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경제가 정치와 행정 실패를 넘어 구조적인 성장 정체에 빠졌다는 분석이 제기됐다.

마틴 울프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 수석 논설위원은 7일(현지 시각) 칼럼에서 “영국은 정치·국가·경제라는 세 가지 실패를 겪고 있으며, 그중에서도 경제 실패가 핵심”이라고 지적했다.

런던 시내 전경. /로이터=연합뉴스

울프는 “영국의 정치와 행정은 여전히 비교적 건전하고 유능하지만, 경제는 합리적인 과세 수준에서 기대되는 공공서비스와 생활 수준을 제공하지 못하고 있다”며 “생산성 정체와 실질 소득 증가 부진이 장기 침체의 본질”이라고 평가했다. 실제로 국립경제사회연구소(NIESR)에 따르면 2007년부터 2024년까지 17년간 1인당 실질 가처분소득은 14% 증가에 그쳤다. 1990년부터 2007년까지 같은 지표가 48% 늘었던 것과 비교하면 현저히 낮은 수준이다.

국제통화기금(IMF) 통계에 따르면 2008년 이후 영국의 연평균 1인당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은 0.7%에 불과해 주요 7개국(G7) 중 이탈리아를 제외하고 최저 수준이었다. 생산성 지표도 부진하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따르면 2007~2023년 영국의 시간당 실질 생산성 증가율은 6%에 그쳤다. 같은 기간 미국은 22%, 유로존은 10%였다.

울프는 “생산성 부진으로 인해 성장 기대가 꺾이면서 정치적 선택이 제로섬 게임으로 전락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한 집단의 소득을 늘리려면 다른 집단의 몫을 줄여야 하는 구조가 고착화됐다는 것이다.

여기에 인구구조 변화까지 겹치고 있다. 고령 인구 비중 확대와 함께 생산가능인구는 정체되고 있으며, 생산적 노동을 수행하는 인구보다 연금이나 실업급여 등 이전소득에 의존하는 집단이 늘어나면서 재정 부담도 가중되고 있다. 노동시장 유연화 정책은 기대와 달리 비정규직 확대와 저임금 고착으로 이어졌고, 이민 규제는 숙련 노동 공급을 제약해 경제 전반의 활력을 떨어뜨렸다는 평가도 나온다.

울프는 또 “대처 실험은 실패했다”며 구조개혁 중심의 신자유주의 정책이 근본적인 성과를 내지 못했다고 평가했다. 민영화와 감세 중심의 성장 전략이 지속가능한 생산성 향상으로 이어지지 못했다는 비판이다. 이어 “브렉시트, 감세 등 단기 해법을 주장하는 허풍과 현실을 회피하는 소심함 모두 경제 위기 대응에 효과적이지 않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브렉시트 이후 무역 마찰과 투자 위축이 생산성과 고용 모두에 부담을 주고 있다는 분석이 잇따르고 있다.

정치권의 대응도 미흡하다는 지적이다. 여야 모두 실질 임금 정체와 공공서비스 악화라는 불만에 직면해 있지만, 세금 인상과 지출 확대라는 근본적 선택을 회피하고 있다. 울프는 “성장률 회복은 단기 처방으로 가능하지 않다”며 “정부는 생산성 재점화를 위한 전략 수립과 인프라 투자, 교육·기술 인적자본 강화 등 구조적 해법에 집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특히 정치권은 유권자에게 고통 분담을 정직하게 설명하고, 중장기적인 희생과 보상의 균형을 설득할 수 있어야 한다는 제언도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