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손민균

미국 주요 일간지인 월스트리트저널(WSJ)이 5성급 호텔 스위트룸에서 명품 가방을 선물하며 청혼하는 ‘한국식 청혼 문화’를 집중 조명했다.

15일(현지 시각) WSJ는 지면 1면 하단에 ‘결혼식 전 비싼 장애물: 4500달러짜리 청혼’이라는 제목의 기사를 통해 한국 프로포즈 문화를 소개했다. 혼인율과 출산율이 나란히 곤두박질치는 한국에서 결혼을 앞둔 연인들이 청혼 이벤트에 4500달러(한화 약 570만원)씩을 쓰는 실태에 대하 분석을 담았다. WSJ는 하루 숙박비만 100만원이 넘는 고급 호텔에서 샤넬, 루이비통과 같은 명품 가방을 선물하며 청혼을 하는 것이 한국 사회에서 일반적으로 자리잡혔다고 보도했다.

◇ 외신도 주목하는 ‘K-고가 청혼’

실제 청혼을 받았거나 청혼 계획이 있는 한국인들 인터뷰도 실렸다. 직장인 오모씨(29)는 WSJ 인터뷰를 통해 “누구나 호텔 프로포즈를 선호한다”며 “이는 모든 여성의 꿈”이라고 말했다. 오씨의 남자친구는 최근 5성급 호텔 숙박비, 꽃 장식, 샴페인과 같은 것들을 포함해 총 수백만원을 들여 오씨에게 프로포즈를 했다.

최근 프로포즈를 한 또다른 직장인 하모씨(30) 사례도 소개됐다. 청혼에 총 570만원을 쓴 하씨는 6개월 전 고급 호텔을 예약한 다음 호텔 방에 총 3대의 카메라를 설치해 청혼 과정을 촬영했고 이를 소셜미디어(SNS)에 올렸다. 하씨는 “솔직히 금전적으로 부담이 된다”면서도 “여자친구의 친구들이 많이 부러워했다”고 말했다.

값비싼 청혼 문화 탓에 프로포즈를 늦추는 경우도 있었다. 직장인 김모씨는 “여자친구가 호텔에서 샤넬 가방과 함께 프러포즈 받은 친구의 사진을 보여줬는데 깜짝 놀랐다”며 “머릿속으로 비용이 얼마인지 계산부터 하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결국 김씨는 프로포즈에 쓸 돈을 모으기 위해 올 여름 계획했던 청혼을 연말로 미뤘다.

호텔 프로포즈. /블라인드 캡쳐

◇ 팬데믹 이후 늘어난 고급 호텔 청혼

WSJ는 이처럼 값비싼 청혼 문화가 팬데믹(전염병의 세계적인 대유행) 이후 더욱 증가했다고 분석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으로 해외 여행이나 사람이 많은 곳에 갈 수 없게 된 커플들이 5성급 호텔을 ‘청혼 적격지’로 점찍으면서 이러한 문화가 확산됐다는 것이다.

파티 플래너인 그레이스 홍은 코로나19 팬데믹 이전에는 호텔 청혼 문의가 한 달에 2~3번 정도였지만 최근에는 한 달에 20~30건 수준까지 늘었다고 전했다. 홍씨는 WSJ에 “남성들은 일생에 단 한 번뿐인 프로포즈인 만큼 큰 호텔 방을 예약하길 추천한다”며 “나는 그(남성)들에게 ‘한 달 동안 점심값을 아끼라’고 조언한다”고 말했다.

잠실 롯데 시그니엘 호텔에서 판매하는 프로포즈 상품 '이터널 프라미스' 소개 페이지. /롯데호텔 홈페이지 캡쳐

◇ ‘이때다’ 싶어 청혼 패키지 내놓는 韓 호텔들

이 같은 프로포즈 문화가 한국 사회에 자리잡으면서 고급 호텔들은 잇따라 청호 관련 패키지 상품을 내놓고 있다.

롯데 시그니엘 호텔은 꽃 장식과 샴페인 등이 포함된 ‘영원한 약속’(Eternal Promise)라는 상품을 판매하고 있다. 157만원으로 상당히 고가지만, 월평균 38회 예약이 이뤄질 정도로 인기다. 특히 봄에 가장 수요가 많다고 한다.

콘래드 호텔은 하트 모양의 케이크와 꽃, 와인이 포함된 ‘올 포 러브’(ALL FOR LOVE) 패키지를 출시했다.

WSJ는 “한국 결혼율이 사상 최저 수준으로 떨어졌다”며 “큰 비용이 드는 호화로운 호텔 프러포즈는 결혼율에 도움이 되지 않으며, 커플들에게는 압력을 가하는 웨딩 트렌드”라고 보도했다. 그러면서 한국에서 최근 실시한 여론조사 결과를 인용해 40% 이상의 여성들이 호텔에서 청혼 받기를 원한다고 전했다.

한편 올해 1월 글로벌 투자은행(IB) 모건 스탠리의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인만큼 1인당 럭셔리 사치품에 더 많은 돈을 쓰는 국가는 없는 것으로 발표됐다고 WSJ는 소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