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경(Environment), 사회(Social), 지배구조(Governance)의 앞글자를 딴 ESG가 국내외 기업의 화두로 떠오르고 있다. 국내 기업들은 ESG 중에서 지배구조 부문에서 상대적으로 낮은 평가를 받고 있다. 국내 기업들이 ESG 평가에서 높은 등급을 받기 위해서는 지배구조 개선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주요 기업의 지배구조 현황을 살펴본다. [편집자주]
조현준 효성그룹 회장은 올해 5월 공정거래위원회로부터 그룹 총수(동일인)로 공식 지정됐다. 2017년 취임 이후 5년 만이다. 재계에선 조 회장이 지난 2월 부회장으로 승진한 조현상 부회장과 함께 ‘형제 경영’ 체제를 유지하며 당분간 조현준·조현상→효성→계열사로 이어지는 지배구조를 이어갈 것으로 내다봤다. 두 형제가 보유하고 있는 지주사 효성(004800)의 지분 차이는 미미하다. 아버지 조석래 명예회장이 보유 중인 지분을 두 사람이 균등하게 나눠 가질지, 한 사람이 더 많이 받을지에 관심이 쏠리는 이유다.
◇ 효성, 2년 만에 지주사 체제 완성
효성그룹은 2018년 6월 효성을 지주회사로 두고 효성첨단소재, 효성중공업(298040), 효성티앤씨(298020), 효성화학(298000) 등 4개 사업부문을 인적 분할하는 형태로 지배구조를 개편했다. 1998년 외환위기 여파로 주력 계열사를 합병한 지 20년 만의 변화였다. 이후 효성ITX(094280)를 그룹 계열사로 편입한 데 이어 금산분리 원칙에 따라 지난해 말 효성캐피탈 지분 매각을 완료하면서 지금의 체제를 갖췄다.
지주회사 효성은 올해 1분기말 기준 효성첨단소재 21.2%, 효성중공업 32.47%, 효성티앤씨 20.32%, 효성화학 20.17% 효성ITX 32.56%의 지분을 보유하고 있다. 손자회사로는 진흥기업(002780), 신화인터텍(056700), 갤럭시아머니트리(094480) 등이 있다.
지주사인 효성의 지분은 조현준 회장 등 조씨 일가가 과반을 나눠갖고 있다. 조 회장이 효성 지분 21.94%를 지닌 최대주주고, 뒤이어 조 회장의 동생인 조현상 부회장이 효성 지분 21.42%를 갖고 있다. 조석래 명예회장도 9.43%의 지분을 갖고 있어 현재 조씨 일가가 보유 중인 효성 전체 지분만 60.64%에 달한다. 이를 바탕으로 안정적인 경영권을 행사하고 있다.
변수는 두 형제의 아버지인 조석래 명예회장의 보유 지분이다. 조 명예회장은 효성 지분 외에 효성티앤씨 8.19%, 효성첨단소재 10.18%, 효성중공업 10.18%, 효성화학 6.7% 등 계열사 지분도 대거 보유 중이다. 이 지분을 조 회장과 조 부회장에게 균등하게 나눠 줄지, 아니면 한쪽이 더 많은 지분을 가져갈지가 관건이다. 이에 대한 재계의 시각은 엇갈린다. 공동 경영을 이어가고 있는 만큼 형제에게 동등하게 지분을 나눠줄 것이란 시각도 있지만, 장자승계 원칙에 따라 장남인 조현준 회장에게 지분을 몰아줄 수 있다는 의견도 나온다.
◇ ‘형제의 난’으로 단단해진 ‘형제 경영’
아직 승계구도가 명확하게 정해지지 않았으나, 조현준 회장과 조현상 부회장은 안정적으로 공동 경영을 이어가고 있다. 그 중심에는 아버지 조석래 명예회장이 있다. 조 명예회장은 평소 “형을 중심으로 형제가 서로 사이좋게 협력해서 경영해야 한다”라며 그룹 경영에 있어 형제간 화합을 각별히 강조해왔다.
조 명예회장은 2010년까지만 해도 그룹 승계와 관련해 “능력 있는 자식에게 경영권을 물려주겠다”고 밝혀왔다. 전국경제연합회 회장이었던 2008년엔 “사업을 물려줄 때는 누가 제일 미더운지를 본다”라며 “자식이라고 해서 무턱대고 사업을 승계해선 안 된다. (능력 없는) 자식에게는 사업이 아니라 먹고살 만큼 돈을 남겨주면 되는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그러나 차남인 조현문 전 효성 부사장이 벌인 ‘형제의 난’ 여파로 지금은 형제 간의 화합을 더 강조하는 모양새다. 조 전 부사장은 2013년 조 명예회장은 물론 다른 형제들과도 경영 방식을 두고 갈등을 빚고 회사를 그만뒀다. 그는 보유하고 있던 지분도 모두 판 뒤 아버지와 형제들을 배임·횡령 혐의로 검찰에 고발했다. 지금은 효성가(家)와 연을 끊고 싱가포르에서 사모펀드 법인을 설립해 운영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형제의 난을 계기로 현재 조현준·조현상 형제의 결속력이 더욱 단단해졌다는 게 재계 전언이다. 재계 관계자는 “두 형제의 지분 차이가 거의 없기 때문에 협업 체계를 공고히 할 수 있다”라며 “아버지 조석래 명예회장이 형제 사이에서 균형을 맞춰주는 구조”라고 말했다.
◇ 아버지 세대처럼 계열분리 가능성도
재계 일각에선 효성그룹이 미래에 계열분리에 나설 가능성도 제기된다. 두 형제가 직접 보유하고 있는 계열사의 지분때문이다. 올해 1분기 말 기준 효성티앤씨의 경우 조현준 회장 지분은 14.59%다. 지주사인 효성에 이어 2대 주주다. 효성ITX의 경우 조 회장의 지분은 37.9%로 효성(30.39%)보다도 앞서있다. 반면 효성첨단소재는 조현상 부회장이 12.21%의 지분을 보유해 지주사 다음의 2대 주주로 있다. 효성화학, 효성중공업의 등 나머지 계열사의 경우 두 형제의 지분 차이는 1%P 안팎이다.
이같은 지분 구조 때문에 미래에 조 회장이 효성티앤씨와 효성ITX를, 조 부회장이 효성첨단소재를 주축으로 삼아 계열분리를 실행할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실제 조 회장은 회장 자리에 오르기 전 섬유PG장과 정보통신PG장을 지낸 바 있다. 당시 효성의 섬유PG(퍼포먼스그룹) 사업은 사상최대 실적을 기록했고, 주력 사업인 스판덱스는 세계 시장 1위를 차지했다. 조 부회장 역시 산업자재PG장을 맡으면서 타이어코드와 스틸코드 사업을 안정적으로 성장하는 데 기여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효성그룹은 앞서 1세에서 2세로 경영권이 승계되는 과정에서도 계열 분리를 진행한 전례가 있다. 창업주인 고(故) 조홍제 명예회장은 1980년 효성그룹의 계열 분리를 진행하면서 효성의 알짜사업은 첫째 아들인 조석래 명예회장에게, 한국타이어와 대전피혁은 각각 조양래 회장과 조욱래 회장에게 물려줬다. 효성그룹 관계자는 조현준·조현상 형제의 계열분리 가능성에 대해 “검토한 바 없다”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