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체에 유해한 가습기 살균제를 유통·판매해 환경 참사를 낸 옥시레킷벤키저가 피해 변제엔 더딘 모습을 보이고 있다. 그러나 해당 유해 상품 출시를 알리는 25년 전 기사를 삭제해 달라고 언론사에 요청해 논란이 일고 있다.
옥시 측은 기사 삭제에 나선 배경에 공정거래위원회(공정위)의 요청이 있었다고 밝혔다. 그러나 정작 공정위는 그런 요청을 한 적이 없다는 입장이다.
20일 관련 업계와 공정위에 따르면 최근 옥시레킷벤키저는 최근 언론사에 고체형 가습기 살균제 출시 기사를 삭제해달라는 이메일 요청을 보냈다. 이는 2000년 12월, 해당 업체가 상품 출시를 알리면서 작성된 기사다. 기사에는 “옥시는 가습기 물통에 넣어두면 살균·세정효과를 내는 가습기당번 고체형을 선보였다. 개당 7000원”이라는 문구가 포함돼 있다.
옥시레킷벤키저는 이메일을 통해 “이미 기사화된 이후 시일이 많이 지났으나, 가습기살균제 사태가 사회적으로 큰 문제로 대두되었고 이로 인해 피해를 본 많은 피해자와 관계자가 많은 상황”이라며 “현재 가습기살균제 판매가 법적으로 금지돼 있으므로 해당 고체형 가습기살균제 출시 기사 삭제를 요청한다”고 했다.
옥시의 고체형 가습기 살균제는 2000년 12월 출시됐다. 2011년 유해성이 수면 위로 떠오른 직후 판매가 중단된 상품이다. 옥시레킷벤키저 관계자는 조선비즈와 통화에서 “공정위 표시광고법 관련 부서가 해당 상품 출시에 대한 기사를 내리라는 요구를 해온 데 따른 것”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정작 공정위는 이런 요청을 한 적이 없다는 입장이다. 공정위 관계자는 “가습기 살균제에 대한 민원이 들어와 판매 금지된 제품을 혹시 팔고 있는지 여부를 확인했을 뿐”이라며 “유해 상품 출시 기사에 대해 (옥시 측에) 지우라는 요청을 한 적이 없다”고 말했다.
옥시와 공정위가 의견을 반대로 낸 것은 과거에도 여러 번이다. 옥시는 가습기 살균제 문제가 발생한 직후 유해성을 인지하지 못했다고 밝혔지만, 공정위는 이를 반박했다.
공정위가 2012년 8월 낸 ‘옥시레킷벤키저의 부당한 표시행위’에 대한 의결서에 따르면, 공정위는 옥시가 가습기 살균제에 쓰인 원료 폴리헥사메틸렌구아니딘(PHMG)을 먹거나 흡입했을 때 인체에 유해하다는 점이 적힌 물질안전보건자료를 사전에 받았기 때문에 유해성을 알고 있었다는 취지의 입장을 낸 바 있다.
가습기 살균제 사태는 정부가 인정한 피해자만 지난해 말 기준 5828명에 달하는 최악의 환경 참사다. 하지만 유통·제조업체인 옥시는 살균제의 유해성을 제조 당시 전혀 몰랐고 폐질환과의 연관성도 인정할 수 없다는 입장을 보여왔다. 2011년 유해성 문제가 불거지고 14년이 흘렀지만 피해자에 대한 보상 문제에 대한 논의도 이뤄지지 않았다. 2021년 조정 해결에 합의해 조정위를 구성했지만 옥시를 포함한 회사 두 곳이 조정안에 동의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피해 구제 조정안에 따르면 옥시 등 9개 기업이 피해자들에게 9240억원가량의 보상금을 지급해야 한다. 옥시는 조정안 이행에 필요한 기금의 52%를 부담해야 하지만 옥시는 업체별 분담 비율이 부당하다면서 조정안에 부동의했다.
옥시레킷벤키저는 1995년부터 2000년까지 염화벤잘코늄(BKC) 성분이 들어간 가습기살균제 ‘옥시싹싹 가습기당번’ 75만개를, 이후 2001년부터 2011년까지 폴리헥사메틸렌구아니딘(PHMG)으로 성분을 바꾼 ‘옥시싹싹 뉴가습기당번’ 415만개를 팔았다. 가습기 살균제 피해 인정자의 89%가 옥시 제품을 사용한 것으로 알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