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3일 경기 화성시에 위치한 현대차(005380)그룹 핵심 연구개발(R&D) 센터 남양연구소 공력시험동. 전기차를 비롯한 신차의 공력(물체와 기체 사이에 작용하는 힘) 성능을 연구하는 시설 내부에선 ‘아이오닉6’를 기반으로 만든 콘셉트카에 대한 풍동(風洞) 실험이 진행되고 있었다. 바닥에 고정된 차체 주변으로 여러 갈래로 나뉜 흰색 연기가 빠르게 흐르는 것이 보였다.

바람이 지나는 터널이라는 뜻을 지닌 풍동 실험은 대형 송풍기가 인공적으로 바람을 만들고, 차량이 바람에 어떤 영향을 받는지 주변 공기 흐름을 분석하는 것이다. 박상현 현대차 공력개발팀 팀장은 “차량은 항상 바람의 힘을 받거나, 맞서면서 주행하기 때문에 공기 역학 성능을 어떻게 제어하는지에 따라 주행 안정성과 효율이 좌우된다”며 “특히 전기차는 에너지 손실, 주행거리와 직결된다”고 말했다.

경기 화성시 현대차그룹 남양연구소 공력시험동에 설치된 대형 송풍기(팬)./현대차그룹 제공

이날 시험동에는 시속 60㎞ 수준의 바람이 불고 있었는데, 일반 성인도 똑바로 눈을 뜨고 걷기가 힘들었다. 시험동 뒤편에 설치된 건물 3층 높이의 대형 송풍기가 최대 3400마력의 출력으로 시속 200㎞에 달하는 바람을 일으킨다는 게 박 팀장의 설명이다. 역대 가장 강한 태풍이었던 매미(2003년)와 비슷한 수준의 바람 세기다.

현대차는 풍동 실험을 거쳐 아이오닉6의 공기저항계수(Cd)를 세계 최저 수준인 0.144까지 달성한 상태다. 글로벌 완성차가 발표한 최저 Cd값(0.19~0.17)을 밑도는 수준으로, 이를 통해 1회 충전 시 주행거리가 약 64㎞ 늘었다. 다만 아직 연구 목적의 콘셉트카로만 개발된 상태로, 양산까지는 안전·디자인 등 추가 검증이 필요하다.

공력시험동 맞은편에는 차량이 극한의 환경에서도 안정적인 성능을 낼 수 있도록 시험하는 환경시험동이 있다. 이곳에선 영상 50도의 사막 더위부터 영하 30도의 혹한까지 다양한 기후 조건이 인위적으로 구현된다. 전기차와 하이브리드차처럼 배터리를 탑재한 차량은 효율적인 열 관리와 냉·난방 공조 시스템 제어가 중요하다.

경기 화성시 현대차그룹 남양연구소 환경시험동에서 강설 시험을 진행 중인 아이오닉9./현대차그룹 제공

바깥은 영상 33도에 달하는 무더운 날씨였지만, 북유럽 겨울을 재현한 실험실에서는 대형 스포츠유틸리티차(SUV) 아이오닉 9에 대한 강설 평가가 진행 중이었다. 롤러에서 주행하는 차량 위로 눈보라가 쏟아졌고, 온도 차 때문에 실험실 유리창에는 김이 가득 서렸다. 두꺼운 방한복을 입고 들어선 실험실 내부 온도는 영하 30도를 가리키고 있었고, 차량 주변으로는 눈이 쌓여 있었다.

김태한 현대차 열에너지차량시험2팀 파트장은 “배터리 저온 제어, 모터, 실내 난방 성능을 시험하고 차량에 눈이 쌓여 배터리나 전장 계통에 문제가 발생할 가능성을 점검한다”며 “충전구나 트렁크에 눈이 들어가지 않는지 확인하는 것도 중요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비가 많이 내리는 환경을 조성하고 와이퍼 모터 작동 여부 등을 검증하거나 고온에서 열 관리, 실내 쾌적성을 평가하기도 한다”고 말했다.

경기 화성시 현대차그룹 남양연구소 NVH(소음·진동·마찰)동에서 GV70 전동화 모델의 실내 유입 노면 소음을 측정하고 있다./현대차그룹 제공

남양연구소에는 전기차의 승차감 및 핸들링(R&H) 성능과 소음을 연구하는 시험동도 있다. 높은 가속력을 발휘하는 전기차 특성상 주행 안정성이 중요하고, 배터리로 늘어난 차량 하중이 서스펜션(현가장치)과 타이어에 가하는 부담은 일반 내연기관차보다 훨씬 큰 편이다. 타이어, 핸들링, 노면 조건에 따른 차량 반응을 정밀하게 평가해 고급 세단 못지않은 승차감을 구현한다는 게 현대차 관계자의 설명이다.

통상 신차가 나오기 전 차량에 대한 소음 분석은 약 40개월이 걸린다. 차량 부품 소재, 설계 조정을 통해 소음원을 줄여가는 것이 핵심인데 전기차는 엔진 소음이 없기 때문에 탑승자가 풍절음(바람 소리), 노면 소음, 미세한 진동 등을 민감하게 느끼는 편이다. 전기차 보행자 보호음(AVAS), 주행음 등도 개발하고 있다.

지난 1996년 설립된 남양연구소는 의왕연구소, 마북기술연구소와 함께 현대차의 R&D 핵심 거점으로 꼽힌다. 국내 최대 규모인 347만㎡(약 105만평) 부지에 연구 인력 1만4000명이 근무하고, 시험동을 비롯한 연구 건물 수는 200개 안팎이다. 현대차·기아(000270)·제네시스 등이 개발하는 차량의 사실상 거의 모든 분야를 다룬다. 최근에는 전동화 기술력 강화에 집중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