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수가 낮은 저도주가 주류 시장의 대세로 자리 잡은 가운데, 최근 국내 맥주 업계에서는 오히려 도수가 높은 고도수 맥주 신제품이 잇따라 출시되고 있다. 건강을 중시하는 ‘헬시플레저’ 트렌드가 저도주 열풍을 이끄는 상황에서 틈새시장을 겨냥한 전략으로 해석된다. 고물가 시대에 ‘가성비 음주’를 원하는 소비자들과, 과일이나 음료를 섞어 마시는 믹솔로지(Mixology) 수요에 대응하는 측면도 있다.

오비맥주가 '카스 레몬 스퀴즈 7.0’ 출시를 기념해 지난달 20일부터 서울 성수동에서 10일간 운영한 팝업스토어(임시 매장) '수상한 성수역 7번 출구' 공간. /오비맥주 제공

3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오비맥주는 지난달 알코올 도수 7도의 ‘카스 레몬 스퀴즈 7.0’을 출시했다. 2023년 출시된 ‘카스 레몬 스퀴즈’의 풍미를 유지하되 도수는 기존 4.5도에서 7도로 높였다. 편의점 GS25도 지난 4월 도수 13도의 ‘리얼 비어볼’을 선보였다. 이는 탄산수나 토닉워터, 레몬즙 등과 섞어 마시는 걸 권하는 제품이다.

저도주가 대세인 상황에서 높은 도수의 맥주가 속속 등장하는 것은 이례적이다. 팬데믹 이후 회식이나 술 권하는 문화가 줄고, 건강을 중시하는 소비자들이 늘면서 논알콜·저도주 시장은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시장조사업체 유로모니터에 따르면 국내 논알콜 맥주 시장 규모는 2021년 415억원에서 2023년 644억원으로 55% 이상 커졌다.

저도주와 논알콜 맥주가 성장하는 가운데 고도수 맥주가 등장한 것은 소비자 취향이 다양해진 결과다. 팬데믹 이후 혼술·소확행(작지만 확실한 행복)을 즐기는 소비자들이 늘어났고, 이에 따라 ‘가볍지만 만족스러운 음주’에 대한 수요가 증가했다. 여기에 고물가 상황까지 겹치면서 한두 캔으로 끝낼 수 있는 술에 대한 관심이 커진 것이다.

오비맥주 관계자는 “다변화된 소비자 취향을 겨냥하기 위해 카스 레몬 스퀴즈 7.0을 출시한 것”이라며 “고도수 맥주를 찾는 소비자층도 분명히 있다고 판단했다”라고 말했다. 오비맥주가 ‘카스 레몬 스퀴즈 7.0’ 출시를 기념해 지난달 20일부터 서울 성수동에서 10일간 운영한 팝업스토어(임시 매장) ‘수상한 성수역 7번 출구’에는 1만2000명이 방문했다.

리얼 비어볼. /GS25 제공

또 도수가 높은 맥주는 위스키에 비해서는 가격 부담이 적고, 일반 맥주보다 높은 도수로 취기를 빠르게 느낄 수 있어 ‘가성비 음주’를 중시하는 젊은 세대에게 매력적이다. 업계 관계자는 “하이볼은 맛있지만 비싸고, 위스키는 너무 무겁다는 인식이 있어 고도수 맥주가 중간 대체재로 떠오르고 있다”고 말했다. 오비맥주 관계자는 “카스 레몬 스퀴즈 7.0은 알코올 도수가 하이볼과 비슷하다”라며 “대형마트 등 유통 채널에서 맥주가 아닌 하이볼과 비슷한 위치에 진열하려고 하고 있다”라고 했다.

과일이나 음료를 섞어 자신만의 스타일로 술을 즐기는 믹솔로지 문화도 고도수 맥주 확산에 힘을 보태고 있다. GS25는 리얼 비어볼 패키지에 “7:1 비율의 ‘가볍게’, 3:1 비율의 ‘평소처럼’, 1:1 비율의 ‘묵직하게’” 등 소비자들이 각자 취향에 맞게 탄산수, 토닉워터 등과 섞어 마실 수 있도록 가이드를 제시하기도 했다.

해외에서는 고도수 맥주 시장의 성장 가능성이 크다는 전망도 나온다. 시장조사업체 서캐나에 따르면 지난해 미국 맥주 시장 규모는 전년 대비 0.6% 감소한 반면, 고도수 제품 중심의 ‘슈퍼 프리미엄 맥주’ 시장 규모는 4% 증가했다. 주류 시장분석업체 IWSR도 프리미엄 맥주 판매량이 증가하고 있다고 분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