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악관이 지난 22일(현지시각) B-2 스텔스 폭격기를 동원한 이란 핵시설 공습을 ‘힘을 통한 평화(Peace through Strength)’를 구현한 성공적 작전이라고 자평했다.

하지만 워싱턴 정가에서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이번 고강도 군사 행동으로 얻은 것과 잃은 것을 두고 손익 계산이 한창이다.

비판 진영에서는 정치적 고향에 해당하는 마가(MAGA) 지지층과 국제사회 신뢰, 그리고 위태롭게 유지되던 중동 평화가 모두 이번 공습으로 날아갔다고 분석했다.

반면 지지 진영에서는 더 큰 전쟁을 막고 핵 확산 방지에 대한 미국 결의를 보여준 ‘전략적 결단’이었다는 반론이 팽팽히 맞섰다.

‘거래의 달인’을 자처하던 트럼프의 이번 결정이 앞으로 중동 정세를 어떻게 이끌지 전 세계가 주목하고 있다.

22일 뉴욕에서 열린 이란 공격 반대 집회에서 한 시위자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모습이 새겨진 유대교 모자를 보여주고 있다. /연합뉴스

① MAGA ‘전쟁광 귀환’ 비판 속 ‘강한 지도자’ 환호

“우리는 끝없는 중동 전쟁에 수조 달러를 썼다. 이제 그 돈은 미국을 위해 써야 한다.”

트럼프가 입버릇처럼 하던 말이다. 트럼프 핵심 지지층 마가는 이 미국 우선주의와 고립주의에 열광했다.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Make America Great Again)’ 영문 앞글자를 딴 ‘마가’는 2016년 트럼프 대선 캠페인 구호였다. 최근에는 광적인 트럼프 지지자를 일컫는 말로 쓰인다.

딕 체니 전 부통령과 도널드 럼즈펠드 전 국방장관 같은 네오콘들은 조지 W 부시 행정부 시절 중동에 민주주의를 심겠다며 이라크 전쟁을 주도했다. 트럼프는 이들 네오콘(신보수주의자)을 ‘전쟁광’이라고 강하게 비난했다. 마가는 이런 트럼프 모습에 환호했다.

이란 공습으로 트럼프는 자신이 그토록 혐오하던 네오콘을 그대로 답습했다는 비판이 나온다.

영국 가디언은 22일 “트럼프 핵심 지지층이 ‘배신자’라는 단어를 입에 올리기 시작했다”며 “마가 내에서 ‘트럼프가 결국 워싱턴 기득권과 네오콘에 포섭됐다’는 비판이 폭발하고 있다”고 전했다.

시위대가 22일 미국 워싱턴 D.C. 백악관 밖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이란 핵 시설 3곳을 폭격하기로 한 결정에 반대하는 목소리를 내고 있다. /연합뉴스

특히 이번 공습 배후에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의 강력한 요청이 있었다는 사실이 알려지자 이들이 느끼는 분노는 더 커지고 있다.

마가 극렬 지지층 가운데 상당수는 반(反)유대주의, 반(反)엘리트 성향을 공유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은 이번 공습을 미국 국익보다 ‘이스라엘 이익’을 위해 미국 청년들을 사지로 재차 내몬 결정이라고 비판했다.

타임지는 전문가를 인용해 “트럼프의 정치적 자산은 공화당 주류가 아닌, 기성 정치에 염증을 느낀 유권자들의 절대적 지지였다”며 “이번 결정은 그 근간을 스스로 허무는 치명적 실책”이라고 분석했다.

반면 폭스뉴스 등 보수 매체들은 “이번 공습은 임박한 위협을 사전에 제거한 과감한 결단”이라며 나약한 외교 대신 단호한 행동으로 강한 지도자 모습을 보여다고 평가했다.

이들은 트럼프가 네오콘의 귀환이 아니라, 예측 불가능성을 무기로 적을 제압하는 미국 우선주의를 실천했다고 평가했다.

② ‘예측불가 리스크’와 ‘새로운 협상 공식’ 사이

이번 공습은 2003년 이라크 전쟁 이후 미국이 중동에서 단행한 최대 규모 군사작전이다.

