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은 25살 때 듣는 걸 계속 듣게 된대요. 듣는 음악이 다르면 그게 바로 세대 차이라고 하더라고요. 음식도 그래요. 저는 집에서 먹었던 집밥이 제 입맛을 지배해요. 제 책을 보고 누군가 요리를 하고, 그 요리가 누군가의 입맛이 되면 결국 평생 레시피가 될 거잖아요? 그랬으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책 제목을 지었습니다.”
8일 서울 중구 정동길에서 본인만의 요리법을 담아 책을 낸 배우 류수영(46)을 만났다. 책 이름은 ‘평생 레시피.’ 누군가의 평생 레시피로 자리매김할 요리법 79가지를 골라 담은 책이다. 간식부터 주식(主食)으로 활용할 밥과 면 요리, 그리고 특별한 날에 ‘짠’하고 보여주고 싶은 요리까지 두루 담겨 있다.
요리책치고는 이례적으로 출판 성적도 좋은 편이다. 지난달 26일 출간 이래 하루걸러 하루꼴로 추가 인쇄를 거듭하고 있다. 대략적인 판매 부수는 3만5000부. 민음사 관계자마저 “요리법을 담은 책이 이렇게나 잘 팔릴지 몰랐다”고 했다.
◇ 출간 이후 매일 추가 인쇄 “그의 레시피는 맛있고 쉽다”
류수영의 ‘평생레시피’가 이렇게까지 인기를 끄는 이유는 프로그램 ‘편스토랑’에서 보여준 ‘어남선생(요리하는 배우 류수영의 별칭)’ 덕분이 크다. 이 프로그램에서 배우 류수영은 요리 초보도 쉽게 따라 할 수 있는 요리를 보여줬다.
“처음 편스토랑(KBS 프로그램)에 출연했을 땐 이렇게까지 제 레시피를 따라 하실 줄 모르고 만들었어요.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레시피를 물어보셔서 ‘아, 이렇게 하면 안 되겠구나’ 싶었습니다. 그때부터 숟가락 들고 세보기 시작했어요. 그전까진 저도 요리를 감으로 했거든요. ‘다섯 숟가락까지 넣었던가?’ 헛갈리면 새로 음식을 시작하고 하는 과정을 반복했습니다.”
편스토랑이 회차를 거듭하면서 그만의 화두도 생겼다. 은퇴를 막 시작한 세대, 일명 베이비붐 세대를 위한 요리법을 만들자는 점이었다.
“다음 회차에 선보일 요리법을 고민할 때 저한테 화두는 늘 은퇴 세대였어요. 저보다 좀 어린 세대는 배달해서 먹는 것이 불편하지 않은 세대예요. 그런데 저보다 한 세대 위는 집밥이 필요한 세대죠. 밥통에 밥이 없으면 불안하고, 하루에 한 끼는 밥과 국을 먹어줘야 편안한 세대요. 그 세대를 위한 조리법은 간단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산해진미 넣어 육수를 우려내자고 말하기 시작하면, 애당초 포기하게 되거든요. 포기하지 않게 쉽게 하는 게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했어요. 요리를 간단하고 편하게 즐기는 건 삶의 질이 올라가는 가장 빠른 길이거든요.”
요리에 대한 자신감을 얻으면 좋겠다고 했다. 저자인 그가 추천하는 책의 활용법은 책 맨 뒤에 있는 간식 요리법부터 따라 하는 것이다.
“책 뒷부분에 간식부터 따라 하면 쉬워요. 그래서 전 맨 뒤부터 시작하라고 말씀드리고 싶어요. 쉬운 요리부터 하면 요리에 자신감이 생기거든요. 요리도 성공이 필요해요. 공부도 운동도 성공한 기억이 없다면 포기하게 되거든요. 처음부터 어려운 거 하지 마세요. 국 끓이는 것도 부담스러울 수 있거든요. 한 번의 성공 사례가 있으면 요리랑 친해질 수 있어요.”
◇ 온기 있게 만들어주는 요리, 뜨겁게 만드는 연기
배우 류수영이 이렇게 집밥 전도사로 자리매김하게 된 배경엔 ‘힐링’이 있었다.
“사람들이 요리가 어떤 의미냐고 제게 묻더라고요. 처음엔 취미였어요. 요리를 하면 사람이 좀 깨끗해진달까. 사회생활에 찌들어서 옛날의 나는 흔적도 없이 사라진 거 같고, 일만 하고 아무 생각 없는 남자가 서 있을 때가 있는데요. 그런 날 요리를 하면 위안이 됐어요. 속상할 때는 늘 손반죽을 해서 빵을 만들거나 절임음식을 하거나 김치를 담근다거나 했어요. 그러면 무채색이 된 나를 다시 채워주는 것 같았거든요. 마치 요가랑 비슷한 거죠.”
그런데 이젠 단순 힐링은 아닌 모양이다. “편스토랑을 찍을 때 고3 수험생처럼 레시피를 연구하고 공부했던 때도 있었거든요. 그때 취미가 일로 다가오기도 하더라고요. 힘든 때도 있었습니다. 깍두기 15번 담가보고 간장게장 10번 넘게 만들어보면 무도 게도 다 싫어지는 순간이 오더라고요. 그런데 그 과정을 모두 겪고 지금 와서 보니 이젠 정말 취미라고만 할 수 없는 것 같습니다. 인간 류수영을 봤을 때 요리는 저를 쓸모 있게 만들어주는 일이 아닌가 싶어요. 레시피를 만들고 요리를 한다는 게 대충할 수 없는 일이 됐고요. 띄엄띄엄 나의 재능을 보여주는 정도로만 했다면 지금처럼은 아니었을 것 같아요.”
