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아이 한 명당 5000달러(약 670만원)를 지급하는 ‘베이비 보너스’ 정책을 추진한다고 밝혔다.

23일(현지시각) AP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베이비 보너스 제안을 공개하며 “출산율을 높이는 좋은 아이디어”라고 밝혔다. 백악관 역시“출산장려 패키지를 다각도로 검토 중”이라고 덧붙였다.

이 정책은 출산 장려를 목표로 한다. 하지만 혼인 신고한 부모만 지원을 받을 수 있다. 미국 전체 신생아 가운데 미혼모가 낳은 자녀 비중은 39.8%다. 이 때문에 “정책 설계 단계에서 이미 10명 중 4명을 배제한 반쪽짜리”라는 비판이 쏟아진다.

주요 여성 단체들은 이 정책이 전통적 가족 구조를 강요하는 이념적 접근법이라고 비판했다. 여성 단체 어머니의 방(Chamber of Mothers)은 이날 “5000달러 일회성 보너스는 기저귀 값도 못 채운다”고 말했다.

미국 전국 평균 보육비는 연간 1만1582달러(약 1550만 원) 수준이다. 평균 가계 소득을 기준으로 10~32%를 차지한다. 5000달러는 5개월치 보육비에 그친다. CNBC 여론조사에서는 응답자 75%가 ‘일회성 현금보다 공공 보육 지원을 선호한다’고 답했다.

월간지 배니티페어는 “출산 후 산모 건강 관리 비용이 평균 1만4000달러인 실정에 지원금 5000달러로는 턱없이 부족하다”고 평가했다.

트럼프 행정부가 베이비 보너스와 함께 검토 중인 ‘국가 모성 훈장’ 방안도 논란을 불렀다. 이 정책에 따르면 자녀를 6명 이상 둔 여성은 국가가 수여하는 훈장을 받을 수 있다. 뉴욕타임스(NYT)는 “여성을 출산 도구로 여기는 인식을 강화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지난 21일 미국 워싱턴 백악관에서 열린 부활절 행사에 참가한 어린이 앞을 지나고 있다. /연합뉴스

예산 확보 여부도 불투명하다.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CDC) 기준 지난해 미국 신생아 수는 367만명을 기록했다. 이들 전원에게 5000달러를 지급하려면 연간 183억달러(약 24조5000억원)가 필요하다. 미국 의회조사국(CRS)은 “현행 예산 편성으로는 시행이 불가능하다”며 “증세 또는 적자 확대가 불가피하다”고 경고했다.

미국 출산율은 2007년 2.12명에서 2024년 1.64명으로 급감했다. 인구 유지에 필요한 출산율은 2.1명이다. 하버드대 인구학자들은 “일회성 현금 지급은 단기적 효과는 있을지 몰라도, 장기적으로 출산율을 높이려면 구조적 지원이 필수”라고 말했다.

해외 사례도 이를 뒷받침한다. 캐나다는 아동 수당(CCB)으로 2000달러를 현금으로 지급하자 출산율이 일시 상승했다. 그러나 3년 만에 원위치로 돌아갔다. 한국도 다자녀 가정에 1억7000만원 상당 출산·양육 지원금을 제공한다. 하지만 여전히 국내 출산율은 0.78에 머무르고 있다.

반면 스웨덴은 부부 모두 쓸 수 있는 480일 유급휴가 정책으로 합계출산율 1.66을 유지하는 중이다.

백악관 관계자는 “출산율 하락은 국가 안보와 경제 미래에 직결된 문제”라며 “모든 가능한 정책을 검토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여당인 공화당 지도부 역시 “저출생은 안보 이슈”라며 신속한 처리를 요구했다.

반면 민주당은 “헌법이 보장한 생식권 침해”라며 청문회를 준비하겠다고 밝혔다. 민주당 지도부는 “트럼프 행정부의 접근은 미봉책”이라며 “전면적인 사회 안전망 강화가 필요하다”고 비판했다.

일부 전문가들은 유급 육아휴직, 저가 보육시설, 산모 건강 회복을 위한 의료 투자를 병행하지 않으면 출산율 반등이 어렵다고 주장했다. 특히 베이비 보너스 정책은 예산·형평성·헌법 저촉 여부 세 갈래 쟁점이 얽혀 올해 안에 의회를 통과하기 어렵다는 관측이 우세하다.

영국 매체 가디언은 미국 브루킹스 연구소 조사 결과를 인용해 “앞서 바이든 정부가 2021년에 최대 3600달러(약 520만원) 아동 세액 공제를 시행했지만, 출산율 변화는 미미했다”고 평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