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아니스트 한지호(33)의 커리어엔 ‘최연소’란 수식어가 자주 붙는다. 그는 지난 2009년 비엔나 베토벤 국제 피아노 콩쿠르에서 최연소이자 한국인 최초로 3위에 입상을 하며 세계 음악계에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고, 지난해엔 미 명문 인디애나대 음악대학 피아노과의 한국인 최초이자 최연소 교수로 임용됐다.

한씨는 재작년 타계한 거장 피아니스트 메나헴 프레슬러(1923~2023)의 후임으로 임용됐다. 각종 세계적인 콩쿠르에서 수상한 한씨에게도 최연소 교수로, 프레슬러의 자리를 대신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다음 달 6일 예술의전당에서 피아노 리사이틀 ‘어린왕자’를 앞둔 그를 23일 서울 서초구 만났다.

지난 23일 서울 서초구 스타인웨이 갤러리에서 조선비즈와 인터뷰 중인 한지호 인디애나대 피아노과 교수 / 조인원 기자

일반적인 전공자보다는 다소 늦은 나이인 11세에 피아노를 시작한 한씨는 독일 에센폴크방 음대에서 학사를 취득한 뒤 하노버국립음대 석사와 최고연주자과정을 졸업했다. 2014년 피아노 부문으로 열린 ‘LG와 함께하는 서울국제음악콩쿠르’에서 우승했고, 같은 해 독일 ARD 콩쿠르에서 1위 없는 2위와 청중상, 현대음악 특별상을 등을 받았다.

ㅡ교수가 되기로 결심한 계기는.

“연주를 하면서 종종 어린아이들을 대상으로 마스터클래스를 진행할 기회가 많았다. 그때 가르치는 재미를 느끼면서, 피아노 전공자들에게 연주자로서의 경험을 나누고 그들이 잘 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 보람차다고 생각했다. 이러한 생각이 들던 찰나, 기회가 닿아 교육자의 길을 걷게 됐다.”

ㅡ왜 인디애나대를 선택했나.

“인디애나 대학교가 미국에서 명문 음대인 것은 잘 알고 있었다. 또한 그곳에서 99세까지 교수로 재직한 피아노 거장 프레슬러의 오랜 팬이다. 프레슬러 교수가 타계한 후에도 팬으로서 그의 발자취를 따라가던 중, 우연히 인디애나 대학교의 교수 임용 공고를 보게 됐다. 교육자로서의 변화에 대해 긍정적인 감정을 갖고 있던 참에, 급히 준비하여 지원하게 됐고 좋은 결과를 얻었다.”

ㅡ연주자와 교수의 역할이 많이 다를텐데.

“피아노를 다루는 일이지만, 비슷한 듯 다른 점이 많다는 것이 사실이다. 연주자는 어떻게 하면 연주를 잘할지 고민하고 연습하는 반면, 교수는 학생들이 연주를 잘할 수 있도록 도와줘야 한다. 손을 다루는 기술적인 부분에서는 연주자로서 내 손을 잘 파악하고 있기 때문에 어떤 방식으로 손을 써야 할지 잘 알고 있지만, 학생들은 각기 다른 손 모양과 손 사용 방식을 가진다. 마치 의사처럼 각 학생에게 맞는 처방을 내리기 위해 많이 고민해야 했다. 그 과정에서 오랜 연주 경험에서 쌓인 노하우가 도움이 되기도 하고, 학생에게 맞는 교육 방식을 고민하면서 내 연주도 더 나아졌다.”

지난 23일 서울 서초구 스타인웨이 갤러리에서 조선비즈와 인터뷰 중인 한지호 인디애나대 피아노과 교수 / 조인원 기자

ㅡ독일과, 미국 음악 교육 방식은 어떤 차이가 있었나.

“베토벤, 브람스 등 유명한 작곡가들은 대부분 독일 출신이다. 이는 음악에 대한 독일 국민들의 진지함과 오랜 전통을 의미한다. 교육에서 독일은 곡의 해석이나 연주 스킬에 있어 전통을 중시한다. 반면, 미국은 상대적으로 자유로운 분위기를 갖고 있다. 나의 경우 독일에서 유대교 출신의 스승님에게 배웠는데, 그분은 전통을 중시하면서도 곡 해석에 있어 유연한 접근을 했다. 이 경험이 독일에서 배운 내용을 바탕으로 미국 교수로서 균형을 맞추는 데 큰 도움이 됐다.”

