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G생활건강(051900)이 글로벌 케이(K)뷰티 시장에서 인디 브랜드에 뒤처지는 모습이다. 최근에는 인디 브랜드 ‘메디큐브’를 운영하는 에이피알(APR)에 시가총액을 추월당하며 아모레퍼시픽에 이은 업계 2위 자리를 내줬다. 전문가들은 북미 시장에서의 부진과 브랜드 존재감 약화를 주요 원인으로 지목한다.

18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지난 16일 종가 기준 LG생활건강의 시가총액은 5조1462억원, APR의 시가총액은 6조3267억원으로 집계됐다. 양사의 시총 순위가 뒤바뀌면서 APR은 아모레퍼시픽에 이어 화장품 업계 시총 기준 2위에 올라섰다. 아모레퍼시픽의 시총은 약 8조원이다.

그래픽=정서희

업계 일각에서는 이번 시총 역전이 일시적 현상이 아니라, K뷰티 산업 발전에 따른 구조적 전환이라고 보고 있다. 앞서 LG생활건강이나 아모레퍼시픽 등 기성 기업이 중국에서의 인기를 바탕으로 활황을 누렸다면, 현재는 북미 시장이 주요 수출 대상으로 떠올랐다.

APR은 북미 시장에서 빠르게 브랜드 인지도를 높이고 있다. APR의 대표 브랜드 메디큐브의 미국 아마존 뷰티 카테고리 내 검색량은 지난 5월 기준 40만4749건으로, 2위 록시땅의 ‘쏠 데 자네이로’(30만598건)를 앞섰다. 아누아(12만 건), 라네즈(17만 건), 조선미녀(10만 건) 등 기존 K뷰티 브랜드를 모두 합친 것과 맞먹는 수준이다.

APR은 틱톡 등 사회관계망 서비스(SNS)와 검색 기반 마케팅에 강점을 보이며, ‘저가 K뷰티’의 틀을 넘어 북미 현지에서 인기 브랜드로 자리 잡았다는 평가다. 지난해 APR의 전체 매출에서 해외 비중은 절반에 육박했다. 올해 1분기 해외 매출은 1900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3배 가까이 증가했다.

반면 LG생활건강은 여전히 중국 시장 의존도가 높고, 북미 시장에서는 히트 브랜드가 없어 고전하고 있다. LG생활건강의 지난해 북미 매출은 5662억원으로 전년 대비 11.8% 감소했고, 전체 매출에서 북미 비중도 9.4%에서 8.3%로 줄었다.

LG생활건강이 인수한 에이본, 더크렘샵 등 브랜드도 현지에서 뚜렷한 반응을 끌어내지 못하고 있다. 일각에선 K뷰티 브랜드가 아니라 미국 현지 브랜드를 인수하면서 북미의 K뷰티 인기 덕을 보지 못한다는 반응도 나온다. 이는 라네즈를 통해 북미 시장에서 존재감을 드러내는 아모레퍼시픽과 대비된다.

K뷰티 붐을 주도한 인디 브랜드들은 탄탄한 제품력과 SNS 기반 콘텐츠로 MZ세대를 겨냥한 ‘발견형 쇼핑’에 최적화됐다는 평가를 받는다. 상대적으로 몸집이 큰 LG생활건강이 기민하게 대응하기 어려운 점도 있다. 이가영 삼성증권 연구원은 보고서에서 “인디 브랜드들의 서구권 고성장을 이끈 마케팅 노하우를 이길 만한 전략이 아직 수립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라며 “전략상 반전이 없다면 당분간 역전은 쉽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사업 포트폴리오 개선도 정체 상태다. LG생활건강의 중국 실적은 회복이 더딜 것으로 전망된다. 증권가에 따르면 화장품 매출의 40% 이상을 차지하는 중국 시장에서 올해 2분기 매출은 전년 대비 15% 감소할 것으로 보인다. 특히 면세 채널은 중국 다이궁(보따리상) 물량 축소로 27% 역성장 전망이 나온다. 가격 통제력을 높이기 위한 전략이지만, 중국 내수 회복세가 이를 상쇄하지 못하고 있는 셈이다.

뷰티업계 관계자는 “LG생활건강은 북미 시장 확대를 시도하고 있지만 아직은 브랜드력이 약해 존재감을 드러내지 못하고 있다”며 “작년에 인기 K인디 브랜드 인수를 여러 차례 시도한 것으로 알려졌는데, 가격 차이로 무산됐다. 과감한 투자 결정을 내리지 못한 것”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