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2일 오전, 중국 동부 안후이성 허페이에 있는 중국 전기차 기업 니오(중국명 웨이라이)의 2공장. 들어서자마자 최대 753대의 차량을 수직으로 걸어 보관했다가 각 라인으로 보내주는 ‘큐브’를 만났다. 독특한 점은 같은 모델끼리 차량을 모아둘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전통 자동차 공장들은 많아야 10개 정도 모델을 집중 생산하는 방식이지만, 이곳은 359만2320개에 달하는 개인 맞춤형 주문을 소화한다. 그럼에도 작업 효율이 떨어질 것이란 우려는 없었다. 지능형 제조 시스템인 ‘톈궁(天工)’으로 생산 처음부터 끝까지 정밀 관리하기 때문이다. 이 덕에 니오는 ‘주문부터 출고까지 14일 내’를 약속하고 있다.

중국 안후이성 허베이시에 있는 전기차 기업 니오 공장. 각각 다른 색상의 자동차가 '큐브'에 보관돼 있다. 이 공장은 지능형 제조 관리 시스템 '톈궁' 덕에 개인 맞춤형 자동차를 14일 내에 생산할 수 있다./이윤정 기자

미국이 전 세계에 투하한 관세 폭탄에 중국만큼 강경하게 맞서는 국가는 찾아보기 힘들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중국산 수입품에 총 145%의 관세를 추가하자, 중국은 곧바로 125% 보복 관세 조치를 내놨다. 사회 통제에 용이한 중국 공산당의 일당 정치 체제, 미국 경기 침체 가능성 등 다양한 요인이 중국 자신감의 원인으로 꼽힌다. 하지만 중국이 기대는 곳은 따로 있다. 바로 니오와 같은 첨단기술 기업이다. 기존 산업의 체질 자체를 바꿔 생산력을 끌어올리고, 이를 통해 미국 관세 영향을 상쇄하겠다는 계산이다. 미·중 갈등 선봉에 이들 첨단기술 기업이 서있는 셈이다.

이참에 중국은 과학기술 강국 목표를 앞당길 태세다. 여기에는 향후 어느 나라에도 약점을 잡히지 않고, 세계 산업계를 제패하겠다는 야심이 깔려 있다. 이러한 중국의 첨단기술 굴기를 최근 중국 내에서 조용하면서도 강력한 산업 발전을 이루고 있는 허페이에서 직접 목격했다. 이곳 첨단기술 기업 종사자들은 하나같이 “우리는 승리할 것”을 확신하고 있었다.

중국 안후이성 허페이시에 있는 전기차 기업 니오의 공장 내부 모습. 로봇팔을 이용해 4개의 문을 다는 데 98초가 소요된다./니오 제공

◇ 전통 제조업의 화려한 변신… 14일 만에 車 만들고, 소리로 결함 찾는다

니오의 허페이 2공장은 1.15㎢(약 35만평) 규모에 달한다. 하지만 공장을 가동하는 직원은 2000명이면 충분하다. 최대 98%에 달하는 자동화율 덕분이다. 차체 조립 공정에만 총 941대의 로봇이 작업을 담당하고 있다. 양이 니오 홍보 디렉터는 “차량 문 4개를 조립하는 데 98초면 된다”며 “각 조립당 오차를 0.5㎜로 제어해 품질 합격률 100%를 실현하고 있다”고 했다. 컨베이어 벨트를 통해 차체가 들어오자 독일 산업용 로봇 기업 쿠카의 로봇 팔 5개가 동시에 달려들어 문을 붙여넣기 시작했다. 세계 산업용 로봇 시장 10%가량을 점유하고 있는 쿠카는 중국 가전기업 미데아 소속이다.

중국 제조업이 첨단기술이라는 옷을 입고 화려하게 변신하고 있는 모습은 허페이 곳곳에서 찾아볼 수 있다. 이곳 국가지능어음(語音)혁신센터에서는 산업 인공지능(AI)과 같은 공학 기술 연구를 진행해 업계를 지원하고 있다. 중국 대표 음성 AI 기업 아이플라이텍(중국명 커다쉰페이)과 개발한 기술이 대표적이다. 결함이 발생했다는 소리가 나는 곳에 태블릿PC를 들이대면 어떤 문제가 있는지 알아낼 수 있다. 센터 관계자는 “의사가 청진기로 문제가 있는지 판단하는 것과 같은 원리”라며 “문제가 발견되면 시스템이 직접 경찰에 신고하고, 직원은 이를 바탕으로 문제를 확인할 수 있다”고 했다.