트럼프는 이달 초만 해도 “이란과 대화할 준비가 되어 있다”며 협상 가능성을 시사했다. 심지어 이스라엘 선제공격 이후 이란에 “2주 유예기간을 주겠다”고 했다.

약속은 하루 만에 휴지 조각이 됐다. 트럼프는 네타냐후 총리와 통화 이후 전격적으로 이란 핵 시설 공습을 명령했다.

타임은 “전 세계 지도자들이 미국의 예측 불가능성과 변덕에 중대한 경계심(gravely alarmed)을 표하고 있다”고 전했다. 대통령이 본인이 직접 한 말을 하룻밤 사이에 뒤집는 나라와 어떻게 외교를 하고, 협상을 하겠느냐는 불신이 팽배해졌다는 비판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난 4월 미국 워싱턴 백악관에서 열린 회담 후 손을 흔드는 이스라엘 총리 베냐민 네타냐후 연설을 듣고 있다. /연합뉴스

당장 북한과 비핵화 협상도 안개 속에 빠졌다. 북한 역시 이번 공습을 지켜보며 ‘미국은 약속을 언제든 깰 수 있다’는 학습 효과를 얻었을 가능성이 크다. 어렵게 비핵화 협상 테이블에 마주 앉더라도, 최종 합의문에 서명하게 만들 유인을 찾기 어려워졌다.

이란이 북한처럼 비밀리에 핵 개발에 나설 경우 이를 막을 뾰족한 대책도 없다. 이란은 국제원자력기구(IAEA)를 거부한 북한과 달리, IAEA 사찰을 받으며 아슬아슬하게 핵 개발 문턱에 서있었다.

반면 백악관은 이번 공습을 ‘실패한 외교의 종언’이자 ‘새로운 협상 공식의 시작’으로 봤다.

공화당을 중심으로 하는 미국 보수 진영은 오바마 행정부 시절 타결한 핵 합의(JCPOA)가 장기적으로 이란 핵 개발을 막기에 역부족이라고 봤다.

이번 공습은 나약한 합의 대신, 군사력 우위를 바탕으로 더 확실한 비핵화 약속을 받아내겠다는 ‘트럼프식 협상법’ 가운데 하나라는 의미다.

③ ‘힘을 통한 평화’ 일까, ‘혼돈의 중동’일까

백악관은 21일 공습 직후 “이번 공습으로 미국과 동맹국이 더 안전해졌다”고 자평했다.

이번 공습으로 이란 핵시설이 얼마나 파괴됐는지는 미지수다.

이란은 23일 세계 원유 수송량의 20%가 지나는 호르무즈 해협을 봉쇄하겠다며 의회에서 결의안을 채택했다.

호르무즈 해협과 이란을 보여주는 지도와 미국 대통령 도널드 트럼프 3D 프린팅 미니어처./연합뉴스

예멘 후티 반군, 레바논 헤즈볼라 등 여전히 존재하는 이란 대리 세력(proxy)들은 일제히 미군과 이스라엘을 향해 보복 공격에 나설 가능성이 크다.

현재 중동에는 19개 미군 기지에 미군 4만여 명이 주둔하고 있다.

포린폴리시는 “트럼프는 이란과 전쟁에서 이기는 길이 아니라 지는 길을 선택했다”며 “단기적인 군사적 성과에 도취해 장기적인 중동 안정과 미국 국익을 심각하게 훼손했다”고 꼬집었다.

다만 지지자들은 이를 더 큰 전쟁을 막기 위한 불가피한 조치였다고 항변했다. 확전을 유발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전쟁 문턱에서 이란 도발을 억제하는 예방적 자위권 행사라는 주장이다.

이란은 앞서 미국이 상대했던 이라크나 아프가니스탄과는 비교할 수 없는 국력과 군사력, 국제사회 입지를 가진 국가다.

일각에선 이란이 핵 무장을 마친 뒤였다면 중동 전역을 넘어 훨씬 더 파괴적이고 규모가 큰 전쟁이 일어났을 가능성이 크다고 예측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