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정적(政敵)으로 돌아선 인사들을 향해 연일 추방이라는 초강경 카드를 꺼내 들고 있다.
대상은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와 최근 뉴욕시장 민주당 경선에서 승리한 조란 맘다니 뉴욕주 하원의원이다.
2일(현지시각) AP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맘다니 의원을 향해 이민세관단속국(ICE) 업무를 방해할 시 “체포하겠다”고 공언했다.
트럼프는 전날 머스크를 남아공으로 추방할 지 여부를 묻는 취재진 질문에 “모르겠다”면서도 “우리는 (추방 가능성을) 살펴봐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맘다니와 머스크 두 사람은 모두 외국에서 태어나 미국에 귀화한 이민자 출신이다. 이 때문에 이번 트럼프 발언은 정치적 공세를 넘어, 대통령이 귀화 시민 국적을 박탈하고 추방할 수 있는지에 대한 법적 논쟁으로 번졌다.
머스크는 1971년 남아프리카공화국 프리토리아에서 태어났다. 기술자였던 아버지와 캐나다 출신 모델 어머니 사이에서 자랐다. 그는 17세가 되던 해 어머니 국적을 따라 캐나다로 이주했다.
머스크는 1992년 미국 펜실베이니아대학교로 편입하며 미국 땅을 밟았다. 졸업 후에는 전문직 취업비자(H-1B)로 실리콘밸리에 남아 잇달아 창업에 성공했다. 그리고 2002년 마침내 미국 시민권을 따냈다.
올해 33세인 맘다니 의원은 1991년 우간다 캄팔라에서 인도계 석학 부부 사이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컬럼비아대 교수인 마무드 맘다니, 어머니는 세계적인 영화감독 미라 네어다. 그는 7세에 가족과 함께 뉴욕으로 이주해 성장했다. 미국 시민권은 2018년 취득했다. ‘민주적 사회주의자’를 표방하는 그는 진보적인 정책을 앞세워 최근 뉴욕시장 민주당 경선에서 앤드루 쿠오모 전 뉴욕 주지사를 꺾는 이변을 일으켰다.
한때 트럼프 ‘1호 친구(fist buddy)’였던 머스크는 지난달 이후 적으로 돌아섰다. 머스크가 트럼프 행정부 핵심 정책 법안에 공개적으로 반대하면서 두 사람 관계는 돌이킬 수 없게 됐다. 맘다니는 트럼프 행정부 이민 정책 등을 꾸준히 비판해 온 대표적인 진보 정치인이다.
전문가들은 시민권 박탈, 즉 ‘귀화 취소(Denaturalization)’는 대통령 행정명령이 아닌, 법무부가 연방법원에 소송을 제기해 승소해야만 가능한 엄격한 사법 절차라고 강조했다.
미국 수정헌법 제14조는 미국에서 태어난 모든 이에게 시민권을 부여하는 ‘출생지주의’를 택한다. 법적 절차를 거쳐 시민이 된 귀화자에게도 이와 거의 동등한 권리를 보장한다.
미국 법무부 웹사이트에 따르면 귀화를 취소하려면 귀화 과정에 명백한 결격 사유가 있었음을 입증해야 한다. 귀화 신청 과정에서 중대한 사실을 의도적으로 숨기거나, 거짓 진술을 한 경우에 한정된다.
구체적으로는 테러 조직 연계, 전쟁 범죄나 인권 침해 가담, 중범죄 전과, 위장결혼처럼 귀화 자격에 영향을 미치는 사실을 숨긴 경우가 해당한다.
알자지라는 전문가를 인용해 “정치적 견해가 다르다는 것은 귀화 취소 사유가 될 수 없다”며 “가장 최근 귀화를 취소한 사례는 영국 출신 엘리엇 듀크로, 그는 지난 6월 13일 아동 성 착취물을 소지·배포한 혐의로 유죄 판결을 받아 시민권을 잃었다”고 전했다.
과거 미국에서 귀화 취소 사례는 자주 벌어졌다. 통계에 따르면 1907년부터 1967년까지 미 연방 대법원은 60년 동안 약 2만2000명에게 귀화 취소 판결을 내렸다.
하지만 1967년 연방대법원이 아프로임 대 러스크 사건에서 “정부는 명백한 사기 행위 없이 귀화한 자의 시민권을 박탈할 수 없다”고 판결하면서 상황이 바뀌었다.
이 판결 이후 지난 60여 년간 귀화가 취소된 인원은 150명 미만이다. 그마저도 대부분 나치 부역 사실을 숨긴 전범들이나 서류를 조작한 이들이었다.
스티븐 예일-로어 코넬대 법학 교수는 로이터 인터뷰에서 “시민권은 대통령이 내리는 선물이 아니라 헌법이 보장하는 근본적인 권리”라며 “대통령이 비판자를 추방할 수 있다는 생각 자체가 미국 법 체계의 근간을 위협하는 위험한 발상”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