹국들 반발도 거세다. 아사히신문 등 일본 언론은 11일 이시바 시게루 총리가 트럼프 대통령 관세 통보에 이례적으로 강한 어조로 불만을 표출했다고 했다.
이시바 총리는 지난 9일 참의원 선거 유세 현장에서 “국익을 건 싸움이다. 깔보는데 참을 수 있나”라고 말했다. 이어 그는 “설령 동맹국이라도 정정당당하게 말해야 한다. 지켜야 할 것은 지킬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시바 총리는 이후 방송에 출연한 자리에서도 “(미국에) 많이 의존하고 있으니 말을 들으라는 식이라면 곤란하다”며 “미국 의존에서 한층 더 자립하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일본 언론은 오는 20일 참의원 선거를 앞두고, 어려운 판세를 의식한 이시바 총리가 미국과 제대로 협상하고 있다는 점을 강조하려는 의도라고 분석했다.
미국이 일본에 새로 통보한 관세율은 25%다. 4월 통보했던 24%보다 1%포인트가 올랐다. 관세 시한을 연장해 준 14개국 가운데 미국이 관세율을 올린 나라는 일본과 말레이시아뿐이다.
오노데라 이쓰노리 정무조사회장은 8일 열린 당 회의에서 “편지 한 장으로 통고하는 것은 동맹국에 매우 예의 없는 행위로, 강한 분노를 느낀다”고 말했다.
미국과 국경을 맞댄 캐나다는 유독 심한 분노감을 표출했다. CTV 뉴스는 10일 캐나다 정부가 트럼프 행정부 관세 부과에 단호히 맞설 것이라고 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다음달 1일부터 캐나다산 수입품에 35%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발표했다. 특히 구리 수입품에는 50% 관세를 예고했다. 2023년 기준 미국은 캐나다산 구리 최대 수입국이다. 캐나다 구리 전체 수출액 가운데 절반이 넘는 52%를 미국이 차지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동맹국에 35%가 넘는 전례없는 관세를 부과하는 명분으로 캐나다가 펜타닐 유입 방지에 실패했다는 이유를 들었다. 그러나 맨해튼 연구소 보고서에 따르면 미국에서 압수된 펜타닐 알약 가운데 단 1%만이 캐나다 국경을 통해 들어온 것으로 나타났다.
브라질은 대통령이 직접 나서 통보 받은 50% 관세율에 대한 강한 불만을 나타냈다. 이나시우 룰라 다 실바 브라질 대통령은 이날 관세 공개 서한을 받고 기자들에게 “다른 나라 대통령이 소셜미디어에서 위협하는 건 매우 잘못됐고 무책임한 일”이라며 “트럼프는 세상이 변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우리는 황제를 원치 않는다…우리는 주권 국가이며, 외부의 간섭이나 훈계를 용납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이러한 일방적 관세 조치가 결국 미국 경제에 부메랑이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싱크탱크 힌리히 재단 데버라 엘름스 무역정책 책임자는 “(트럼프 행정부와) 협상 패키지를 개발하기 위해 노력했던 아세안 회원국들은 그렇지 않았던 국가들과 거의 동일한 대우를 받았다”며 협상 무용론을 지적했다. 협상이 무의미하다는 의견이 세계적으로 힘을 얻으면 주요국은 미국과 진지하게 협상에 나서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뉴욕타임스는 10일 “결국 관세의 실제 비용은 외국 제품을 구매하는 미국 기업과 소비자들에게 가장 큰 부담으로 돌아갈 것”이라고 분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