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결제은행(BIS)을 비롯한 주요 중앙은행들이 스테이블코인이 화폐로서의 역할을 수행하기 어렵다고 경고했다. BIS는 24일(현지 시각) 발표한 연례 경제 보고서를 통해 스테이블코인이 화폐로서 갖춰야 할 기본 요건인 단일성, 탄력성, 무결성을 충족하지 못하고 있다고 밝혔다.

각종 암호화폐들. /로이터=연합뉴스

보고서는 “스테이블코인은 중앙은행의 지원이 없고, 고객확인(KYC) 등 전통 금융이 제공하는 통제 장치도 부족하다”며 “대출을 통한 유동성 공급 역시 어렵기 때문에 통화로서의 기능이 제한적”이라고 지적했다.

현재 시중에 풀린 스테이블코인 규모는 약 2500억달러에 이르며, 이 중 대부분은 테더나 서클의 USDC처럼 미국 달러 가치를 따라가는 종류가 차지하고 있다. 개발자들은 국제 송금을 간소화할 수 있다는 점을 장점으로 내세우지만 BIS는 이들이 자금세탁과 마약 밀매 등 범죄의 수단으로 악용될 가능성도 높다고 봤다.

신현송 BIS 통화경제국장은 “스테이블코인은 투자자 대규모 환매 시 시장 혼란을 야기할 수 있다”며 “환율 변동성이 크고, 항상 담보 자산을 1:1로 유지해야 하기 때문에 금융 시스템의 탄력성도 저하된다”고 말했다.

보고서는 특히 “스테이블코인은 단일 화폐처럼 기능하지 못하며, ‘묻지마 수용’이라는 법정화폐의 핵심 속성도 충족하지 못한다”고 평가했다. 또한 “법적·거버넌스 체계에 따라 새로운 위험을 초래할 수 있으며, 신흥국이나 개발도상국에서 통화 주권 약화와 자본 유출 가능성이 크다”고 덧붙였다.

이러한 경고는 스테이블코인을 제도권 금융에 편입하려는 미국 트럼프 행정부의 정책 방향과 배치된다.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을 세계 암호화폐의 수도로 만들겠다”고 공언한 바 있으며 스테이블코인 USD1을 보유한 암호화폐 그룹 ‘월드 리버티 파이낸셜’을 후원하고 있다. 트럼프 행정부는 바이든 정부 시절의 암호화폐 규제도 대폭 완화했다.

BIS는 스테이블코인보다 중앙은행과 상업은행이 참여하는 토큰화된 예금 시스템이 더 나은 대안이 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BIS는 현재 주요 7개국 중앙은행과 43개 상업은행과 함께 ‘프로젝트 아고라’를 운영하며 국경 간 결제의 속도와 효율성을 높이기 위한 실험을 진행 중이다.

보고서는 “사회는 검증된 신뢰와 기술 인프라에 기반한 차세대 통화 시스템을 선택할 수도 있고, 아니면 성능 기준을 충족하지 못하는 디지털 통화로 인해 과거의 실수를 반복할 수도 있다”고 경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