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일(현지시각) 미국 민주당 시장 예비선거에서 33세 ‘사회주의자’ 조란 맘다니 뉴욕 하원의원이 승리하면서 세계 금융 중심지 뉴욕이 전례 없는 좌파 포퓰리즘 정책 실험장으로 변모할 전망이다.
맘다니는 1차 투표에서 43.5%를 득표해 67세 앤드류 쿠오모 전 뉴욕 주지사(36%)를 압도했다. 진보 세력 텃밭 뉴욕에서는 1989년 데이비드 딩킨스 시장 당선 이후 ‘민주당 경선이 사실상 결승전’이라는 인식이 확고하다.
이후 46년간 민주당 예비선거 승자를 시장 선거 본선에서 이겨본 사람은 마이클 블룸버그 뿐이다. 평생 민주당원이었던 블룸버그는 2001년 시장 출마를 위해 공화당으로 당적을 바꿨다. 블룸버그 이후 뉴욕에서 공화당 출신 시장은 아직 나오지 않았다.
이번 맘다니 승리는 뉴욕 좌경화 흐름이 뚜렷해졌음을 보여주는 사건이다. 맘다니는 시장 당선 공약으로 무료 대중교통, 임대료 동결, 기업 대상 100억 달러 증세, 최저임금 두배 인상 등을 내걸었다.
뉴욕타임즈(NYT)와 악시오스 등 미국 매체들은 맘다니 시장 취임 이후 뉴욕 경제 생태계와 850만 뉴욕 시민들 생활 방식이 근본적으로 바뀔 것이라고 예상했다.
가장 빠르게 적용할 가능성이 높은 정책은 ‘무료 버스 운행’이다. 현재 뉴욕 지하철·버스 요금은 2달러90센트(약 3940원)다. 뉴욕에서 버스 무료화가 실현되면 연간 수십억 달러에 달하는 시민 교통비 부담이 해소될 전망이다.
맘다니는 주의원 시절 퀸즈 지역 5개 버스 노선 무료 시범 운행에 성공한 전력이 있다. 그는 “교통 접근성이 좋아지면 저소득층 거주지역과 맨해튼 업무지구 간 연결이 강화되면서 계층 간 이동성이 획기적으로 증가할 것”이라고 말했다.
‘임대료 동결’ 정책은 뉴욕 부동산 시장 지각변동을 예고했다. 현재 뉴욕시민 가운데 4분의 1은 소득 절반에 가까운 40%를 임대료로 쓴다. 임대료 상승을 막으면 최소 수백만명에 달하는 뉴욕시민이 직접적이고 즉각적인 혜택을 받을 수 있다.
반면 뉴욕 부동산 업계는 이 정책이 투자 위축과 신규 건설 중단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며 강력하게 반발했다. 맨해튼 기준 평균 방 1칸 임대료는 현재 월 4000달러를 넘겼다. 임대료 동결 정책을 시행하면 젠트리피케이션(임대료 상승으로 임차인이 내몰리는 현상)에도 제동이 걸릴 것으로 관측된다.
‘최저임금 30달러’ 공약도 파격적이다. 현재 뉴욕시 최저임금은 시간당 15달러다. 시 전역에서 인구 밀도가 높고, 서비스업 비중이 높아 최저임금 근로자 비중도 높다. 맘다니는 2030년까지 최저임금을 두 배로 인상하겠다고 했다. 실현되면 2030년 뉴욕시 평균 연봉은 6만2400달러(약 8500만원)로 미국 전역에서 중간 정도 수준에 근접한다.
그러나 중소기업계와 소상공인들은 “고용 절벽과 인건비 상승에 따른 자동화를 가속화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맘다니 지지층 가운데 상당수는 임금에 민감한 무슬림계 자영업자라 실제 도입 과정에서 극심한 갈등이 예상된다고 매체들은 내다봤다.
기업과 부유층을 대상으로 한 100억달러(약 13조6000억원) 증세는 뉴욕 조세 정책을 뒤바꿀 핵심 공약이다. 현재 뉴욕시 연간 예산은 약 1060억달러다. 공약을 실현하면 10% 가까운 세수 증가 효과를 볼 수 있다.
진보 진영은 환영 입장이다. 전 그리스 재무장관 야니스 바루파키스를 포함한 저명한 국제 경제학자들은 “맘다니가 제시한 계획은 수백만 뉴욕 시민 삶을 곧바로 개선하면서, 더 공정하고 번영하는 뉴욕을 건설할 대담하고 실용적인 청사진”이라고 지지했다.
하지만 월 스트리트는 강하게 반발했다. 식료품점 체인 그리스티즈 소유주 존 캣시마티디스는 “맘다니가 시장이 되면 뉴욕 본점을 닫고 사업을 매각하겠다”며 “본사는 뉴저지로 본사를 이전하겠다”고 위협했다.
월 스트리트에서 ‘베이비 버핏’이라는 별명으로 알려진 행동주의 성향 헤지펀드 투자자 빌 애크먼도 “맘다니가 시장이 되면 뉴욕에서 기업 대탈출을 보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1991년 우간다 캄팔라에서 태어난 맘다니는 7세 때 뉴욕으로 이주했다. 아버지는 컬럼비아대 교수 마무드 맘다니, 어머니는 아카데미상 후보에 오른 영화감독 미라 나이르다. 2018년 미국 시민권을 취득했고 2020년 뉴욕주 의회에 첫 당선됐다.
맘다니가 당선되면 뉴욕시 첫 무슬림 시장이자 최연소 시장이 된다. 엘리트 교육 배경에도 불구하고 그는 주택상담사로 일하며 저소득층 유색인종 압류 방지를 도운 경험을 바탕 삼아 서민 정치를 표방해왔다.
2021년에는 택시 운전기사들 집단 대출 문제 해결을 위해 15일간 단식투쟁을 벌였다. 그 결과 4억5000만 달러 부채 탕감을 이끌어냈다.
그는 현재 미국 진보 정치를 이끄는 거물 가운데 버니 샌더스 상원의원과 알렉산드리아 오카시오 코르테즈 하원의원으로부터 전폭적인 지지를 받고 있다.
민주당 내부에서도 맘다니를 2018년 깜짝 당선에 성공한 알렉산드리아 오카시오 코르테즈에 비유하며 기성 정치인과 차별화했다. 오카시오 코르테즈는 2018년 18년 재임한 베테랑 의원 조지프 크롤리를 꺾고 하원의원 자리에 올랐다.
이후 젊은 진보 성향 후보들이 기성 정치인을 연쇄적으로 꺾는 현상이 미국 곳곳에서 나타났다.
맘다니가 이끄는 뉴욕의 변화는 비슷한 성향 후보들이 새 수장을 꿰찬 미국 다른 대도시에도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월 스트리트가 있는 뉴욕이 사회주의적 정책을 도입한다는 것은 상징적 의미가 크다.
시카고, 로스앤젤레스, 샌프란시스코 등 민주당 강세 지역에서는 유사한 진보 정책 도입 압력이 거세질 것으로 예상된다.
진보 성향이 득세한 지방정부와 트럼프 2기 행정부가 ‘정책 전쟁’을 벌일 가능성도 제기된다.
영국 이코노미스트는 “뉴욕이 북유럽식 사회민주주의 모델을 미국 대도시에 처음 도입하는 실험장이 될 것”이라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