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배드뱅크’를 설치해 자영업자의 부실 채무를 정리하는 방안을 본격 추진한다. 오는 9월 코로나19 대출 만기 도래를 앞두고 자영업자 부채가 한국 경제의 ‘뇌관’으로 떠오른 데 따른 조치다. 앞서 이재명 대통령은 취임 이후 “취약계층, 소상공인을 우선 지원하라”고 지시한 바 있다.
전문가들은 배드뱅크 도입이 자영업자의 재기를 돕고 경기 회복에 긍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다고 보면서도, 도덕적 해이와 형평성 문제에 대한 우려도 함께 제기하고 있다.
기획재정부와 금융위원회 등 경제부처는 취약계층 금융 지원 강화를 골자로 한 대선 공약 이행 계획을 최근 국정기획위원회에 전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를 토대로 국정기획위는 부처별 세부 이행 방안과 재정 계획을 마련하고 있다.
정부는 한국자산관리공사(캠코) 산하에 부실 채권을 전문적으로 매입·관리하는 ‘배드뱅크’를 설치하고, 신용회복위원회의 개인 워크아웃 프로그램도 확대할 계획이다. 배드뱅크는 금융기관에서 부실화된 자산을 사들여 전문적으로 처리하는 기관이다.
정부가 자영업자 부채 문제 해결에 속도를 내는 것은 관련 부채가 빠르게 부실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은행 금융안정보고서에 따르면, 2023년 3분기 기준 자영업자 대출 잔액은 1064조4000억원이다. 특히 같은 기간 취약 자영업자의 대출 연체율은 11.55%로 나타났다.
특히 오는 9월에는 코로나19 국면에서 만기 연장이 이뤄졌던 소상공인 대출 중 약 50조원의 만기가 한꺼번에 돌아온다. 금융위에 따르면 만기 연장된 자영업자 대출은 47조4000억원, 원리금 상환이 유예된 대출은 2조5000억원이다.
전문가들은 소상공인 채무 탕감이 경기 회복에 긍정적인 역할을 할 수 있다고 본다.
김지섭 연세대학교 경제학과 교수는 “경기가 위축된 상황에서 소상공인에게 재기의 기회를 제공하는 것은 경기 부양에 도움이 될 수 있다”며 “특히 미국과 유럽의 사례를 보면, 미래 소득으로 채무를 장기간 분할 상환하는 방식보다, 일시적 탕감이 더 실효적일 수 있다”고 했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도덕적 해이나 역차별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도 나온다.
김 교수는 “정부가 빚을 탕감하면 도덕적 해이가 발생할 것이라는 우려가 있다”며 “과거 미국에서 오바마 행정부가 가계부채를 선제적으로 탕감했을 때도, 정부 재정이 과도하게 투입됐다는 비판이 있었다”고 말했다.
자발적으로 성실히 빚을 갚는 이들에 대한 역차별도 제기된다.
곽노선 서강대학교 경제학과 교수는 “코로나19로 피해를 본 소상공인을 지원하는 것은 타당하지만, 단순한 경영 실패나 구조적 경쟁력 부족으로 인해 퇴출이 불가피한 자영업자까지 무차별 지원하면, 재정 부담이 지나치게 커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곽 교수는 이어 “코로나19로 인해 어려움을 겪은 소상공인과 영업 상황으로 인해서 사업을 접어야 하는 소상공인을 분리해서 정책을 설계해야 한다”고 말했다. 특히 “코로나 이후 소비자들의 소비 패턴이 대면에서 비대면으로 변화했는데, 이에 발맞춰 소상공인들을 지원하는 방안들도 논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