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경(Environment), 사회(Social), 지배구조(Governance)의 앞글자를 딴 ESG가 국내외 기업의 화두로 떠오르고 있다. 국내 기업들은 ESG 중에서 지배구조 부문에서 상대적으로 낮은 평가를 받고 있다. 국내 기업들이 ESG 평가에서 높은 등급을 받기 위해서는 지배구조 개선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주요 기업의 지배구조 현황을 살펴본다. [편집자주]

두산(000150)그룹이 두산중공업발(發) 유동성 위기로 3조원 규모의 자구안 마련에 나선 지 1년여만에 구조조정을 대부분 마무리했다. 두산인프라코어 매각을 완료하면 지배구조가 ㈜두산→두산중공업→두산퓨얼셀(336260), 두산밥캣(241560)으로 바뀌게 된다. 두산그룹은 자구안을 이행하기 위해 알짜 계열사와 사업 부문을 매각했고, 오너 일가도 지분을 무상증여하는 등 정상화에 힘썼다. 두산그룹 구조조정이 마무리되면 에너지 사업을 영위하는 두산중공업·두산퓨얼셀과 ‘캐시카우’ 두산밥캣이 그룹의 사업 주축이 될 전망이다.

그래픽=이은현

◇ ‘형제 경영·장자 우선’ 원칙… 두산重 정상화가 차기 총수 시험대 될 듯

두산그룹 지배구조 최상단에는 지주회사 격인 ㈜두산이 있다. ㈜두산은 박정원 두산그룹 회장 등 오너 일가가 유일하게 대주주로 남아있는 회사다. 지난 3월 말 기준으로 그룹은 ㈜두산을 비롯해 두산중공업, 두산퓨얼셀, 두산인프라코어, 두산밥캣, 오리콤(010470) 등 6개의 상장회사와 16개의 비상장 회사로 구성돼 있다. 이 중 ㈜두산은 두산중공업, 두산베어스, 두산경영연구원, 두산로보틱스, 두산모빌리티이노베이션, 디비씨, 오리콤 등을 자회사로 두고 있다.

오너 일가는 자구안을 이행하기 위해 지분 매각 등에 적극적으로 나섰다. 지난해 보유하고 있던 두산솔루스 지분 36%를 사모펀드 운용사 스카이레이크인베스트먼트에 매각했고, 올해 ㈜두산 배당에서는 경영상의 어려움을 이유로 대주주는 제외했다.

두산그룹은 ‘형제 경영’을 창업 3세대까지 이어왔다. 고(故) 박용곤 두산그룹 명예회장→박용성 두산그룹 전(前) 회장→박용현 두산연강재단 이사장→박용만 두산인프라코어 회장으로 이어지는 식이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형제간 갈등으로 어려움을 겪기도 했다. 고 박용오 전 회장이 2005년 동생 박용성 전 회장의 취임에 반발해 검찰에 그룹의 분식회계 등을 고발하면서 오너 일가의 치부가 드러나기도 했다.

현재 두산그룹은 박정원 회장을 비롯해 ‘원(原)’자 돌림의 4세들이 계열사를 경영하는 ‘사촌 경영’이 자리 잡았다. 박용만 회장이 후임으로 자신의 자제가 아닌 조카이자 박용곤 명예회장의 장남인 박정원 회장을 추천하면서다. 두산 4세 중 그룹 경영에 참여 중인 인물은 10명이다. 이들 지분율의 많고 적음은 ‘장자 우선’의 원칙에 따라 앞선 3세들 출생 순서에 맞춰졌다. 경영권 분쟁을 차단하기 위해서라는 분석이다.

당장은 아니지만 이후 박정원 회장이 물러나면, ‘형제 경영’과 ‘장자 우선’의 승계 원칙에 따라 4세들이 차기 회장을 번갈아 맡을 것으로 보인다. 현재 유력한 차기 회장 후보는 박정원 회장의 동생이자 두산중공업 회장이기도 한 박지원 두산그룹 부회장이다. 재계에서는 두산중공업 정상화 작업이 박지원 부회장의 총수 자리 시험대가 될 것으로 보고 있다.

대산 수소연료전지 발전소. /두산퓨얼셀 제공

◇ ‘두산중공업-두산퓨얼셀’ 지배구조 재편… 신재생에너지 키운다

두산그룹의 핵심 계열사인 두산중공업은 지난 3월 ㈜두산이 보유 중인 두산퓨얼셀 지분 전량을 현물출자 받았다. 탈석탄·탈원전 정책으로 주력 사업인 원자력 발전이 타격을 입자 미래 먹거리로 수소 사업을 영위하는 두산퓨얼셀을 낙점한 것이다. 지난해 11월 두산 대주주로부터 두산퓨얼셀 지분 15.6%를 무상으로 증여받았던 두산중공업은 이번 현물출자를 통해 두산퓨얼셀 지분을 30.3% 확보해 최대주주가 됐다.

