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용만 전(前) 두산그룹 회장과 두 아들이 보유하고 있는 ㈜두산(000150) 지분을 전량 매각하면서 박 전 회장이 그룹을 완전히 떠난 배경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25일 재계에 따르면 박 전 회장과 그의 아들인 박서원 전 오리콤 부사장, 박재원 전 두산중공업 상무는 최근 블록딜 방식으로 보유 주식 129만6163주(지분 7.84%)를 전량 처분했다. 이번 블록딜로 박 전 회장은 두산그룹에서 완전히 손을 떼게 됐다. 두산그룹의 지주회사 격인 ㈜두산은 오너 일가가 유일하게 대주주로 남아있는 회사다.

2015년 10월 31일 서울 잠실야구장에서 열린 2015 KBO리그 한국시리즈 5차전 삼성 라이온즈와 두산 베어스의 경기 당시 박용만 전 두산그룹 회장이 아들 박서원 오리콤 부사장, 차남 박재원 전 두산중공업 상무와 관중석에 서 있다. /뉴스1

두산그룹 관계자는 이번 블록딜에 대해 “그동안 채권단에 담보로 잡혀 있던 물량이 이번에 풀리면서 파는 것으로, 예정된 수순”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재계에서는 ‘형제·사촌 경영’을 이어오던 두산그룹에서 임기가 다한 회장과 자녀가 보유하고 있던 지분을 완전히 매각하는 건 이례적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박서원, 박재원 등‘두산 4세’가 경영 일선에서 물러난 것은 과거 두산의 ‘형제의 난’ 이후 처음이다. 두산 형제의 난은 박용곤 전 회장이 박용오 전 회장에게 회장직을 박용성 전 회장에게 넘길 것을 요구하자 박용오 전 회장이 ‘두산 그룹 경영상 편법 활용’이라는 진정서를 검찰에 제출한 사건을 말한다. 이 사건으로 박용오 전 회장은 두산을 떠났고, 두 아들 박경원 전 성지건설 부회장과 박중원 전 성지건설 부사장도 두산 지분을 전량 매각했다.

이들 외에 전직 두산 회장의 아들들은 부친이 그룹 총수 자리에서 물러난 뒤에도 여전히 그룹에 몸담고 있다.

한 재계 관계자는 “(박용만 전 회장의) 두 아들이 하고 싶은 일이 있고, 경영 수업을 받는 다른 사촌들도 많아서 독립을 결심한 것 같다”면서 “두산중공업발(發) 재무위기가 박 전 회장만의 책임은 아니지만, 여러 판단하에 그룹에 남아 있기보다는 개인 사업을 택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박용만 전 회장의 두 아들은 향후 스타트업 투자 사업 등을 펼칠 계획인 것으로 알려졌다.

두산그룹은 창업 3세대까지 ‘형제 경영’을 이어왔다. 박용곤 → 박용오 → 박용성 → 박용현 → 박용만으로 이어지는 식이다. 현재 두산그룹은 박정원 회장을 비롯해 ‘원(原)’자 돌림의 4세들이 계열사를 경영하는 ‘사촌 경영’이 자리 잡았다. 박용만 전 회장이 후임으로 자신의 자제가 아닌 조카이자 박용곤 전 명예회장의 장남인 박정원 회장을 추천하면서다.

그래픽=손민균

재계 안팎에선 박 전 회장 일가의 지분 매각을 계기로 두산그룹도 LG(003550)그룹 등과 같이 계열 분리가 이뤄지는 것 아니냐는 전망이 나온다. LG그룹은 장자 승계 원칙에 따라 차기 회장을 정하는데, 차기 회장이 정해지면 전(前) 회장의 동생들은 통상 LG 지분을 정리해 계열 분리를 한다. 구광모 LG그룹 회장이 취임한 뒤 구본준 전 LG 부회장이 LX그룹으로 분리하는 식이다.

두산 3세는 아들이 6명으로, 4세의 경우 현재 경영에 참여하고 있는 인원만 10여 명에 달한다. 이들 중 유일한 30대인 박용만 전 회장의 차남은 1985년생으로, 사촌 형인 박정원 회장과 23살 차이가 난다. 4세가 선대와 마찬가지로 차례대로 총수 자리를 물려받는다고 해도 수십 년이 걸리는 것이다.

현재 박정원 회장의 후임으로 동생인 박지원 두산중공업 회장과 박용성 전 회장의 장남인 박진원 두산메카텍 부회장이 거론된다. 재계 관계자는 “과거 가족 공동경영에 반발했던 형제가 그룹에서 축출됐던 전례가 있었던 만큼 사촌 간 경영권 분쟁이 생기는 것은 최대한 막으려 노력할 것”이라며 “채권단 관리를 졸업해 정상화를 위한 본격적인 행보에 나선 두산그룹이 가족회의 등을 거쳐 추후 승계 갈등을 최소화할 방법을 찾을 것으로 보인다”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