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종로구 북촌이 새로운 패션·뷰티 트렌드의 중심지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서울 성수동이 여전히 ‘팝업 스토어(임시 매장)의 성지’, ‘플래그십 전쟁터’로 불리고 있지만, 북촌은 전통 한옥의 미와 현대적 체험을 결합한 독특한 분위기를 앞세워 관광객과 젊은 층의 발길을 사로잡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케이(K)-패션·뷰티 브랜드는 물론 글로벌 브랜드까지 북촌에 속속 들어서고 있다.

북촌 설화수의 집./아모레퍼시픽 제공

29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에스티로더 그룹의 향수 브랜드 ‘르 라보’는 가로수길, 성수, 부산에 이어 북촌에 플래그십 스토어 개점을 준비하며 직원 모집 중인 것으로 확인됐다. 르 라보는 2022년에도 북촌과 맞붙어있는 종로구 계동에서 팝업 스토어를 진행한 바 있다. 당시 팝업은 ‘르 라보 원 휠’이라는 제목으로 진행됐다. 르 라보의 향을 담은 트럭이 전 세계 여행을 떠도는 콘셉트였는데, 국내의 첫 번째 장소로 계동이 선택된 것이다.

르 라보가 북촌에 들어서기 전 이곳에 일찌감치 자리를 잡은 터줏대감은 설화수다. 2021년 설화수는 서울 도산점에 이은 두 번째 플래그십 스토어를 ‘북촌 설화수의 집’이라는 이름으로 열었다. 설화수 매장이 들어서면서 북촌에 패션·뷰티 브랜드들이 잇달아 정식 매장 또는 팝업 스토어를 열기 시작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2022년에는 논픽션이, 2023에는 탬버린즈가 북촌에 들어섰다. 작년 12월에는 뷰티 편집숍 ‘와이레스’가 문을 열었다.

지난 4월 북촌에서 진행된 아떼 바네사브루노 팝업 스토어./아떼 바네사브루노제공

패션 분야에서는 아디다스가 지난해 ‘북촌 헤리티지 스토어’를 열었다. 한옥이 아름다운 북촌 거리를 그래픽 디자인화한 티셔츠를 비롯해 북촌 매장만의 특별한 제품을 수시로 선보이며 정체성을 강조하고 있다. 지난 3월에는 뉴발란스가 ‘북촌 런 허브(RUN HURB)’를 열었다. 러닝이 일상 속 문화로 자리 잡은 것을 고려해 덕수궁·경복궁·광화문 등 ‘시티 러닝 코스’도 안내한다.

최근 북촌에선 팝업 스토어도 활발하게 열리고 있다. 지난 4월에는 LF의 아떼 바네사브루노가 북촌 아트선재에서 팝업 스토어를 열었고, LX하우시스, 방유당 등 다양한 브랜드가 북촌을 새로운 실험 무대로 삼고 있다.

북촌은 관광지로서 위상이 높은 곳 중 하나다. 외국인 관광객이 증가하는 상황에서 북촌이 브랜드를 선보이기에 매력적인 장소로 떠오르는 셈이다. 한국관광공사에 따르면 2019년 외국인 관광객 1750만명이 한국을 찾았고 코로나19를 거치며 급감했다가, 지난해에는 1637만명으로 회복세를 보였다. 문화체육관광부는 올해 외국인 관광객 1850만명 유치를 목표로 하고 있다.

아디다스 북촌 헤리티지스토어에서 선보인 제품. /아디다스코리아 제공

북촌에 자리 잡은 매장들은 한국적인 미와 현대적 감성을 동시에 전하며 외국인 관광객과 젊은 층 모두의 관심을 끌고 있다. 조용하고 고즈넉한 북촌의 분위기는 브랜드들이 차별화된 공간을 운영하기에 적합하다는 평가다. 예컨대 설화수 북촌 매장의 경우 1930년대 한옥과 1960년대 양옥을 연결해 하나의 공간으로 구성됐다. ‘설화수의 가치관과 취향을 섬세하게 담은 집’이라는 정체성 아래 곳곳에 체험 공간을 두고 있다. 2022년에는 서울시 우수 한옥 디자인에 선정되기도 했다.

성수동은 여전히 브랜드 팝업의 대표 지역이지만 상업화에 따른 임대료 상승과 공간 포화 문제로 인해 일부 브랜드는 새로운 무대를 찾고 있다. 과잉된 상업성보다는 정적인 매력을 강조할 수 있는 북촌만의 분위기가 브랜드 스토리텔링에 적합하다는 평가가 나온다. 유통 업계 관계자는 “성수에는 들어갈 공간을 구하는 것부터 경쟁이 치열하다”라며 “관광지로서의 상징성까지 고려하면 해외 진출 전 테스트베드로도 적합한 장소”라고 말했다.