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유화학 기업을 자회사로 둔 HD현대(267250), 롯데, 한화(000880)가 석유화학 산업 불황에 냉가슴을 앓고 있다. 중국발(發) 공급 과잉은 물론 산유국인 중동까지 석유화학 산업에 진출하면 범용 제품 중심의 사업 구조를 가진 석유화학 기업은 경쟁력 우위를 갖기 어렵기 때문이다. 석유화학업계 관계자들은 기업 간 통폐합으로 버틸 시간을 확보한 다음 고부가가치 제품(스페셜티) 중심으로 사업 구조를 재편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12일 석유화학업계에 따르면 롯데케미칼(011170)(-1266억원), HD현대케미칼(-1188억원), LG화학(051910) 석유화학 부문(-565억원), 한화솔루션(009830) 케미칼 부문(-912억원)은 올해 1분기에 모두 적자를 기록했다. 이들 업체는 나프타분해설비(NCC)를 이용한 범용 제품을 중점적으로 생산한다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
코로나19 팬데믹 당시만 해도 범용 중심의 사업 구조는 문제가 없었다. 마스크, 장갑 등 석유화학 관련 제품 수요가 높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팬데믹이 종료되고, 석유화학 제품 수요가 높은 중국 내수 시장도 살아나지 않는 상황에서 중국발 공급 과잉이 시작되자 범용 제품 위주의 사업 구조를 가진 석유화학 회사는 직격탄을 맞았다. NCC가 없는 금호석유화학만 올해 1분기 1978억원의 영업이익을 기록하며 중국발 공급 과잉의 영향권에서 벗어나 있다.
롯데케미칼을 중심으로 국내 석유화학기업은 사업 매각, 업계 재편에 나서고 있다. 주요 석유화학기업이 가입한 한국화학산업협회는 보스턴컨설팅그룹(BCG)에 사업 재편 관련 컨설팅 용역을 맡겼고 그 결과를 지난 3월 산업통상자원부에 제출한 바 있다. 정부는 지난해 12월 ‘석유화학산업 경쟁력 제고 방안’을 내놓았으나, 석유화학기업이 자율적으로 사업을 통폐합하거나 구조조정을 하길 바라는 입장이다.
롯데케미칼과 HD현대그룹은 충남 대산석유화학단지에 가동 중인 NCC를 통합하는 방안을 모색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HD현대그룹 자회사인 HD현대오일뱅크와 롯데케미칼은 각각 지분 60%, 40%를 투자한 합작사 HD현대케미칼을 운영 중이다. 롯데케미칼이 대산단지에 보유한 설비를 HD현대케미칼에 넘기고, HD현대그룹이 추가로 출자해 하나의 법인으로 사업을 운영하는 방식 등 여러 방안이 논의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석유화학업계 일각에선 이재명 정부 초기에 정부 주도의 획기적인 안이 나오기를 기대하기도 한다. 이 대통령은 대선 운동 당시 “남부지방 산업벨트 중에서도 석유화학이 모두 나빠지고 있다”며 석유화학산업 특별법 제정을 공약한 바 있다.
석유화학업계 관계자는 “기업 간 사업 재편, 구조 조정이 이뤄지면 해당 기업이 공정거래위원회의 독과점 심사 대상이 될 수 있다. 석유화학업계 재편이 신속하게 이뤄지려면 대통령 직속 범부처가 생겨야 한다”고 말했다.
또 다른 석유화학업계 관계자는 “정부 지원이 있더라도 석유화학기업은 범용 제품 대량 생산 방식을 특화 제품 소량 생산으로 바꿔 경쟁력을 키워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