ㅡ교수로서 꼭 지키고자 하는 신념이 있다면.

“학생들에게 어떤 말을 하기 전에, 먼저 행동으로 실천하고자 한다. 예전에 영국 런던에 사는 중국계 피아니스트에게 레슨을 받은 적이 있는데, 그분은 항상 저녁 6시에만 레슨을 하겠다고 하셔서 그 이유가 궁금했다. 80대 중반임에도 아침부터 저녁까지 본인의 연습 시간이 필요하셨던 것이다. 그 스승님은 레슨 시간 동안 자신이 연습한 것을 바탕으로 어떻게 연주해야 할지를 알려주셨다. 그 이후로 누군가에게 조언을 할 때, 직접 행동한 것을 바탕으로 해야겠다고 결심했다. 지금도 대학에서 수업을 시작하기 전에 항상 내 연습 시간을 확보하는 이유다.”

ㅡ이번 리사이틀 주제가 ‘어린왕자’인 이유는.

“가장 좋아하는 책이 어린 왕자다. 여러 번 읽어도 매번 한 문장, 한 문장씩 곱씹으며 생각하게 된다. 연주 프로그램을 구성할 때마다 특별하게 만들고 싶다는 생각을 많이 하는데, 좋아하는 어린 왕자를 기반으로 책 속의 장면과 캐릭터에 어울리는 음악을 큐레이팅하면 어떨까 하는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이전에 시험 삼아 어린 왕자를 주제로 작은 연주 프로그램을 진행했는데, 반응이 좋았다. 책이 워낙 유명하다 보니 관객들도 책에 대한 지식이 있어 연주를 더 잘 이해하더라.”

한지호 피아노 리사이틀 '어린왕자' 포스터 / 라이투스 제공

ㅡ리사이틀 곡 중 어린왕자의 메시지가 가장 잘 담긴 것은.

“8번째 곡은 ‘어린 왕자의 장미’다. 라흐마니노프의 첼로 소나타 G단조 Op.19를 피아노 버전으로 편곡했다. 어린 왕자는 자신이 가진 장미가 유일하다고 믿었지만, 장미 정원에서 수많은 장미를 보고 실망에 빠진다. 그때 여우는 어린 왕자에게 “그 장미와 함께한 시간이 있기에 네 장미가 가장 소중한 것”이라고 말해준다. 이 장면은 우리가 가진 것이 다른 것과 비교해 초라해 보일지라도, 그 안에 담긴 시간과 마음이 그것을 특별하게 만든다는 메시지를 전한다. 나는 이 메시지가 참 좋았고, 라흐마니노프의 곡이 이를 잘 표현한다고 생각한다. 이 곡을 연주할 때마다 어린 왕자의 메시지를 되새기며 행복을 느낀다. 관객들에게도 그 감정과 메시지를 고스란히 전달하고 싶다.”

ㅡ관객들이 공연을 통해 무엇을 얻길 바라나.

“어린 왕자를 읽으면 감정이 정화되는 느낌을 받는다. 음악도 마찬가지로 현실에 찌든 영혼을 정화해주고, 메마른 감정을 말랑말랑하게 만들어 준다고 생각한다. 여유를 갖고 감정에 집중하며 세상의 아름다움을 놓치지 않는 것이 잘 사는 인생이 아닐까 싶다. 이번 공연을 통해 각박한 세상을 살아가는 관객들이 세상의 아름다움에 대한 예민함을 갖게 되기를 바란다.”

ㅡ앞으로의 목표는.

“연주도 교육도 음악을 통해 소통하는 분야다. 음악을 매개로 더 많은 사람들과 소통할 수 있는 기회가 있다면 지휘든 작곡이든 다양하게 도전해보고 싶다. 지휘는 대학 시절 피아노를 전공하면서 조금 배웠는데, 당시 재미있었던 기억이 있어 앞으로 더 해보고 싶다. 작곡의 경우 오케스트라 피아노 협주곡이 있으면 지금도 피아노 솔로 부분을 작곡해서 치기도 한다. 이런 도전들을 통해 음악적 영감을 발전시킬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음악을 하면서도 음악을 더 풍성하게 누리고 싶은 마음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