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의 블랙프라이데이’로 불리는 아마존 프라임 데이 행사가 시작 첫날부터 판매 부진이라는 암초를 만났다. 미국 소비 경기에 대한 우려가 현실화한 신호탄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블룸버그는 9일(현지시각) 브랜드 컨설팅 업체 모멘텀 커머스 통계를 인용해 올해 아마존 프라임 데이 첫날이었던 8일 아마존 매출이 지난해 행사 첫날에 비해 41% 급감했다고 밝혔다.
이 회사는 유명 신발 브랜드 크록스와 헤드폰 브랜드 비츠, 마사지건 브랜드 테라바디 등 50개 기업 온라인 판매를 대행한다. 아마존에서 관리하는 기업 매출만 연간 약 70억달러(약 9조6000억원) 규모에 달해 온라인 쇼핑 업계에서 신뢰할 만한 데이터로 평가받는다.
올해 프라임데이는 전체 매출이 줄었을 뿐 아니라 ‘소비의 질’도 나빠졌다. 시장조사업체 뉴머레이터는 올해 프라임 데이에서 유독 짠물 소비 현상이 명확하게 드러났다고 평가했다.
올해 프라임 데이 첫날 팔린 상품 가운데 3분의 2는 20달러(약 2만7000원) 미만이었다. 100달러가 넘는 상품은 3%에 불과했다.
TV나 게임기 같은 상대적 고가 상품 대신 주방세제, 단백질 셰이크 같은 생필품 등이 올해 가장 많이 팔린 품목에 이름을 올렸다. 뉴머레이터에 따르면 가구 당 평균 지출액은 지난해 110달러에서 106달러로, 품목당 평균 구매액도 28달러에서 25.46달러로 줄었다.
블룸버그는 관세 정책 변화에 따른 불확실성과 지속적인 물가 상승 압박에 소비자들이 느끼는 불안감이 커지고 있다고 평가했다.
소비자뿐 아니라 판매자들의 사정도 복잡해졌다. 아마존은 미국 최대 온라인 쇼핑몰이다. 대중성이 높아 서민들 저가 상품 수요가 많다. 아마존에 입점한 수많은 판매자들이 이 수요를 겨냥해 중국 등지에서 저렴한 상품을 대량으로 들여와 판다.
하지만 새 관세 협정 이후 중국산 수입품에 대한 가격 부담이 커지면서, 이들 판매자는 이전만큼 저렴하게 상품을 공급하기 어려워졌다. 결국 늘어난 비용을 감당하지 못한 일부 판매자들은 프라임 데이 할인에 소극적으로 나서거나 아예 참여를 포기했다고 블룸버그는 전했다.
소비자들 사이에서도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것 없다’는 평가가 나왔다. 아마존은 예년 이틀간 벌이던 행사를 올해 나흘로 두 배 늘렸다. 관세 우려를 넘어서기 위한 전략이었다.
하지만 긴 행사 기간은 오히려 독이 됐다. 소비 경기가 침체한 가운데, 행사 기간이 길어지자 소비자들이 “행사 말미에 더 좋은 딜이 나올 수 있다”며 구매를 서두르지 않는 현상이 벌어졌다. 존 셰어 모멘텀 커머스 최고경영자(CEO)는 “이전 짧은 세일 기간 동안 소비자들은 ‘놓치면 안 된다’는 긴박감을 느꼈지만, 이제 그 효과가 사라졌다”고 분석했다.
아마존은 즉각 반발했다. 아마존 대변인 제시카 마틴은 “실제 판매 데이터에 접근할 수 없는 컨설팅 회사가 일방적으로 내놓은 주장”이라며 “매우 부정확한 수치”라고 반박했다. 하지만 아마존은 이를 반박할 실제 데이터를 제시하지 않아 논란을 키웠다.
프라임 데이는 2015년 유료 회원 확보를 위해 처음 열렸다. 이후 열돌을 넘긴 이 행사는 이제 월마트, 타겟 등 대형 유통업체까지 같은 시기 맞불 할인전에 뛰어들게 만드는 여름 경제 바로미터로 자리잡았다.
미국 국내총생산(GDP) 가운데 약 70%는 소비가 차지한다. 미국인 지갑 사정은 곧 미국 경제 체력이다. 이는 전 세계 경제와 직결된다. 미국 소비가 둔화하면 한국을 비롯한 수출 중심 국가들 대미 수출 역시 줄어든다. 프라임 데이 성적표에 전 세계가 주목하는 이유다.
아직 속단하기는 이르다는 신중론도 나온다. 일각에서는 행사 기간이 나흘로 늘어난 만큼, 남은 기간 판매량이 반등할 수 있다는 기대감을 보였다.
아만다 쇤바우어 뉴머레이터 연구원은 “소비자 한 명이 지출한 비용은 낮아졌지만, 판매량이 전반적으로 늘어나면 작년 기록을 깰 여력이 남아 있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