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이(K)뷰티와 패션이 전 세계에서 파란을 일으키고 있다. 한국 화장품은 미국과 일본에서 기존 강국인 프랑스 화장품을 제치고 수출 1위를 차지하며 글로벌 시장의 중심으로 자리 잡았다. 패션 분야도 성장을 거듭하고 있다. 조선비즈는 해외에서 인정을 받은 뷰티·패션 브랜드들의 성공 스토리와 차별화된 제품 철학을 릴레이 인터뷰했다. [편집자 주]

지난해 다이소에서 나온 손앤박의 ‘아티 스프레드 컬러밤(이하 컬러밤)’은 출시 직후 전국 품절 사태를 빚었다. ‘3000원’이라는 저렴한 가격대지만, 20배 이상 비싼 샤넬 제품(6만5000원)과 비슷한 성능을 가졌다는 입소문이 나면서다. 손앤박의 ‘저렴이 샤넬밤’은 경기 불황과 고물가 속 ‘듀프(Dupe)’ 유행의 아이콘이 됐다. 듀프는 영어 단어 ‘Duplication(복제품)’에서 따온 말로, 고가 브랜드 대신 가성비 대체품을 찾는 소비 트렌드를 뜻한다.

지난 3일 서울 성동구 성수동 손앤박 본사에서 만난 김한상 대표는 ‘스프레드 컬러 밤’의 개발 과정을 이같이 설명했다. 손앤박은 케이(K)뷰티 1세대 인디 브랜드다. 브랜드 창립자인 김 대표는 수 차례 위기를 맞은 브랜드를 혁신과 과감한 변화로 부활시켰다.

지난 3일 서울 성동구 성수동 손앤박 본사에서 만난 김한상 대표. 손앤박은 작년 일명 '다이소 샤넬밤'으로 소비자들의 인기를 끌었다. /최효정 기자

손앤박은 2012년 김 대표가 유명 메이크업 아티스트인 손대식, 박태윤과 손을 잡고 만든 색조 전문 브랜드다. 김 대표는 그의 부친이 운영하던 ‘참조은화장품’을 물려받아 손앤박을 창립했다.

손앤박은 메이크업 전문가들이 만든 브랜드라는 후광을 입고 CJ올리브영과 면세점, 미국 세포라 등에 차례로 입점하며 승승장구했다. 그러나 2016년 브랜드의 상징이었던 손대식, 박태윤과 결별하면서 올리브영에서 철수 수순을 밟는 등 어려움을 겪었다.

이후 중국 등 해외 시장 진출로 활력을 되찾았던 손앤박은 코로나19 팬데믹(세계적 대유행)으로 다시 한번 어려움을 겪었다. 이 기간 직원 수가 40명에서 10명대로 줄었다. 브랜드는 존폐 위기를 맞았다. 김 대표는 “당시 수십억원대였던 매출이 수억원대로 추락했다. 가족 같던 직원들도 어쩔 수 없이 내보냈다”고 말했다.

하지만 김 대표는 이 기간 절치부심했다. 그리고 다시 기회를 잡기 위한 방법을 찾아냈다. 바로 다이소와의 협업이었다. 중고가 대신 초저가 전략을 선택한 것이다. 그는 “경기 불황 속 소비가 양극화하면, 초저가 화장품 시장이 열릴 것으로 예상했다”며 “2022년 다이소 측에 먼저 협업을 요청했고, 결정이 난 직후 제품 개발에 들어갔다”고 말했다.

그렇게 탄생한 것이 바로 다이소의 히트 아이템인 컬러밤 제품이다. 제품 개발에만 10개월 이상이 걸렸다. 이 제품을 통해 손앤박의 지난해 매출은 작년 전년 대비 140% 성장한 51억원을 기록했다. 김 대표는 “이 제품이 큰 성공을 거두면서 손앤박이 다시 성공 궤도에 올랐다. 작년 가장 뿌듯했던 점은, 버텨준 직원들에게 명절 보너스를 줄 수 있었던 것”이라고 말했다.

작년 서울 마포구 한 다이소 매장에 배치된 화장품 코너 앞에 손앤박 '컬러 밤 3종 테스트 제품'이 마련돼 있다(왼쪽). 해당 제품은 온·오프라인상 모두 품절된 상태다. /민영빈 기자

김 대표는 컬러밤의 성공 비법이 결국 저렴한 가격과 좋은 품질이라고 설명했다. 지난해 한 인플루언서가 샤넬 제품과 비슷하다며 영상을 올리는 등 입소문을 탔는데, 정작 손앤박 측에서 먼저 협찬 등은 전혀 한 적이 없다는 것이다.

그는 “손앤박이 가지고 있는 색조 제품에 대한 개발력과 기획력을 바탕으로 품질 외 다른 부분은 전부 비용을 줄였다”면서 “용기 등 부자재는 샘플 용기처럼 간단하게 하고, ‘립앤치크’라는 멀티유즈(다용도) 시장을 공략했다”고 말했다. 이어 “대대적인 홍보를 하지도 않았는데, 입소문이 저절로 나고, 언론에도 등장했다”고 설명했다.

김 대표는 다이소와의 협업이 손앤박 브랜드 재건을 위한 중요한 전환점이 되었다고 강조했다. 그는 “다이소에서 성공을 통해 손앤박 브랜드가 1020세대에게 ‘색조를 잘 뽑아내는 비건 뷰티 브랜드’라는 인식이 생겼다”면서 “업력에 따라 쌓였던 기존 브랜드 이미지를 전환하는 데 성공했고, 새로운 소비자층을 확보한 것이 더 큰 자원”이라고 설명했다.

손앤박의 다음 목표는 해외 시장의 문을 두드리는 것이다. 올해 일본과 북미 시장 진출을 본격화할 예정이다. 돈키호테 등 일본 오프라인 매장 입점은 900개를 넘어섰다. 아마존 등 북미 온라인 시장도 진출한다.

김 대표는 “앞으로의 목표는 해외에서의 성장을 더욱 가속화시키는 것”이라면서 “경쟁이 심화하는 K뷰티 산업에서 듀프의 상징적 브랜드로 거듭날 것”이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