지배구조 재편 후 발전용 수소연료전지 제조업체인 두산퓨얼셀은 새로운 핵심 계열사로 떠올랐다. 1년 전만 해도 두산퓨얼셀은 두산인프라코어, 두산솔루스와 함께 시장에서 매각 가능성이 높은 계열사로 언급됐었다. 그러나 두산그룹이 수소 등 신재생에너지를 미래 먹거리로 삼으면서 두산퓨얼셀을 두산중공업 품에 안긴 셈이다. 두산중공업도 국내 최초 액화수소플랜트 사업에 참여하고 있고 재생에너지로 수소를 만드는 그린수소 생산, 수소터빈 사업 등을 추진하고 있다.

두산그룹은 2025년까지 신재생에너지 사업의 수주 비중을 전체의 60% 이상으로 확대할 계획이다. 지난해에만 ▲김포열병합발전소(3600억원 규모) ▲폴란드 폐자원에너지화 플랜트(2200억원) ▲네팔 수력발전(4000억원) ▲창원 수소액화플랜트(1200억원) 등 신재생에너지 사업을 잇달아 수주했다.

또 두산중공업·두산퓨얼셀 등 계열사 전문 인력을 모아 수소 태스크포스팀(TFT)을 신설해 수소시장 선점에 나섰다. ▲수소 생산 ▲유통(저장·운반) ▲활용(발전·모빌리티) 등 밸류체인 전반에 걸쳐 시장을 찾고 비즈니스 실행 계획을 수립한다는 목표다. 두산그룹 관계자는 “그룹 내 축적된 역량을 모아서 최대한의 시너지 효과를 만들어낼 것이며, 추가로 필요한 부분에 대해선 전략적 파트너를 찾거나 인수합병(M&A)을 통해 단기간에 역량을 끌어올리는 것도 공격적으로 추진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두산밥캣이 지난해 북미 시장에 출시한 콤팩트 트랙터. /두산밥캣 제공

◇ 여전한 수익성 우려… 두산밥캣 ‘캐시카우’ 역할 할까

재계에서는 두산그룹이 알짜 기업을 모두 매각하고 껍데기만 남을 것이라는 우려가 많았다. 1998년부터 사옥으로 쓰던 서울 동대문 두산타워(매각가 8000억원) 매각을 시작으로 ㈜두산 유압기 사업부인 모트롤BG와 동박 생산업체 두산솔루스(현 솔루스첨단소재(336370))를 각각 4530억원, 6986억원에 팔았다. 두산중공업이 보유하고 있던 클럽모우CC 골프장도 1850억원에 매각했다.

여기에 지난해 12월 그룹의 ‘캐시카우’였던 두산인프라코어 사업부문을 현대중공업지주·KDB인베스트먼트컨소시엄에 매각하면서 우려는 더욱 커졌다. 두산인프라코어는 굴착기 등 건설기계, 관련 엔진 등을 생산하고 판매하는 ‘사업 부문’과 두산그룹 계열사 지분관리 및 두산밥캣 지분을 보유한 ‘투자 부문’으로 나뉜다. 사업부문은 현대중공업지주 컨소시엄이 인수하고, 투자부문은 두산중공업으로 흡수합병됐다.

두산인프라코어의 빈자리는 건설기계 장비 등을 생산·판매하는 두산밥캣이 채울 것으로 보인다. 두산밥캣은 2007년 인수 초반 실적이 좋지 않아 고전했지만, 2010년 이후 연간 영업이익 4000억원 안팎을 유지하고 있다. 부채비율 역시 71%에 불과하다. 올해 1분기엔 영업이익 1713억원을 거두는 등 10년 만에 최대 실적을 기록하기도 했다. 두산밥캣 지분이 두산중공업으로 넘겨질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다른 그룹 계열사들도 올해 호실적을 기록했다. 그룹 지주사인 ㈜두산은 올 1분기 전년 동기 대비 403.6% 늘어난 3980억원의 영업이익을 올렸다. 순이익은 4023억원으로, 2019년 이후 다섯 분기만에 흑자 전환에 성공했다. 두산중공업도 전년 동기 대비 558% 증가한 3721억원의 영업이익을 보였다. 순이익은 2481억원으로, 11분기 만에 흑자 전환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