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과 중국의 반도체 경쟁이 심화하면서 상당수 기업이 동남아시아에 공장을 잇달아 설립하고 있는 가운데 동남아 중에서도 말레이시아가 가장 큰 수혜를 보고 있다고 영국 일간 파이낸셜타임스(FT)가 11일(현지 시각) 분석했다.
FT는 “전 세계 기업이 지정학적 혼란으로부터 자국을 보호하기 위해 중국을 대체할 공급원을 찾는 ‘차이나 플러스 원’ 전략을 모색하면서 말레이시아는 놀라운 투자 대상이 되고 있다”고 전했다.
실제로 말레이시아에 대한 외국인 투자가 늘었다. 말레이시아 북부 페낭 주정부는 지난해에만 128억달러(약 16조8000억원)의 외국인직접투자(FDI)를 유치했다. 이는 2013년부터 2020년까지 유치한 FDI 총액보다 많다.
페낭에 처음 눈길을 준 반도체 업체는 미국의 인텔이다. 인텔은 지난 1972년, 페낭에 공장을 설립했다. 미국 외 지역에 설립한 최초의 생산 시설이었다. 이후 AMD와 일본 르네사스(옛 히타치), 키사이트 테크놀로지스(옛 휴렛팩커드) 등이 페낭을 찾으면서, 이곳은 ‘동양의 실리콘밸리’로도 불렀다.
여기다 미·중 반도체 경쟁을 피해 중국 외 지역을 찾는 기업이 늘면서 미국 반도체 기업 마이크론 외에 유럽 반도체 업체 AMS 오스람, 인피니언 등 수십 개의 업체가 지난 18개월 동안 페낭에 반도체 관련 공장을 설립하거나 기존 시설을 확장했다. 인피니언은 향후 5년 동안 페낭 지역 공장 확장을 위해 최대 54억달러를 지출할 예정이다. AMS 오스람의 페낭 공장 임원인 데이비드 레시는 “공급망 다각화가 팬데믹과 함께 시작됐지만, 지정학적 위기로 인해 사람들이 (중국을) 대체할 나라를 찾고 있다”고 말했다.
무엇보다 페낭을 찾는 중국 기업이 늘었다. 투자전문기업 ‘인베스트 페낭’에 따르면 페낭에는 중국 본토 기업 55곳이 반도체 관련 시설을 두고 있다. FT는 “페낭의 새로운 기업 대부분은 중국 기업”이라며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가 중국 기술에 대한 무역 전쟁을 시작하고, 조 바이든 현 미국 대통령이 이를 강화한 이후 페낭에 대한 중국 기업의 관심이 홍수처럼 쏟아지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말레이시아 반도체 산업협회 회장인 세리 윙 시우 하이는 “원산지가 말레이시아와 같은 곳으로 바뀌면 일부 제품의 경우 미국이 중국에 부과하는 관세를 피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