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적인 미식 시상식에서 한국 셰프들이 이끄는 한식당들이 잇따라 선정되면서 한식의 글로벌 위상이 한층 높아졌다. 한식 고유의 식재료와 철학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접근이 국제 미식계의 주목을 받고 있다. 여기에 서비스 품질까지 두루 갖춘 레스토랑들이 세계 무대에서 성과를 내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밍글스가 선보인 메뉴. 쑥 인절미(왼쪽 아래), 벚꽃을 얹은 차가운 아스파라거스와 성게(오른쪽 아래)./밍글스 인스타그램 캡처

23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글로벌 외식업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평가 중 하나로 꼽히는 ‘월드 베스트 50 레스토랑(The World’s 50 Best Restaurants)’ 시상식이 지난 19일(현지 시각) 이탈리아 토리노에서 열렸다. 세계 6개 대륙, 25개 지역, 37개 도시의 레스토랑을 대상으로 셰프, 비평가, 미식가 등 1120명의 전문가가 참여한 투표를 통해 순위를 정했다. 순위는 100위까지 공개됐으며, 한국에서는 서울 강남의 ‘밍글스’가 29위, 종로의 ‘온지음’이 57위에 각각 이름을 올렸다.

밍글스는 4년 연속 50위권 내에 포함됐다. 지난해 44위에서 15계단 상승했다. 평가단은 “현지 식재료를 섬세하게 탈바꿈한 요리를 맛볼 수 있는 곳”이라고 했다. 뉴욕의 한식 파인다이닝 ‘아토믹스’는 12위를 기록하며 미국 내 식당 중 가장 높은 순위에 올랐다. ‘세련되면서도 전통을 잃지 않은 독창적인 한식’이라는 평가가 뒤따랐다.

뉴욕 한식 파인다이닝 아토믹스의 메뉴들./ 아토믹스 인스타그램 캡처

51~100위권에서는 한국 레스토랑 중 ‘온지음’이 포함됐다. 전통문화연구소가 운영하는 온지음은 옷, 음식, 공간을 아우르는 문화 복원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시작된 레스토랑이다. 조윤희 총괄 셰프는 절기와 기의 흐름에 따라 메뉴를 구성하며, 동양 철학에 입각한 미감을 현대 코스요리 형식으로 재해석했다.프렌치 파인다이닝의 틀을 차용하되 동양적 절제미와 기능성을 강조한 점이 차별화 요소로 꼽힌다.

한식의 약진은 이뿐만이 아니다. ‘미식계의 오스카상’으로 불리는 제임스 비어드 어워드(James Beard Awards)에서도 한국 셰프들이 대거 수상했다. 지난 16일 열린 ‘2025 제임스 비어드 어워드’에서 뉴욕 ‘정식당’의 임정식 셰프는 ‘최고의 셰프상’을 수상했다. 아토믹스는 ‘최우수 접객상’을 받으며 맛뿐 아니라 서비스와 공간, 환대의 수준까지 세계적 기준으로 끌어올렸음을 입증했다.

밍글스의 강민구 셰프가 나디아 조, 조슈아 데이비드 스타인 등과 공동 집필해 작년 3월 미국에서 출간한 ‘장: 한국 요리의 영혼(JANG: The Soul of Korean Cooking)’은 ‘올해의 도서상’을 수상했다. 이 책은 간장, 된장, 고추장 등 전통 발효장에 담긴 철학과 조리법을 세계 독자에게 소개한 저작으로 평가받고 있다.

‘월드 베스트 50 레스토랑’과 ‘제임스 비어드 어워드’는 세계 미식계에서 권위를 인정받는 시상식이다. 이들 평가에서 수상한다는 것은 해당 레스토랑이 창의성과 영향력, 정체성을 세계 기준에서 공인받았다는 의미다. 최근에는 다양성과 지역성, 식문화의 사회적 역할 등을 반영하는 방향으로 평가 기준이 확대되고 있다. 기술적 완성도뿐 아니라 철학과 지속 가능성까지 주요 판단 요소로 부상하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특히 제임스 비어드 어워드에서 한식당이나 한국 셰프가 수상한 것은 한식이 미국 내에서 단순한 이색 요리를 넘어 주류 미식 문화로 진입하고 있음을 상징하는 지표로 해석된다”라며 “미식계 내에서의 문화적 영향력까지 함께 인정받는 셈”이라고 말했다.

온지음이 선보인 메뉴. 대저토마토를 갈아만든 즙에 녹말을 더한 토마토 응이와, 제철 방아를 넣어 직접 제면한 면./온지음 인스타그램 캡처

최근 한식당들은 단순히 한식 메뉴를 내놓는 데 그치지 않고, 전통의 뿌리를 지키면서도 글로벌 미식 트렌드에 맞는 창의적 해석을 더하고 있다. 된장, 고추장, 간장 등 발효 장류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하거나 한식 고유의 철학을 세련되게 풀어낸 것이 높은 평가로 이어졌다.

국내외 미식 네트워크가 촘촘해진 것도 한식의 위상 강화에 기여하고 있다. 올해 최정윤 샘표 우리맛연구실장이 월드 50 베스트 레스토랑의 한국·대만 의장으로 임명됐다. 최 실장은 조선호텔과 호주 하얏트 리젠시, 스페인 엘불리 등에서 경험을 쌓았다.

2010년 샘표에 합류해 한국 전통 장을 전 세계인들에게 알리는 ‘장 프로젝트(JANG Project)’를 주도하며 스페인, 미국 등에서 150여 개 레시피를 개발한 바 있다. 2018년부터는 뉴욕에 ‘연두 컬리너리 스튜디오’를 개설해 현지 셰프들과의 교류도 이어가고 있다. 한식 세계화의 최전선에서 활약한 인물로 평가받는다.

업계 관계자는 “한식은 이제 세계 미식계에서 고유한 정체성과 철학을 갖춘 독립된 장르로 자리매김하고 있다”라며 “전통과 현대의 조화, 창의적 해석, 서비스 혁신, 그리고 촘촘한 글로벌 네트워크가 어우러진 결과”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