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상위 0.01%의 억만장자를 대상으로 부유세 도입을 추진한다. 슈퍼 부자의 최저한세를 설정해 세금 공제나 감면과 무관하게 납부해야 하는 최소한의 세금을 법으로 정하는 것이다. 다만 부유세 논의는 그동안 보수 진영의 반대로 번번이 의회 문턱을 넘지 못한 데다 이번에는 미실현 이익에도 세금을 부과한다는 점에서 위헌 논란이 불가피해 법안 통과까지는 험로가 예상된다.
워싱턴포스트(WP)에 따르면 바이든 행정부는 오는 28일(현지 시각) ‘억만장자 최저한세’를 포함한 2023회계연도 예산안을 의회에 제출할 계획이다. 주요 내용은 가계 순자산이 1억 달러(약 1225억 원) 이상인 납세자의 미실현 투자 이익을 포함해 모든 소득에 최소 20%의 세금을 물리는 것이다. 과세 대상 규모는 WP 추산 약 700명 정도다.
정부는 부유세 추진으로 향후 10년 간 3600억 달러(약 441조2800억 원)의 추가 세수를 확보할 것을 기대하고 있다. 수익의 절반 이상은 순자산 10억 달러 이상의 슈퍼부자들에 대한 과세로 조달될 전망이다. 가브리엘 주크만 버클리 캘리포니아대 교수의 계산에 따르면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와 제프 베이조스 아마존 창업자는 각각 500억 달러, 350억 달러의 세금을 추가로 내야 한다.
이는 개인 최고 소득세율을 37%에서 39.6%로 올림으로써 늘어나는 조세 수입의 약 2배를 더 걷는 셈이라고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전했다. 이번 조치로 미 최상위 자산가 중 납부세율이 20% 미만이었던 억만장자는 차액분을 내야 하고, 이를 초과해 세금을 내왔던 경우에는 추가 세금을 내지 않아도 된다.
WP는 백악관 경제자문위원회 자료를 입수해 지난 2010~2018년 사이 억만장자 400명의 소득세율이 8%대였다고 보도했다. 이는 연간 7만 달러를 버는 미국 중위소득 가정의 소득세율인 평균 14%의 절반 수준이다. 바이든 행정부가 이번 세법 개정안에서 미실현 이익을 과세 대상에 포함한 것도 이 때문이다. 기존에 주식이나 채권 등을 판매한 차익에만 세금을 부과하자 주식과 부동산 등을 다량 보유한 억만장자들이 보편적인 미국인들보다 낮은 세율을 적용 받는 문제가 발생한 것이다.
백악관은 “미국 세법은 오랫동안 노동이 아닌 부(富)를 보상해 미국에서 소득과 부의 불평등이 심화했다”며 “최저한세를 도입해 교사와 소방관들이 억만장자보다 세금을 두 배 이상의 비율로 내는 부조리가 없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이를 해소하기 위해 개인이 보유한 기업의 지분 증가나 주가 상승에 따른 자산 증가도 소득으로 분류하겠다는 뜻이다.
미국 민주당이 법인세와 부유층 대상 소득세 증세를 추진해온 건 처음이 아니다. 바이든 대통령은 취임 첫해인 지난해 3조5000억달러 규모의 사회복지 인프라 법안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법인세 실효세율과 고소득자에 대한 소득세율 상향을 추진했지만 공화당은 물론 조 맨친 상원의원 등 민주당 내 중도파의 반대에 부딪쳤다. 결국 예산 규모를 줄이고 증세 방안도 철회했다. 이 법안은 여전히 의회에 계류 중이다.
진보 진영 대표 인사인 엘리자베스 워런, 론 와이든 민주당 상원의원은 바이든 대통령이 제안할 증세안과 같은 내용의 법안을 일찍이 발의했었다. 미실현 투자 소득에 대한 과세 신설을 포함한 부유세를 신설하자는 것이 골자다. WSJ은 차익 미실현 자산에 대한 과세는 ‘새로운 국세 수입원’이 된다는 점에서 미국 조세 시스템에 중대한 변화를 가져올 수 있다고 했다.
이번에도 역시 의회 통과는 쉽지 않다. 공화당 등 보수 진영과 민주당 내 중도파의 반발이 뻔하기 때문이다. 특히 미실현 투자 이익에 대한 과세는 위헌 논란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조세정책센터의 스티브 로젠탈 선임연구원은 “납세자가 재산을 팔지 않은 경우에도 세금을 징수하는 것에 대한 위헌 여부가 핵심”이라고 말했다. WP는 억만장자 부유세 관련 법안이 이미 지난해 발의됐지만 진전을 이루지 못했다며 “정치적 역풍을 피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