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일 오전 11시 서울 홍대입구역 인근의 한 약국. ‘스킨케어(Skincare)’ 진열대 앞에서 외국인 관광객들이 스마트폰 화면을 들여다보며 제품 정보를 확인하고 있었다. 마스크를 쓴 일부 관광객은 병원 시술 직후 방문한 듯, 직원에게 저장해 둔 사진을 보여주며 재생 크림이나 연고류를 찾는 모습이었다.
일본인 관광객 후쿠이 마리에(25)씨는 “피부과 시술을 받고 재생 크림을 사러 왔다”고 말했다. 싱가포르에서 온 아만다 민(32)씨도 “틱톡에서 본 ‘한국 약국 추천템’을 구매하려고 한다”라고 했다.
8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최근 외국인 관광객 사이에서 약국이 새로운 케이(K)뷰티 쇼핑 채널로 주목받고 있다. 단순한 의약품 구매를 넘어 여드름 치료제, 재생 크림, 미백 기능성 제품 등 이른바 ‘의약 화장품(코스메슈티컬)’을 구매하려는 수요가 늘면서다. 특히 병의원이 밀집한 지역의 약국에 성형과 피부 시술을 받은 직후 사후관리 제품을 구매하려는 고객들이 몰린다.
서울 강남, 명동, 홍대 등 주요 상권 약국들은 외국인 수요에 대응해 다국어 라벨 부착, 무인 환전기 설치, ‘택스 리펀(세금 환급)’ 안내 도입 등 서비스를 강화하고 있다. 약사 김인영(38)씨는 “인근 피부과에서 시술을 받은 뒤 약국에 들러 화장품을 사 가는 게 외국 관광객들 사이에 통상적인 코스가 됐다”며 “올리브영보다 가격이 저렴하면서도 효과가 좋다는 인식이 퍼져 인기가 높다”라고 말했다.
실제 외국인의 국내 의료 소비는 빠르게 늘고 있다. 한국관광데이터랩에 따르면 외국인의 의료 소비 건수는 2020년 59만3577건에서 2024년 292만9831건으로 5배 가까이 증가했다. 특히 올해 5월 한 달 동안에만 37만9397건을 기록했다. 이 중 약국 이용 비중은 약 61%로 가장 높았다. 피부과는 21%로 그 뒤를 이었다.
외국인 관광객들이 주로 찾는 품목은 흉터·염증성 여드름 치료제, 색소침착 개선제, 미백 보조제 등이다. 동아제약의 ‘노스카나겔’은 지난해 209억원의 매출을 기록했다. 전년 대비 22% 증가한 수치다. 여드름 치료제 ‘애크논크림’은 올해 1분기 매출이 전년 대비 62% 증가한 94억원을 기록했다. 색소침착 완화 기능으로 알려진 ‘멜라토닝’도 지난해 매출이 전년 대비 27% 증가한 116억원으로 집계됐다. 올 1분기에는 전년 대비 52%의 매출 증가율을 보였다.
소셜미디어(SNS)의 영향력도 큰 몫을 하고 있다. 파마리서치(214450)의 피부 재생 제품 ‘리쥬비넥스’는 틱톡에서 화제가 되며 품절 사태까지 빚었다. 팔로워 88만 명을 보유한 한 인플루언서(인터넷 유명인)의 제품 소개 영상은 4만 건 이상의 ‘좋아요’와 ‘저장’을 기록했다.
약국 유통 전용 화장품도 덩달아 주목 받고 있다. 한미사이언스(008930)의 ‘EGF 액티브 바이탈 크림’은 출시 4개월 만에 전국 약국 1만1000곳에서 27만개가 판매됐다. 병의원 전용 화장품 브랜드 ‘Dr.리쥬올’ 역시 외국인 구매 비중이 빠르게 증가하고 있다.
약국을 통한 외국인 소비 확산은 K뷰티 산업의 글로벌 위상과 맞닿아 있다. 관세청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한국 화장품 수출액은 55억1000만달러(약 7조4800억원)로 상반기 기준 사상 최대치를 기록했다. 프랑스와 미국에 이어 세계 3위 수출국 자리를 지켰으며, 미국에선 프랑스를 제치고 최대 수출국으로 올라섰다. 기능성과 전문성을 앞세운 K뷰티가 글로벌 시장에서 영향력을 확대하면서, 소비 채널 역시 올리브영 중심에서 약국 등 전문 유통망으로 다변화되고 있다는 분석이다.
뷰티업계 한 관계자는 “과거 한국인들이 프랑스 파리의 몽쥬약국이나 이탈리아 피렌체의 산타마리아노벨라 약국에서 화장품을 사던 모습이 이제는 서울 강남과 홍대의 약국에서 외국인들에게 그대로 재현되고 있다”며 “K뷰티의 프리미엄 이미지가 강화되며, 기능성 제품을 취급하는 약국이 새로운 유통 허브로 주목받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