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 ‘세계에서 가장 더러운 에너지’로 불리는 석탄의 사용량을 늘리고 있다. 천연가스 부족 및 팬데믹 종료 분위기로 세계 전력 사용량이 급증하면서 지난해부터 석탄의 사용량은 조금씩 늘고 있었는데,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사태를 일으키면서 저렴한 화석연료의 사용량이 급작스럽게 늘어가게 된 것이다.

25일(현지 시각) 블룸버그 통신은 국제에너지기구(IEA) 자료를 인용해 지난해부터 올해 석탄 사용량 증가 추세로 볼때, 최소 2024년까지 석탄 소비량이 증가할 것이며, 석탄에서 배출되는 이산화탄소가 최소 30억톤 이상 증가할 것으로 추정했다. 석탄이 내뿜는 탄소는 전력 1㎾h당 991g으로 석유(782g)·천연가스(549g) 등 화석연료 중에서도 확연히 높다. IEA는 “현재 나타나는 지표들은 세계 각국의 탄소 중립 목표와 현실의 격차가 벌어지고 있음을 증명하고 있다”며 우려했다.

러시아의 석탄 채굴 장면. /트위터 캡처

지난해 11월 제 26차 유엔기후변화협약 총회에서 141개 참가국이 ‘석탄 발전의 단계적 감축’을 합의한 것도 탈탄소 과정에서 석탄 사용량 감소 영향이 크기 때문이었다. 탄소중립을 목표로 하고 있는 세계가 다른 화석연료에 새로운 투자를 하기는 어려워, 당장 부족한 에너지를 채우기 위해 가장 저렴한 석탄의 비중이 커지는 것이다. 일각에서는 증산이 어려운 석유 대신 석탄의 사용이 지금보다 늘 것이라고 전망한다.

최근 석탄 사용량 증가에는 우크라이나 사태의 여파가 크다. 안정적인 전력 생산을 유지하면서 러시아산 에너지 의존도를 줄이기 위해서다. 외신에 따르면 유럽연합(EU) 전체 발전량에서 석탄 화력발전이 차지하는 비중이 우크라이나 침공(2월 24일) 이전 10%에서 침공 이후 13%로 확대됐다. EU의 러시아산 에너지 의존도는 약 40%에 달한다.

특히 독일의 석탄 화력발전 비중이 우크라이나 침공 전 25%에서 침공 후 37%로 크게 증가했다. 반면 같은 기간 독일의 가스 화력발전 비중은 2%포인트 상승하는 데 그쳤다. 가스 가격 상승, 수급 불안 등으로 석탄 화력발전에 더 많이 의존하게 된 것이다.

전문가들은 이런 상황이 지속되면 EU는 물론 전세계 탈탄소 정책이 이행에 차질을 빚을 것으로 전망한다. EU는 2030년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1990년 대비 최소 55% 감축하기로 약속했지만, 현 상태라면 목표 달성이 어렵다는 진단이 나오고 있다. 유럽 뿐 아니라 세계 각국도 러시아산 에너지 의존도를 줄이기 위해 화력발전을 늘리는 분위기인데, 원유·천연가스 매각 대금이 전쟁 자금으로 쓰이고 있기 때문이다.

서울 시내 한 주유소 모습. /연합뉴스

원래도 석탄 발전의 비중이 높았던 중국도 국내 경기 부흥을 위해 본격적으로 석탄 생산 및 화력발전 강화를 결정했다. 전날 AP통신에 따르면 중국 정부는 올해 석탄 생산량을 3억t 늘리기로 했는데, 이는 지난해 생산량 41억톤의 7%에 해당하는 규모다. 중국은 그간 풍력·태양광 발전에 대규모로 투자해왔으나, 지난해 4분기 경제 성장세가 꺾이고 석탄 부족으로 주요 산업지역의 단전과 공장 가동 중단 사태가 벌어지면서 다시 석탄 화력 발전에 눈을 돌리게 된 것이다.

미국은 다시 셰일오일 생산을 늘리는 분위기다. 기후변화 대응을 우선 과제로 삼는 조 바이든 행정부 정책에 상반되는 정책이나, 유럽의 러시아산 에너지 감축을 지원하기 위함이다. 이에 안토니우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은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인해 화석연료로 회귀하는 것은 미친 짓”이라고 경고했다.

그는 “주요 경제국들이 러시아산 화석연료를 대체하기 위한 전략을 추진하면서 화석연료 감축 정책을 무시하고 있다”며 “이는 화석연료에 대한 장기적 의존으로 이어져 (지구온도 상승폭 제한 목표인) 1.5도로 향한 창을 닫아버릴 수 있다”고 우려를 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