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가 감사위원회위원 선임 시 최대주주 및 특수관계인의 의결권을 3%로 제한하는 내용을 담은 상법 개정안을 통과시킨 데 이어 더불어민주당이 자사주 소각을 의무화하는 방안을 추진한다. 재계는 외국과 달리 경영권 방어를 위한 제도가 없는 상황에서 상법 개정안이 시행되고 자사주 소각까지 의무화되면 외부 투기 세력에 경영권이 흔들릴 수 있다고 우려한다.

민주당과 금융위원회는 지난 8일 비공개 간담회를 열고 자사주 소각 의무화 방안을 논의했다. 금융위는 기업의 자사주 소각을 유도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고, 민주당은 자사주 소각 입법화를 추진한다.

자사주는 기업이 자기 명의로 발행한 주식을 취득한 것으로 임직원 보상책으로 쓰거나 주가 부양을 위해 쓰이기도 한다. 자사주는 의결권이 없지만 우호 주주에게 넘기면 의결권이 살아난다. 이 때문에 경영권 위협을 받는 기업은 자사주를 경영권 방어 수단으로 쓰기도 한다.

이재명 대통령이 4일 오전 서울 국회 본청 로텐더홀에서 제21대 대통령 취임 선서를 하고 있다. /뉴스1

민주당은 기업이 자사주를 취득해 경영권 방어 목적으로 주로 사용한다고 보고 있다. 그러나 재계는 자사주 활용 외에 경영권 방어 수단이 없기 때문이라고 항변한다.

민주당은 미국 델라웨어주 회사법의 주주 보호 내용을 참고해 상법 개정안을 마련한 것으로 알려졌는데, 델라웨어주 회사법은 국내에 없는 차등의결권(dual-class voting shares·특정 주식에 보통주보다 더 많은 의결권을 부여하는 제도)과 포이즌필(poison pill·경영권 침해 시도 발생 시 기존 주주에게 시가보다 싼 가격에 주식을 매입할 수 있는 권리를 주는 제도) 등의 경영권 방어 장치를 마련해 두고 있다.

차등의결권은 창업자나 대주주가 가진 주식에 일반 주주가 보유한 보통주보다 더 많은 의결권을 부여하는 제도다. 단 한 주만으로 주요 의사 결정에 거부권을 행사할 수 있는 권리를 지닌 황금주도 차등의결권의 일종이다. 미국·일본·영국·프랑스 등이 차등의결권 제도를 시행 중이다.

국내 유통 기업 쿠팡이 2021년 미국에 상장한 가장 큰 이유로 차등의결권이 꼽힌다. 당시 한국거래소는 쿠팡을 국내에 상장시키기 위해 노력했으나 쿠팡은 경영권 방어가 쉬운 미국을 택했다. 쿠팡 주식은 클래스A 보통주와 클래스B 보통주로 구성되는데, 쿠팡 창업자 김범석 의장만 갖고 있는 클래스B 보통주는 주당 29개의 의결권을 갖고 있다. 김 의장이 10% 미만 지분으로 70%가 넘는 의결권을 행사할 수 있는 것은 차등의결권 덕분이다.

포이즌필도 미국·일본·프랑스 등에서 활용되고 있다. 포이즌필은 경영권 위협 행위가 발생할 경우 기존 주주에게 시가보다 싼 가격에 주식을 살 수 있는 권리를 주는 제도다. 이 경우 경영권을 노리는 측의 지분율을 희석시켜 지배 지분을 확보하는 것을 저지할 수 있다.

지난해 7월 미국 항공사 사우스웨스트에어라인 이사회는 행동주의 헤지펀드 엘리엇이 지분 11%를 사들인 후 최고경영자 해임, 이사진 교체, 사업 전략 변경 등을 요구하자 포이즌필을 발동해 기존 주주가 시가보다 50% 낮은 가격에 주식을 매수할 수 있게 했다. 엘리엇은 삼성물산(028260)과 제일모직의 합병에 반대하며 이를 승인한 한국 정부를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을 벌인 헤지펀드다.

한 경제단체 관계자는 “기업이 시설 투자나 연구개발 등에 대규모 자금을 투입하려면 자금을 조달해야 하는데 유상증자를 하면 지분율이 하락해 경영권이 위태로워질 수 있다. 주가를 높이기 위해 자사주 의무 소각화를 추진하려면 경영권 방어책도 마련해줘야 한다”며 “경영권 방어가 힘들어지면 유망한 기업은 국내 대신 해외에 상장하려는 유인이 강해진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