지금은 요리가 그를 온기 있는 사람으로 만들어줬다고 믿는다. 연기를 할 땐 심장이 빨리 뛰고 뜨겁습니다. 그런데 요리를 하면 좀 따뜻해져요. 뜨거울 땐 사람들이 바라봐주지만 다가오진 않아요. 그런데 요리를 하면 따뜻해지니 다가오는 것 같아요. 다가오는 게 달라요. 연기만 할 땐 “누구더라, 아, 류… 류수영!” 했다면 요리를 하니 “엇! 어남선생이다! 그때 그거 진짜 잘 먹었어요란 말부터 합니다. 요리로 소통하고나서 좀 더 온기있는 사람이 된 것 같아요.”
그런 그가 책에서 소개한 요리 중 가장 마음이 가는 것은 바로 돈파육이다. 아버지와 한잔할 때 돼지고기와 파 한 단으로 뚝딱 만들었던 추억이 있는 요리다. “아버지는 저의 가장 친한 친구이자, 가장 친한 술친구이자, 그런 분이거든요. 지금은 약주를 좀 덜하시지만…. 돈파육 되게 쉬워요. 파 한 단을 한 번에 해치울 수 있고요. 추억이 있어서 추천하고 싶어요.”
한국 음식에 관심을 갖는 외국인 독자들에겐 ‘만원갈비찜’을 추천했다. “배우 휴잭맨에게 제가 해줬던 음식인데 엄청 맛있게 잘 먹더라고요. 그리고 미국 미네소타 콩코디아 대학교엔 한국어 마을이 있어요. 한국어로 4주 동안 수업을 하는 곳인데, 교포도 있지만 한국어를 배우고 싶은 외국 아이들이 더 많았거든요. 그곳에서 만원갈비찜을 했는데, 200명이 밥 한 솥을 더 먹더라고요. 미국 아이들부터 할리우드 배우까지 두루 입맛을 사로잡았던 제겐 확신의 메뉴입니다.”
◇ 어남선생의 세 가지 꿈 “혼수로 삼는 요리책·반찬책 출간·한식 세계화”
배우 류수영은 이 책이 결혼할 때 꼭 챙겨가야 할 혼수품으로 자리매김하면 좋겠다고 했다. 마치 이탈리아 요리책 ‘실버스푼’처럼 됐으면 좋겠다고 생각한 것이다. 실버스푼은 530가지 재료로 만들어진 2000가지 요리법을 집대성한 이탈리아 요리 문화 대백과사전이다. 이탈리아 요리의 바이블이라고도 불린다.
“영미권에서 실버스푼은 ‘상속받은 유산’을 뜻하고. 이탈리아인들에게 레시피는 유산보다 중요한 가치를 지닌대요. 우리 아들이, 우리 딸이 결혼하는데 건네줄 수 있는 책이 됐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집에서 특별한 재료 없이도 요리법만 지켜서 만들면 ‘어, 왜 맛있지?’ 이런 생각이 들만한 요리들을 골라 담았어요.”
같은 맥락에서 출판사도 사려 깊게 골랐다. 고민 끝에 민음사를 선택했다. 민음사는 이탈리아 요리 바이블 ‘실버스푼’을 출판하고 미국 가정 요리의 고전이라고 불리는 ‘조이 오브 쿠킹’을 국내에 소개했다. 조이오브쿠킹은 1931년에 초판된 이래로 4대에 걸쳐 개정판이 나오는 요리책이다.
배우 류수영의 다음 계획은 반찬 레시피를 담은 책이다. “여기에 담지 못한 내용이 꽤 많아요. 밥솥에 밥을 해서 얼려놓고, 국을 한솥해서 얼려놨으면 해동해서 먹으면 되거든요. 그런데 여기서 빠지면 안 되는게 반찬이예요. 제철 반찬 만드는 법을 소개하고 싶어요.”
한식의 세계화에도 관심이 많다. “미국 서부를 중심으로 한식에 대한 관심이 넓게 퍼져있어요. 동남아시아에서도 한식을 너무 좋아하시더라고요. 공통점도 많아요. 한식은 기름지지도 않고 향신료가 강하지 않아 세계적으로 뻗어 나가기 좋은 음식이더라구요. 앞으로 한식 레시피 북을 미국이나 동남아 등에 내보고 싶습니다.”
이날 배우 류수영의 저녁 식단은 ‘설마고추장비빔면’이라고 했다. “제 냉장고엔 지금 세 조각의 돼지갈비 목살이 남아있거든요. 거기에 전분을 묻혀서 육전을 하고 비빔면을 할 생각이에요. 딸아이랑 같이 먹어야죠. 아이들은 조금 간이 센 걸 좋아하는 게 있어서. 한번 배달 음식로 가면 못 돌아오더라고요. 그런데 저도 힘들면, 배달 음식을 먹기도 합니다.”
배우 류수영은 출간 기념으로 사인회도 갖는다. 사인회는 오는 12일에 교보문고 광화문점과 강남점에서 열릴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