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최대 도시이자 ‘세상의 중심’, ‘잠들지 않는 도시’ 같은 수식어로 불리는 뉴욕시 차기 수장을 뽑는 민주당 예비선거가 오는 24일 열린다.
지난 14일부터 조기 투표가 시작되면서, 뉴욕의 미래를 둘러싼 이념 전쟁에 일찍부터 불이 붙었다.
이번 선거는 성추문으로 불명예 퇴진했던 앤드류 쿠오모(67) 전 뉴욕 주지사의 복귀전이자, 33세 ‘사회주의자’ 돌풍의 주역 조란 맘다니 퀸즈주 의원의 시험대다.
미국 주요 매체들은 17일(현지시각) 현지 정치 전문가들을 인용해 이번 선거가 뉴욕이 더 급진적인 좌향좌 노선을 택할지, 아니면 중도·실용주의로 회귀할지 결정하는 분수령이라고 전했다.
뉴욕 시장 선거에서 민주당 예비선거(Primary Election)는 사실상 결승전과 다름 없다. 뉴욕은 등록 유권자 10명 가운데 7명이 민주당원일 정도로 진보 성향이 강세인 민주당 텃밭이다.
역대 뉴욕 시장 선거 결과로 짐작해 보면 민주당 경선에서 승리한 후보가 오는 11월 4일 열리는 본선거에서 공화당 측 후보를 누르고 시장에 당선되는 것이 거의 확실시된다.
이번 민주당 뉴욕시장 예비 선거에는 총 11명 후보가 나섰다. 이가운데 ‘관록의 정치 거물’ 쿠오모와 ‘젊은 반란’ 맘다니 두 후보 대결로 압축된다.
앤드류 쿠오모는 뉴욕 주지사를 3번 연임한 거물 정치인이다. 팬데믹 초기, 단호한 리더십으로 전국적인 명성을 얻었다. 하지만 2021년 성추문 스캔들로 주지사직에서 물러났다. 그는 이번 선거에서 ‘경험 있는 해결사’를 자처하며 재기를 노린다. 핵심 공약은 치솟는 뉴욕시 범죄율을 잡고, 공공 안전을 확보하는 것이다.
최신 여론조사에서 쿠오모는 여전히 선두를 지키고 있다. 보수 성향 싱크탱크 맨해튼 연구소가 17일 발표한 조사에 따르면, 쿠오모는 43%의 지지율로 맘다니(30%)를 13%포인트 차로 앞섰다. 특히 범죄 문제에 민감한 흑인 유권자 사이에서 39%의 높은 지지를 받았다.
그의 아성에 도전하는 조란 맘다니는 우간다 출신 이민자 가정에서 자란 33세 젊은 정치인이다. 그는 스스로를 ‘민주적 사회주의자’로 칭한다.
정치 경력은 쿠오모에 비해 일천하다. 맘다니는 2021년부터 뉴욕주 하원의원으로 활동하며 진보 진영 신성으로 떠올랐다. 그가 내건 공약은 파격적이다. ‘모든 세입자의 임대료 동결’, ‘뉴욕시 버스 요금 전면 무료화’, ‘시 정부가 운영하는 공공 식료품점 설립’ 등이 맘다니 측 주요 공약이다.
맘다니는 젊은 층과 진보 유권자들의 열광적인 지지를 기반으로 무서운 상승세를 타고 있다. 여기에 17일 민주당 진보 진영 측 ‘대부’ 버니 샌더스 상원의원이 공개 지지를 선언했다.
샌더스는 “지금 뉴욕에는 현상 유지를 답습하는 정치가 아니라, 노동자 계층을 위해 싸울 용기를 가진 비전 있는 리더십이 필요하다”며 “조란 맘다니가 바로 그 후보”라고 치켜세웠다. 샌더스의 지지는 선거 막판 부동층 표심을 자극할 최대 변수라는 분석이 나온다.
뉴욕 시장직은 ‘미국에서 대통령 다음으로 힘든 자리(The second toughest job in America)’로 불린다. 850만 인구와 세계 최대 규모 시 예산을 움직인다. 막강한 권한만큼이나 정치적 상징성도 크다. 뉴욕시장 자리는 이전부터 전국구 정치인으로 성장하는 ‘등용문’으로 여겨져 왔다.
루디 줄리아니 전 뉴욕시장은 9·11 테러 당시 위기관리 능력을 보여주며 ‘미국의 시장’으로 추앙받았다. 억만장자 미디어 거물이었던 마이클 블룸버그 역시 12년간 시장으로 재임한 경력을발판으로 민주당 대선 경선에 뛰어들었다.
반면 화려한 조명을 받는만큼 그림자도 짙다. 진보적 정책을 내세웠던 빌 드 블라시오 전 시장은 임기 내내 경찰 노조와 갈등을 빚다 조용히 퇴장했다. 뉴욕 시장직이 정치적 성공으로 가는 보증수표가 아니라, 정치 생명을 끊을 수 있는 독이 든 성배임을 보여주는 사례다.
미국 언론들은 이번 선거가 뉴욕의 정체성을 결정할 중대 선거라고 규정했다.
쿠오모가 승리한다면 유권자들이 그의 행정 경험과 중도·실용주의 노선을 선택했다는 의미다. 민주당 내 급진 좌파 세력에 대한 견제 심리가 작동한 결과로, 당내 온건파 입지를 강화하는 신호탄이 될 수 있다고 전문가들은 분석한다.
반면 맘다니가 이긴다면 미국 정치 지형도가 뒤바뀔 만한 사건으로 기록될 전망이다. 미국 최대 도시가 사회주의자를 시장으로 선택했다는 상징성은 곧 민주당 좌경화가 막을 수 없는 추세라는 반증이다.
나아가 트럼프 행정부에 맞서는 진보 진영에 강력한 구심점이 될 수 있다는 예측도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