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79번째 생일과 미 육군 창설 250주년을 맞아 지난 14일(현지 시각) 워싱턴DC에서 대규모 군사 퍼레이드가 열렸다. 이 행사는 전투 장비와 병력을 동원한 군사력 과시 성격이 강했으며, 같은 날 미국 전역에서는 이를 규탄하는 ‘노 킹스(No Kings·왕은 없다)’ 시위가 2000여 곳에서 동시에 벌어졌다.

14일(현지 시각) 캘리포니아주 로스앤젤레스(LA) 도심에서 열린 "노 킹스(No Kings)" 집회에서 시위대가 트럼프 행정부에 반대하는 시위를 하고 있다. /AFP=연합뉴스

미국 공영 라디오 NPR은 이번 퍼레이드와 시위가 각각 ①미국 내 군의 정치적 역할 ②대통령의 권력 상징 ③시민사회의 저항이라는 세 가지 메시지를 남겼다고 평가했다.

① ‘군의 시민적 이미지’ 부각

이날 퍼레이드는 고속기동포병로켓시스템(HIMARS), 블랙호크·아파치 헬리콥터 등 주요 장비와 병력 6000여 명이 동원된 대규모 행사였지만, 단순한 무기 전시보다는 미군의 역사와 전통을 강조하는 구성으로 진행됐다. 독립전쟁 시대 복장을 한 병사들의 행진부터 현대식 무기 체험 전시까지 이어졌고, 퍼레이드 말미에는 불꽃놀이가 펼쳐졌다.

행사는 기상 악화 우려 속에서도 예정대로 진행됐다. 미 육군은 퍼레이드 비용이 약 2500만~4500만 달러에 달한다고 밝혔다. 일부 관람객들은 행사 자체는 의미 있었지만 정치적 긴장 속에 분위기가 무거워졌다는 반응을 보였다고 NPR은 전했다.

14일(현지 시각) 미국 워싱턴DC에서 열린 육군 창설 250주년 기념 퍼레이드에서 입대 또는 재입대하는 군인들에게 입대 선서를 하고 있다. /AFP=연합뉴스

② 트럼프, ‘상징적 승리’ 거뒀지만... 비판도

트럼프 대통령은 첫 임기 중 추진했으나 무산됐던 군사 퍼레이드를 이번에 실현했다. 그는 행사 연설에서 “우리 군은 세계에서 가장 위대하고 용감한 전투력을 갖추고 있다”며 군을 찬양했다. 보통 전사자 유가족에게 전달되는 접힌 국기가 이날은 트럼프 대통령에게 기념품 형태로 수여되기도 했다.

하지만 민주당과 진보진영은 이번 퍼레이드를 “권위주의적 과시”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개빈 뉴섬 캘리포니아 주지사는 “푸틴과 김정은이 하는 일과 다를 바 없다”고 말했고, 애덤 쉬프 상원의원은 “재향군인 복지를 삭감하면서 군을 동원한 쇼”라고 비난했다.

③ 전국서 ‘노 킹스’ 시위로 저항

퍼레이드가 진행된 날 미국 전역 2000여 곳에서는 ‘노 킹스’ 시위가 열렸다. 진보 성향 시민단체 무브온(MoveOn)과 이민자 권익 보호 단체인 미국시민자유연맹(ACLU), 미국교사연맹(AFT) 등 200여개 단체가 주도한 시위에는 약 500만명이 참여한 것으로 주최 측은 추산했다.

필라델피아, 샌프란시스코, 로스앤젤레스(LA), 댈러스 등에서는 수만 명 규모의 평화 행진이 이어졌고, 알래스카에서는 “내가 원하는 왕은 연어 뿐”이라는 문구가 등장해 화제를 모았다. 반면 버지니아 컬페퍼에서는 차량 돌진 사건이 발생했고, 워싱턴 의회에서는 60명이 체포되기도 했다.

시위 참가자들은 트럼프 대통령이 “견제받지 않는 권위로 미국을 파시즘으로 몰아가고 있다”고 주장했으며, 일부는 감시 우려로 휴대폰 전원을 끄고 소셜 미디어(SNS) 활동을 중단하기도 했다.

이에 대해 NPR은 “시위는 워싱턴DC의 퍼레이드 현장에서는 열리지 않았지만, 동시다발적으로 진행된 전국적 규모의 저항은 트럼프의 군사 이벤트를 둘러싼 미국 사회의 분열과 시민사회의 견제를 상징적으로 보여줬다”고 평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