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이 디지털 위안화의 국제화를 본격화하며, 글로벌 통화 질서 재편에 속도를 내고 있다. 스테이블코인(기존 화폐에 가치를 고정해 발행되는 암호화폐) 등 디지털 통화의 확산에 대처하는 동시에 달러 패권을 경계하려는 정책 방향이 본격화되고 있다는 분석이다.
중국 인민은행은 지난 18일 상하이에서 개막한 루자쭈이(陆家嘴) 포럼에서 디지털 위안화 국제운영센터를 설립한다고 공식 발표했다. 이와 함께 자유무역 계정기능 고도화, 상하이 린강(临港) 자유무역지구 내 디지털 무역·결제 서비스 개혁 시범사업 등 8대 금융 정책을 발표했다.
전날 발표된 정책들은 디지털 위안화의 활용도와 국제 위상을 동시에 끌어올리려는 의도로 풀이된다. 달러가 디지털 통화에서도 막강한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는 가운데, 달러 패권에 균열을 내고 자국 통화의 주권을 강화하기 위한 것이다.
◇ “달러 영향력, 디지털 통화에서도 막강”
19일 중국 경제매체 제일재경에 따르면 저우샤오촨 전 인민은행장은 전날 연설에서 달러 기반 스테이블코인이 확산하고 있다고 경고했다. 그는 “현재 시장에는 이미 다양한 달러 기반 스테이블코인이 등장했다”며 “달러 기반 스테이블코인의 역할은 거래 효율을 높이고 디지털 자산을 포함한 기타 자산 거래를 활성화시키는 측면에서 나타날 수 있다”고 분석했다.
저우 전 행장은 그러면서 달러 기반 스테이블코인의 확산이 디지털 경제의 ‘달러화(化)’를 가속화해 부작용을 낳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그는 “일부 지역에서는 자국 통화 기반의 스테이블코인 개발이 고려되고 있는데, (달러 외) 자국 통화 기반의 스테이블코인이 국제적인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을지는 아직 불확실하다”며 “현재 중남미 등 일부 국가에서는 일정 수준의 달러화 현상이 벌어지고 있는데, 달러화는 여러 부작용을 초래할 수 있다. 대부분의 경우 달러화는 최선의 선택이 아닐 수 있다”고 말했다.
앞서 미국에선 17일(현지시각) 사실상 스테이블코인 등을 금융 수단으로 인정하는 내용의 ‘지니어스 액트(GENIUS Act)’가 상원을 통과, 법제화 절차가 진행 중이다. 이는 미국에서 발행·유통되는 스테이블코인을 연방 차원에서 규제하는 최초의 법으로, 발행자는 발행량에 상응하는 준비금을 현금, 국채 등 고유동성 자산으로 100% 보유해야 한다. 준비금 내역을 매달 공시하고 외부 감사도 받아야 한다. 발행자 파산, 환매, 광고 등에 관한 이용자 보호 조치도 법안에 포함됐다.
미국 제도권 내에서 거래되는 스테이블코인의 준비금이 대부분 미국 국채라는 점에서, 스테이블코인 공급 확대는 미국 국채 수요 촉진으로 이어져 궁극적으로 달러의 디지털 패권을 강화하는 결과를 가져올 것으로 분석된다.
◇ 달러 패권 견제… ‘디지털 위안’ 강화 나서는 중국
중국은 이에 대응해 디지털 법정화폐인 ‘디지털 위안’을 본격적으로 강화하고 있다. 디지털 위안화는 중앙은행이 직접 발행하고, 추적·통제 가능해 통화정책과 금융감독 효율을 높일 수 있다. 전자지갑에서 QR코드로 결제, 송금 등이 가능해 모바일 결제 플랫폼에 의존하지 않아도 된다. 일부 일대일로(一帶一路:중국-중앙아시아-유럽을 연결하는 육상·해상 실크로드) 국가, 홍콩 등에서 무역결제에 활용되고 있어, 향후 확대 시 위안화를 국제화하는 데도 기여할 수 있다.
디지털 위안 강화는 궁극적으로는 위안화를 ‘무역결제 통화’에서 ‘준비통화’로 도약시키려는 것이 목표다. 무역결제 통화는 민간에서 거래할 때 사용하는 통화를 말하고, 준비통화는 각국 중앙은행이 외환보유고에 보유하는 통화를 뜻한다. 무역결제 통화는 거래 편의성이 중요하다면, 준비통화는 신뢰성과 안정성, 유동성 등이 높은지가 핵심이다. 위안화는 무역결제 통화로는 달러에 이어 2위지만, 준비통화로서의 입지는 약하다. 2024년 말 기준 국제통화기금(IMF)의 외환보유액 중 위안화 비중은 2.18%에 그친다.
판궁성 인민은행장은 전날 루자쭈이 포럼 기조연설에서 달러 중심 통화 질서를 깨야 한다면서 ‘글로벌 공공재’로서의 위안화 역할을 강조했다. 그는 “국제 통화 시스템은 복수의 주권 통화가 공존하고 견제하는 구조로 변화하고 있다”며 “특정 국가의 통화가 국제 통화 시스템을 주도한다면, 해당 국가의 경제적 문제가 전 세계로 전이될 수 있으며, 정치·외교적 갈등 시 통화가 무기화될 위험이 존재하고 실제로 그런 사례가 나타나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