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이트진로(000080)는 맥주 ‘하이트’, ‘테라’, 소주 ‘참이슬’ 등 브랜드를 보유하고 있는 토종 주류회사다. 1924년 평안남도에서 설립된 ‘진천양조상회’가 모태로 올해 창립 97주년을 맞았다.
하이트진로는 지난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에도 호실적을 달성했다. 하이트진로의 지난해 영업이익은 1985억원으로 전년 대비 125% 늘었고, 매출액은 11% 증가한 2조2563억원을 기록했다. 하이트맥주와 진로가 합병한 2011년 이후 최대 실적이다. 주력 제품으로 내세운 소주 ‘진로이즈백’과 맥주 ‘테라’가 ‘홈술족(집에서 술먹는 사람들)’ 사이에서 인기몰이를 한 결과다.
실적 호조 속 하이트진로는 ‘3세 경영’을 본격화했다. 지난해 말 박문덕 회장의 장남인 박태영(43) 부사장이 사장으로, 차남 박재홍(39) 전무가 부사장으로 승진했다.
박문덕 회장은 고(故) 박경복 명예회장의 차남으로 2001년 경영권을 넘겨 받았지만, 2014년 일신상의 이유로 대표이사직에서 물러났다. 이후 하이트진로는 김인규 대표가 이끄는 전문 경영인 체제로 운영됐지만, 지난해 박태영·재홍씨의 승진으로 오너 3세와 전문 경영인이 함께 회사를 이끄는 ‘투톱 체제’로 전환했다.
1978년생인 박태영 사장은 2012년 하이트진로 경영관리실장으로 입사한 후 부사장을 거쳤다. 하이트진로그룹의 유력 후계자로 꼽히는 박 사장은 영업 마케팅과 경영 전략을 맡고 있다.
◇ 지배구조 정점 ‘서영이앤티’… 박태영 사장 최대주주
하이트진로그룹 지배구조는 2008년 7월 인적분할을 통해 출범한 지주회사 하이트진로홀딩스(000140)가 하이트진로(50.86%), 진로소주(100%)를 자회사로 두고, 하이트진로를 통해 손자회사를 간접 지배하는 형태다. 지난 3월 말 기준 하이트진로그룹의 국내외 계열사는 25개다.
하이트진로는 2011년 9월 진로(존속법인)와 하이트맥주(소멸법인)이 합병해 만들어졌다. 최대주주는 지분 50.86%를 보유한 하이트진로홀딩스다. 이 밖에 주류 포장재 생산 업체 하이트진로산업과 생수·음료를 제조사 하이트진로음료를 비롯해 진로양조와 강원물류, 수양물류 등을 계열사로 두고 있다.
현재 하이트진로홀딩스의 최대 주주는 지분율 29.49%(2021년 3월 보통주 기준)를 보유한 박문덕 회장이다. 박태영·재홍 형제는 하이트진로와 지주회사인 하이트진로홀딩스의 지분을 직접 보유하고 있지 않다. 다만 이들은 개인 회사인 서영이엔티 지분을 통해 그룹에 대한 지배력을 행사하고 있다.
서영이앤티는 지난 2007년 박 사장이 인수한 산업용 냉장·냉동 장비 제조업체다. 서영이앤티는 현재 하이트진로홀딩스 지분 27.66%을 보유하고 있다. 지난 5월 말 기준 서영이앤티의 주요 주주는 박태영 사장(58.44%), 박재홍 부사장(21.62%), 박문덕 회장(14.69%), 박 회장의 형 박문효 하이트진로산업 회장(5.16%)이다. 오너 일가가 99.9% 지분을 보유한 셈이다.
서영이앤티는 하이트진로그룹의 경영권 승계 과정에서 핵심 역할을 할 것으로 전망된다. 박 사장이 박 회장의 하이트진로홀딩스 지분을 물려받으려면 막대한 상속세와 증여세를 내야 한다. 업계에서는 서영이앤티가 하이트진로홀딩스 지분을 늘리고, 박 사장이 서영이앤티의 지분을 추가 확보하는 방식으로 하이트진로그룹에 대한 지배력을 유지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 일감 몰아주기부터 계열사 은폐 논란까지
그러나 하이트진로그룹의 경영 승계 과정은 순탄치 않다. 박태영 사장과 박문덕 회장은 각각 일감 몰아주기, 친족이 보유한 계열사와 친족 임원 등재 사항 등을 고의로 누락한 혐의로 공정거래위원회에 잇달아 고발 당한 상태다.
법조계와 유통업계 등에 따르면 서울중앙지검은 공정위가 지난달 16일 박 회장을 허위자료 제출한 혐의로 고발한 사건을 최근 공정거래조사부에 배당하고 수사에 착수한 것으로 알려졌다.
현행 공정거래법에 따르면 자산총액이 5조원 이상인 대기업 집단은 매년 공정위에 계열사와 주주, 친족현황을 담은 대기업 집단 지정자료를 제출해야 한다. 이를 어기면 2년 이하 징역에 처해지거나 1억5000만원 이하 벌금을 물게 된다. 지난 5월 기준 하이트진로의 자산총액은 5조4480억원이다.
박 회장은 2017년과 2018년 하이트진로 그룹 자료를 공정위에 제출하면서 친족이 지분 100%를 보유한 5개사를 누락한 혐의를 받는다. 공정위는 박 회장이 고의로 이 회사들을 누락했다고 보고 있다.
누락된 회사들은 연암·송정·대우화학·대우패키지·대우컴바인 등 5개사다. 연암·송정은 박 회장의 조카들이, 대우화학·대우패키지·대우컴퍼니는 박 회장의 고종사촌과 그의 아들, 손자가 지분 100%를 보유한 개인회사로 알려졌다. 이 회사들은 하이트진로와의 내부 거래 비중도 컸다. 대우화학의 2018년 매출 중 내부 거래 비중은 55.4%, 대우패키지는 51.8%, 대우컴바인은 99.7%에 달했다.
하이트진로가 친족회사와의 내부거래를 감추기 위해 자료에 누락시켰다는 게 공정위의 견해다. 반면, 하이트진로는 해당 기업들을 공시 자료에서 누락된 것은 단순 실수라고 주장한다.
이에 앞서 박 사장은 오너가 보유인 계열사 서영이앤티에 2008년부터 2017년까지 일감 몰아주기를 한 혐의로 공정위로부터 고발됐다. 공정위 조사 결과 하이트진로는 당시 삼광글라스(현 SGC에너지)로부터 직접 구매하던 맥주 공캔 원재료과 글라스락캡(유리밀폐용기 뚜껑)을 서영이앤티를 거쳐 구매하도록 하는 이른바 ‘통행세’ 방식으로 일감을 몰아줘 등 부당 이득을 챙긴 혐의를 받았다.
이에 공정위는 2018년 하이트진로에 107억원의 과징금을 부과하고 박 사장을 검찰에 고발했다. 하이트진로와 서영이앤티는 공정위의 처분에 반발, 행정소송을 제기했지만, 패소했다. 결국 법원은 지난해 5월 박 사장에게 징역 1년 6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하이트진로 법인에 2억원의 벌금형을 선고했다. 그러나 이 사건은 검찰과 하이트진로가 모두 항소해 현재 2심이 진행 중이다.
이은희 인하대 소비자학과 교수는 “최근 ESG(환경·사회·지배구조) 경영이 재계 화두로 떠오르면서 이에 대한 소비자의 관심도 커지고 있다”며 “특히 B2C(기업과 소비자간 거래) 회사의 경우 공정하지 못한 기업 관행이 문제가 되면 제품 브랜드 이미지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