허페이에 본사를 두고 있는 아이플라이텍 역시 음성 AI 기술을 교육, 의료, 여행 등 각종 산업에 접목 중이다. 특히 이러한 기술은 첨단기술 인재 확보에 필수적이다. 교육의 경우, 학교 교사들은 학생 시험지를 AI로 자동 채점하고, 사람과 대화가 가능한 AI인 초거대 언어모델(LLM)을 학습에 활용한다. 과학 시간이 되면 아인슈타인의 형상을 한 아바타와 함께 문제에 대해 토론하는 식이다. 이는 사람의 음성을 정확하게 인식하는 기술이 뒷받침돼야 한다. 여기에 아이플라이텍은 수십개의 언어를 자동 번역하고, 동시통역까지 가능케 하는 기술도 보유하고 있다. 인재 육성과 글로벌 인재 활용의 효율이 높아질 수밖에 없다.

생산 현장에서 소리로 결함을 찾아낼 수 있는 중국 음성 인공지능(AI) 기술./이윤정 기자

◇ 中 장기전 무기는 첨단기술… “美에 적극 대응할 수 있는 비결”

이번 미·중 무역전쟁에서 중국은 재차 ‘준비돼 있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보복 관세와 같은 직접적 조치는 단기 수단이고, 장기전을 위한 무기는 첨단기술이다. 중국은 관세 영향을 피하는 방안으로 제조업에 첨단기술을 더하는 방법을 택했다. 산업 경쟁력을 끌어올리면 더 좋은 제품을 더 많이 생산할 수 있고, 이를 미국을 제외한 전 세계에 판매하면 전체 파이를 키울 수 있다는 것이 이들의 계산이다.

2035년까지 과학기술 강국으로 거듭나겠다는 목표를 세운 것도 결국 미국은 물론 어느 나라에도 흔들리지 않겠다는 의도가 숨어있다. 미국과 갈등이 가시화된 지난해부터는 본격적으로 ‘신품질 생산력’을 외치며 속도를 더하고 있다. 신품질 생산력은 대량의 자원 투입에 의존하는 전통적인 생산력과 달리 기술 혁신이 주도하는 생산력을 뜻한다. 류웨이바오 허베이시 상무위원은 “(미국) 관세가 우리 경제와 무역에 어느 정도 영향을 주겠지만, 과학 기술의 대대적 발전과 함께 국가 경제와 민생은 흔들림 없이 나아갈 것”이라며 “우리가 적극적으로 (미국에) 대응할 수 있는 비결”이라고 했다.

사실상 첨단기술이 미·중 갈등의 선봉에 서있는 셈인 만큼, 이들은 미국 제재의 타깃이 돼 각종 사업 차질을 빚고 있다. 허페이에 있는 전기차 배터리 기업 고션(중국명 궈쉬안)의 경우, 2023년 8월부터 추진한 24억달러(약 3조5000억원) 규모의 미국 미시간주 공장 계획이 전면 중단된 상태다. 중국과 갈등이 본격화하면서 지역 여론이 악화한 탓이다. 아이플라이텍은 2019년 첫 번째 미·중 무역전쟁 때부터 일찌감치 미국의 제재 리스트에 올랐다. 다른 첨단기술 기업들 역시 미국으로부터 고성능 AI 칩 수입이 막혀 자체 조달 방안을 강구하고 있는 상황이다.

그럼에도 중국 첨단기술 기업들은 자국이 승기를 잡을 수 있다고 보고 있다. 알렌 슝 고션 전략 운영 부사장은 “혁신과 특허가 우리의 장점을 더욱 강화하고 있다”며 “고객은 우리의 가치를 필요로 할 것이라는 확신을 갖고 있다”고 했다. 돤다웨이 아이플라이텍 부사장 역시 “(미국과의 갈등을 계기로) 중국이 자립하고 있다”며 “중국 황산 절벽에서 자라나는 소나무가 최악의 성장 조건에서도 강인하게 자라나며 위대한 힘을 보여주고 있는 것처럼, 중국 기업들도 (현 상황에서) 혁신에 더 많은 노력을 기울일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